Title | [3기] [인도남아시아] - 두드림 (1) [인도의 낙농업과 채식 문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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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7-03-16 17:15 | Read | 1,826 |
본문
우선, 인도 국민들의 80% 이상이 힌두교를 믿는다. 그들은 소를 숭배하고 신성하게 여기기 때문에 절대 먹지 않는다. 하지만 인도학과를 전공하는 학생들답게 우리는 인도에서 여신이 가지는 것과 같이 신성한 임을 지닌 존재는 흰 암소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흰 암소는 힌두교인들에게 어머니로 여겨지는 것 외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소들은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사전에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 친구에게 우리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는 흰 암소만 신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소의 색과 성별을 신경쓰지 않고 모든 소들을 신으로 받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물소는 같은 소임에도 불구하고 죽이든 먹든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였다.
종교적인 이유로 인도에서 소는 신으로 여겨지는 것 외에 주로 우유 생산에 이용된다. 앞서 말한 이유와 같이 인도 내에서 소는 신성한 존재이기 때문에 도살되지 않아 개체수가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소가 많다보니 우유 생산량이 늘어났고 잇달아 낙농업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또, 낙농업의 발달은 유제품의 활성화를 이끌었다.
그렇다면 낙농업의 발달 그리고 유제품의 활성화는 채식주의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채식주의자들은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육류를 섭취하지 않는다. 물론 채식주의(vegetarian)내에도 채소와 함께 동물성 음식 중 달걀만 먹는 Eggitarian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한 단백질 섭취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들은 다른 것들을 통해 단백질을 섭취할 방법을 모색하였고 그 답이 유제품이였을 거라는 것이 우리의 가정이였다. 직접 인도를 경험하고 현지인들에게 우리의 가정에 대해 물어보며 확답을 들을 수 있었다. 따로 떼어놓으면 어색해보일지 모르는 것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이 밀접한 관계를 더 구체적으로 탐구하고자 했다.
눈에 띄게 선진국인 미국, 유럽 등의 국가와는 달리 인도는 눈에 띄지는 않지만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사전조사때 읽어 보았던 <또 다른 인도를 만나다-공영수>를 읽어보았었는데 이런 힘을 인도가 가지고 있는 소프트 파워라고 설명해 두었다. 그리고 소프트 파워라는 단어를 보고 White Revolution이라고 불리는 인도의 낙농업과 유제품의 발달이 바로 그 예라고 생각하였다. 우리는 인도의 그 소프트 파워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최종적인 주제를 “White Revolution : 인도의 낙농업과 채식 문화“ 로 정했다.
사실 인도인들에게 우유로 만든 모든 제품들은 일상이다. 어느 음식점에 가도 우유로 만든 유제품(라씨, 기, 치즈, 버터)들이 많았고 호텔 조식에서도 매일 볼 수 있었다. 또, 길거리에서는 우유로 만든 짜이가 판매되고 있었다. 짜이는 빈곤층부터 상위 1퍼센트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장 사랑받는 음료일 것이다. 우리도 기차나 길거리에서 짜이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유제품의 발달에 대해서 탐구하기 위해서는 사전조사도 튼튼해야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고 관찰해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인도의 유제품 회사인 AMUL을 방문했다. AMUL에서 인도의 유제품이 발달하게 된 계기와 깊은 역사를 배웠고 공장을 직접 방문하여 현재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되며 어떤 제품이 하루에 얼마나 생산되고 있는지 그 과정까지 생생하게 관찰하였다.
채식주의자들은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손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인도행 기내에서도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기내식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길거리에 채식식당도 많았기 때문이다. 또, 뭄바이대학교에서 만난 한 철학과 교수님 또한 채식주의자였다. 그 분에게 유제품은 일주일에 몇 번을 섭취하는지 인도에서 채식주의가 발달하게 된 계기가 종교적으로 어떤 관련이 있는 지 등에 대해 물으며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인도의 낙농업이 이토록 발전한 것과 채식문화가 상호관련성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채식문화라는 키워드를 생각했을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인도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채식을 하면 육류로 섭취가 불가능한 단백질을 유제품으로 대체 섭취할 것이라는 추측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우리들의 탐사목표를 충족하기 위해서,
1. 인도 낙농업의 발원지 Anand에 있는 Amul 본사에 방문하기
2. 채식주의자 식당에서 낙농제품이 실제로 많이 사용되는지 알아보기
3. 현지에 계신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인도 낙농업과 채식문화의 상관관계 알아보기
4. 인도 낙농제품의 다양성과, 낙농제품 수요량을 파악하기 위해서 대형마트에 방문하기
이 네 가지를 목표로 우리들은 현지 탐구를 계획했다. 한국에서는 인도의 낙농업 현황, 낙농제품 소비 규모 등 표면적이고 간접적인 정보 수집에 그쳤다면, 인도에서는 직접 인터뷰를 하고 낙농제품 생산 공장을 방문하는 등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경험 수집을 할 예정이다. 모든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되지는 않겠지만,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현지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값진 경험을 하고 싶다.
