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3기] [브라질중남미] - 아냐스 (1) [페루 커피 문화의 현 주소 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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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7-03-16 16:00 | Read | 2,374 |
본문
탐사테마
페루는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과 온두라스, 과테말라 등의 중남미국과 인접한 위치에 있으며 아마존 분지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커피의 최대 생산국이자 세계 9위 커피 생산국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페루 커피 농장들의 대부분이 해발 1,200m~2,000m에 위치하고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해풍과 안데스산맥의 축복으로 맛 좋은 커피를 생산할 수 있다. 또한 적정 고도, 아열대지방의 날씨, 적절한 습도, 영양이 풍부한 땅, 그리고 일조량까지 갖춘 페루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커피산지로 좋은 품질의 커피나무가 자랄 수 있는 최상의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과는 대조적으로 페루는 1인당 커피 소비량이 0.5kg에 그치며 중남미 국가들 중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과테말라와 같은 중미 국가부터 최대 커피 생산국이자 소비국으로서의 명목을 다 하는 브라질 등의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왜 페루 사람들은 커피와 친하지 않은 것인가? 본 조는 위와 같은 역설적인 상황에 대한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탐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우리는 페루 정부가 국민들의 커피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지난 2009년부터 커피 생산 사업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페루의 농림부(Ministerio de Agricultura y Riego)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8월 넷째 주 금요일을 커피의 날로 지정하거나, 리마 내 미라플로레스 지역에서 다양한 커피를 소비자들이 직접 맛볼 수 있는 행사를 개최하는 등 커피 대중화 및 다양한 생산 사업에 투자하고 있었다.
또한 페루는 정권 교체에 따라 인프라 구축, 자국 기업들의 성장과 다양한 투자 등으로 연 5-8%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생활 여건 향상과 더불어 페루 시장 내 국내 커피 소비량이 2011년 4074톤에서 2015년 5079톤으로 증가했음을 통계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 2016년 코트라 자료에 따르면, 리마무역관은 “페루는 커피 시장뿐 아니라 음료 관련 시장 전체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며 “이러한 성장세 속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커피 시장의 성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한국 커피 시장이 발전하게 된 ‘커피의 물결’이 ‘인스턴트 커피믹스’에서 시작된 것과 같이 페루 또한 커피의 문화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바쁜 현대인의 일상에서, 간편하게 물에 타 마시는 한국의 커피믹스는 편리하고 저렴할 뿐만 아니라 좋은 커피 맛까지 낸다. 최근에는 다양해진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어 생산되는 상품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의 커피 믹스가 페루 내 커피 문화를 보편화시킬 수 있는 좋은 매개체라 생각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는 페루 내 커피의 현 위치를 알아보고, 커피를 제외한 어떠한 음료 문화가 그들의 일상 속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조사해보고자 했다. 또한 우리 삶에서 음료는 단순히 목을 축이는 것이 아닌 한 공동체의 역사와 삶이 담긴 문화라고 생각해, 페루 및 음료의 역사를 문화적·사회적 관점으로 접근해 조사를 진행하였다.
탐사목표
현대 사회에서 한국인들에게 커피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어느 순간부터 밥을 먹는 대신 커피 한잔 마시기를 선택하는 사람이 등장할 정도로 커피는 한국인들에게 있어 필수적이고 우선적인 존재가 되었다. 원두 하나 나지 않았던 한국에 커피 문화가 이렇게 깊숙이 자리 잡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다방 커피’로부터 시작된 커피의 물결이었다. 인스턴트커피가 몰고 온 커피의 제 2의 물결은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을 전국으로 유행시키며 제 3의 물결로 몰고 왔다.
페루는 한국과 비슷한 점이 몇 가지 존재하는 국가이다. 식민 시절을 지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또한 페루는 현재 마치 한국의 1970년대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급격하고 빠른 변화와 발전이 기대되는 국가이기도 하다. 진정한 의미의 중산층이 등장하고, 여가를 즐기는 계층이 생겨나면서 페루는 문화를 즐기고 소비할 수 있는 여건이 점점 갖추어 지고 있다.
커피를 즐기고 사랑하는 한국 여대생의 관점에서, 한국의 커피 문화와 비교했을 때 페루의 커피는 사회·문화적으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첫 번째 목표이다. 페루 사람들에게 있어서 커피는 어떤 의미인지, 커피가 그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고자 한다. 이러한 조사는 곧 페루 사람들이 중남미 국에서 커피 소비량이 최저점인 이유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커피 소비문화 확산에 영향을 미치게 될 페루의 주 음료문화들을 알아본다. 오랫동안 다른 기존 음료에 적응해온 페루의 문화는 커피 소비가 페루인의 일상생활에 녹아드는데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보완재가 될 수도 있다. 페루의 오래된 전통음료인 치차부터 국민 음료 잉카 콜라 그리고 차까지 어떻게, 어느 정도 소비되는지 직접 파악해볼 것이다. 그 역사를 통해 어떻게 페루 인의 삶 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알아보고 현재는 어떤 방식으로 변형 또는 개선되어 마셔지고 있는지 탐사함으로써 음료 문화의 발전 과정을 가늠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옛 음료 문화를 보존하고 새로운 음료 문화를 창조함에 따라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상호 작용되고 지금 어떻게 남아있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비교하여 커피는 또한 어느 형태로 소비되고 있으며 커피에 대한 현지 국민들에 대한 인식도 알아보고자 한다. 페루가 다른 남미 국가에 비해 현저히 적은 양의 커피를 소비하고 있다는 사전 조사에 따라 아직 커피 문화가 널