탐사내용
인도 인구의 약 80%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들은 우육 섭취를 금기시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내려온 채식주의문화 및 자녀의 육류섭취를 제한하는 부모 세대의 영향으로 인도인들의 육류섭취는 제한됐었다. 오래된 자료이긴 하지만 2006년 인도 신문 The Hindu의 조사에 따르면, 인도 국민의 약 40%가 고기를 전혀 섭취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동물성 단백질을 어떻게 섭취하고 있을지 의문이 든다. 소나 돼지 이외에 닭고기, 계란, 양의 소비량은 확실히 많다. 인도의 원유 생산량은 8924만 톤으로 세계 제일의 생산량이다. 자가 소비량도 9000여 톤에 달한다고 한다. 힌두교교도들은 동물성단백질을 우유·유제품, 닭고기, 양 등을 통해 섭취한다. 특히 상류층은 동물성 단백질을 우유·유제품에 의존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더불어 인도정부는 유제품을 중요한 수출산업으로 육성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인도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있는 채식문화가 발달한 국가이다. 인도는 채식주의자도 물론 채식을 하지만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종교적인 이유로 채식을 하는 인구도 매우 많다. 채식에 대해서 추가적으로 덧붙이면 식물성으로만 만들어진 음식 또는 그런 음식만 먹는 사람을 베지태리언(Vegetarian), 줄여서 베지(Veg.)라고 부르며, 동물성 성분이 들어간 음식 또는 그런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사람을 넌베지태리언(Non-Vegetarian), 줄여서 넌베지(Non-Veg.)라고 부른다. 이 두 가지 구분 외에도 에지태리언(Eggitarian)이 있다. 채소와 함께 동물성 음식 중 달걀만 먹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실 인도는 원래부터 채식문화가 발달한 것은 아니었다. 채식문화는 흔히 아리야인들이 인도에 들어와 그들 이전에 있었던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고 또는 아리야인들이 자신들은 우월하여 잡다한 것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어 피정복민과의 차별화를 나타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인더스 문명시대와 베다 시대에 육식은 아주 보편화되어 있었다. 소는 제사에서 가장 선호되던 동물로 제사에 쓰이고 그 고기를 나누어 먹었다. 주요한 제사, 조상숭배, 고귀한 손님의 접대를 위해 소를 살해했다. 그래서 문법학자 빠니니는 손님을 `고그나`(goghna) 즉 `그를 위해 소가 살해되는 자`라고 불렀다. 주인이 고기를 먹지 않더라도 특별한 손님을 위해서는 큰 황소나 염소를 제사지냈다. 아기에게 처음으로 이유식을 하는 안나쁘라사나(annaprasana)의식에서 아기에게 먹이는 고기의 종류가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서 육식을 당연하게 생각했다.(출처 : 인도의 식문화 리포트) 그래도 인도보다 채식이 발달한 국가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인도는 히말라야 산지에 이어진 하나의 작은 대륙이라 불릴 정도로 국토가 넓고, 겉눈이 쌓인 히말라야로부터 열대의 코모린 고지까지라는 말과 같이 기후가 다양한 나라이다. 인도는 다인종 국가일 뿐만 아니라 중동 및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음식도 지역과 종교에 따라 매우 다양하고 음식은 색과 맛, 질감이 조화를 이룬다. 극소수의 최하층 천민과 기독교도 등은 쇠고기를 먹지만 대부분의 힌두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은 서로의 종교적인 정서를 존중하여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기피한다. 힌두교도는 대부분 채식주의자이고, 이슬람교도, 시트교도, 기독교도들은 비 채식주의자이다. 종교적 또는 경제적인 이유로 많은 인도인들은 곡물과 콩으로부터 단백질을 섭취하는데, 우유로 만든 다히(dahi)와 버터를 요리에 많이 이용하므로 영양적으로 별 문제는 없다.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은 종교적이라기보다는 경제적인 이유로 채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인도 전통을 지키는 채식주의자들은 예전과 같이 엄격하게 채식을 하며 생활한다. 채식주의자 중에는 비 채식주의자와의 동석을 거부하는 문화도 있다. 따라서 식당 중에는 방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거나 내부가 나누어져 있기도 하고 다른 메뉴를 취급하는 곳도 많다. 인도인들은 주로 단백질을 콩류와 우유, 버터, 요구르트 등의 유제품으로 섭취하며, 엄격한 채식주의자는 육 · 어류를 절대로 먹지 않는다. 심지어는 달걀까지도 먹지 않는다.
이렇게 채식문화와 그에 대한 대체영양소로서의 유제품의 실질적 연관성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므로 인도의 낙농업과 채식문화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도에는 소와 물소가 약 3억 마리나 있다. 특수한 인도 형지에서만 낙농업이 가능하다. 이것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세계의 동물성 단백질 부족량을 상당히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낙농업의 활용은 인도 농민의 소득증대로도 이어지게 된다. 세계의 식량 부족문제 해결을 위해 수 억 명의 낙농가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전 세계 식량관계자가 진지하게 인도를 생각해야할 것이다.
우유는 영양가치가 완전식품에 가장 가까운 음식물이라고 불리며 일인당 유제품 소비량이 한 국가의 국민생활 수준을 평가하는 주요한 지표 중의 하나이다.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는 대도시의 유제품소비 증가에 대하여 매우 높은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제품은 점점 국민생활의 필수품이 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나라 젖소사육 산업과 유제품 공업발전이 가속화되어, 젖소 사육수량과 우유종류 생산량 및 유제품 생산량이 배로 증가하고 유제품 소비가 급격히 향상했다. 이에 인도와 미국 다음 가는 세계의 3대 젖소 생산국이 되었다. 유제품공업은 우리나라의 개혁개방 이후 가장 빠르게 성장한 산업 가운데 하나이며 1차, 2차, 3차 산업과의 협조발전을 추진하는 중요한 전략산업이다. 유제품공업의 발전은 도시와 농촌 주민의 식생활구조 개선, 국민체력향상, 도시와 농촌의 시장 풍족, 국민생활 수준향상 및 농촌 산업구조 최적화, 농민 소득증가, 사회주의 신 농촌경제건설 촉진에 대하여 매우 커다란 추진 작용을 가지고 있다. 축목업과 식품기계, 포장, 현대물류 등 관련 산업에 대한 발전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내적 그리고 외적으로 모두 가치를 지닌 낙농업의 지류는 어디서부터 뻗어져 나온 것일까? 인도의 낙농업을 통해서 그 원류를 찾아보도록 하자.
동물을 키워서 고기나 가죽, 유제품 등을 얻는 1차 산업, 축산업. 그 중에서도 유제품을 얻는 산업을 낙농업이라 한다. ‘진한 유즙’이라는 뜻의 락(酪) 자를 써서 낙농업이다. 인류가 목축을 시작한 것이 약 1만 년 전인데, 그 즈음에 축산업도 시작되었다. 일회성으로 소와 말, 양 등을 길러서 먹는 목축에서 한 단계 나아가 그것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다른 것을 찾으려는 시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양에게서 털을 얻어 의(衣)를 해결하고, 소와 말의 젖을 짜서 식(食)을 해결했다. 낙농은 긴 수렵채집 생활을 마감한 인류가 채택한 새로운 생계수단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그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는데, 고기도 고기지만 그 이전에 고기의 추출물인 우유에는 그보다 더 많은 영양소가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유아들에게 유익한 영양소가 고루 들어가 있어 어린 생명을 유지해주며 성장기에 큰 도움을 준다. 역사책 첫 페이지에 있는 그들이 이를 알았을 리는 만무하지만, 이러한 점에서 낙농을 택한 인류는 행운아였다. 우유에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BC 3000년경 이집트의 피라미드 벽화에 그려진 우유 젖 짜는 그림이 있다. 우리 두드림 탐사 팀이 다녀온 인도는 BC 2000년 즈음 버터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4000년도 더 전에 가축에서 짠 젖인 시유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가공하여 식품을 만들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인도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버터를 만들었던 만큼 낙농의 역사가 길다. 4000여 년이 지난 지금 인도의 낙농업은 꾸준히 발전했고 현재 세계 1위 우유 생산 국가로 우뚝 섰다. 이는 인도의 압도적인 인구 수 덕분이기도 하지만, 다른 요소 덕도 많이 보았다. 탐사를 마친 우리는 본 보고서에서 그 요소들에 대해 서술해보고자 한다.
1/23~2/5. 총 14일 간의 탐사에서 우리 두드림 탐사 팀은 인도의 낙농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는 물론이고 이 낙농업이 인도인의 삶 전반에 걸쳐 영향을 주었다는 심화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출발하기 전, 공항에서만 하더라도 우리들은 이번 보고서가 단순히 인도의 낙농업에 대해 소개하는 탐구 보고서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그런 걱정과 동시에 인도 낙농업 최대의 도시 ‘아난드’에 방문하는 만큼 상당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묘한 기대감도 함께 안고 있었다. 그렇게 설렘 반 걱정 반으로 1월 23일, 우리는 인도로 떠났다.
인도라고 하면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소’이다. 인도에서 소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인도에 대해서 탐구하는 팀으로서 이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팀이 이번 로컬리티 챌린지의 소재를 낙농업으로 결정한 것도 바로 이 ‘소’에서 출발한 것이다.
인도에서 소는 우리나라 길거리의 비둘기만큼이나 흔히 보인다. 이렇게나 소가 많고, 그럼에도 종교적 이유로 소를 잡아먹지도 않는 인도에서, 소와 관련된 부가 가치 산업이 없을 리 만무했다. 조사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역시 인도는 목축에서 한 단계 나아간 낙농이 발달해 있었다. 특히 아난드에서 발원한 Amul(Anand Milk Union Limited)이라는 낙농협동조합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기업으로 평가받을 정도였다. Amul 협동조합의 형성과 발달은 인도 낙농업의 시초라고도 볼 수 있었기에 우리는 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Amul은 1946년 인도의 구자라트 주 내에 있는 도시, 아난드에서 조직되었다. 지역 무역 카르텔은 우유 생산자들을 착취하고 우유의 가격을 임의로 결정하는 등 횡포를 부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도 정부는 카르텔에 독점권을 주고, 생산된 우유를 공급하도록 하였다. 불공정한 거래 행위에 분노하여 아난드의 우유 생산자들은 현지 지도자 Sadar Vallabhai Patel의 지휘 아래 협동조합을 조직하고, 카르텔 대신에 우유를 공급하였다. 협동조합에 대해선 자세히 후술하겠지만 간단히 말해 협동조합은 경제적 약자들이 힘을 모아 대기업의 압박이나 중간 상인들의 농간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조직된 협동조합은 정부의 부당한 결정에 대항하여 이 지역의 낙농민들은 파업을 단행한다. 적극적인 노력 끝에 인도 정부는 낙농민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그들을 정식 협동조합으로 인정하게 된다.
당시 인도에서는 대부분의 생산자가 자신의 가정에 있는 소를 통해 얻어낸 우유만을 제공할 수 있는 영소 농민이었다. 그 때문에 우유 생산은 분산되어 있었으며, 그 양도 한 가정에서 1~2리터를 넘지 못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보여주듯 그들은 각 마을에 협동조합을 조직하고 생산한 우유를 모아 이익을 창출하기 시작했다. 협동조합으로서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 협동조합은 Dalaya와 함께 Kurien 박사가 개발하고 관리했다. Dalava는 버팔로에서 탈지분유를 만드는 혁신을 이뤄냈다. 이후 Kurien 박사의 도움을 받아 상용화에 성공했고, 협동조합 최초로 인도 낙농업을 이끌 수 있었다.
이후 인도는 40년 동안 엄청난 양의 우유를 생산했으며 2001년에는 총 생산량 8460만 톤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우유 생산 국가가 되었다. 대부분이 문맹인 영소 낙농업자로 이루어진 이 작은 협동조합은, 약 1천만 이상의 낙농가와 약 96000개의 협동조합에 이르는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처럼 지난 30년 동안의 인도 유제품 산업 성장은 인상적이었다. 연간 4% 이상의 성장률을 바탕으로, 90년대에 이르러 인도는 가장 큰 우유 생산국으로 떠올랐다. 인도가 시장성이 높은 생산물이 많지 않음을 고려할 때, 낙농업이 가져다 준 성과는 상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도의 우유 생산은 소규모 토지 소유 농가와 토지가 없는 노동자에 의해 주동되었다. 농지 대부분의 작물 생산량은 기후에 달려 있었고, 가뭄과 홍수에도 취약하기 때문에 농민들에게 농업 소득은 매우 불확실한 것이었다. 반면 소득의 부수적인 원천으로서의 낙농업은 이러한 것들에 덜 구애받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농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인도 낙농업의 눈부신 성장에 맞추어 인도 정부는 “소 사육 및 유제품 개발을 위한 국가 프로그램(NPBBDD, National Programme for Bovine Breeding and Dairy Development)”, “국가 낙농 계획(NDP, National Dairy Plan)”, “유제품 기업가정신 개발 계획” 과 같은 다양한 중앙 부문 계획을 통해 낙농 부문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NPBBDD에는 집중 낙농 개발 프로그램, 품질 및 청정 우유 생산을 위한 인프라 강화, 가축 및 버팔로 번식을 위한 협동조합 및 국가 프로젝트 보조와 함께, 계획을 시행하기 위한 예산이 제공되었다. 또, 우유 생산 증가와 늘어나는 우유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는 2012년 2월에 국가 낙농 계획을 승인했고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시행 될 예정 이다. 국가 낙농 계획은 생산성 향상, 인프라 강화를 통해 낙농업 생산자에게 시장 접근성을 높이고, 2017년까지 약 1억 5천만 톤에 달하는 인도 내 수요를 충족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반증 하듯이, USDA가 발표한 ‘India Dairy and Products Annual 2013'에 따르면, 2013년 유제품 생산량은 1억 3400만 톤으로 추정되며 2014년에는 전년 대비 4.5%가량 증가한 1억 4000만 톤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는 현제 세계 총 유제품 생산량의 17%이상을 차지하며 유제품산업의 최대 생산국으로 자리 잡았다. 인도인들의 하루 평균 유제품 소비량은 1인당 276g에 달하며 1인당 유제품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낙농업개발위원회(NDDB)는 현재 1억 2800만 톤에 달하는 인도 유제품 소비량이 2022년 1억 8000만 톤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Investor Relations Society of India에 따르면, 현재 700억 달러 규모인 유제품 산업은 연평균 15~17%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며 2020년에는 14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고 이미 인도 유제품 시장의 경쟁이 치열하나 장기적으로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이며 수요에 비해 공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Amul 협동조합의 형성과 인도의 낙농업 현황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아난드로 갈 채비를 했다. 아난드는 낙농 관련 역사가 가장 깊은 곳이면서 동시에 낙농의 본고장이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에서 봤던 ‘White Revolution’의 탐구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아난드에는 Amul 본사와 공장 그리고 아난드 대학교 농업학부가 있기에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도시였다.
뭄바이에서 아난드로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야했다. 요즈음에는 인터넷과 모바일로도 예매가 가능하지만 우리는 직접 역에 가서 예매하는 방법을 택했다. 당장 다음날에 출발하는 표가 필요한 우리들은 표가 남아있기를 바라며 역으로 갔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듯이, 숙소 근처에 있는 역에는 표가 남아있지 않았다. 외국인 할당 기차표도 남아있지 않았다. 약간의 웃돈을 주고 사는 ‘따깔’ 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다행히도, 숙소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역무원이 찾아주었다. 역무원의 친절한 도움 덕분에 우리는 성공적으로 표를 구할 수 있었다. 1/26일은 인도의 'Republic Day' 이었기 때문에 테러위험이 있어, 당장 다음날 꼭 출발해야만 했던 우리들에게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이른 아침 체크아웃을 하고 기차를 타기 위해서 보리발리 역으로 출발했다. 아직 깜깜한 새벽이었고 또 짐이 많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움직였다. 약 6시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기차에서 식사도 하고 짜이도 마시면서 큰 탈 없이 아난드에 도착했다. 도시화가 된 뭄바이에서 첫 걸음을 디딘 우리들은 다소 낙후된 아난드의 첫 모습에 당황했다. 뭄바이는 워낙 발달된 도시인지라 소도 별로 없고 개도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난드에서 처음 맞이하는 수많은 소와 개들은 우리들을 당황시켰다. 숙소로 이동하는 길에, 밀크시티답게 아난드 이곳저곳에서 Amul과 관련된 상점들이 꽤 보였다. 예감이 좋았다. 숙소도 정말 우리들 마음에 들었다. 지금까지 이동하면서 쌓였던 피로를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아침 일찍 출발을 했고, 또 기차에서 간단하게 요기만 했기 때문에 배가 고팠다. 그래서 우리는 숙소 내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Amul의 발원지이기 때문인지, 숙소에서 지급하는 버터와 같은 유제품들은 모두 Amul 사의 제품이었다.
Amul은 14:00 ~ 16:00 까지만 방문을 허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Amul에 방문하기에 앞서 아난드 대학교에 있는 낙농학부를 먼저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아난드 대학교는 생각보다 매우 넓었다. 건물 하나하나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우 리 학교 글로벌 캠퍼스처럼 학교 자체가 매우 넓었다. 게다가 낙농학부는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어서 찾아가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입구에 도착하여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학교 보안관이 우리들을 막았다. 아난드 대학교 소속 교수님의 허가증이 없으면 방문하지 못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들의 상황을 최대한 잘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외국인 친구에게도 연락하여 도움을 청해보았지만 아쉽게도 방문은 할 수 없었다. 아쉬운 대로 학교 앞에서 사진을 찍고, Amul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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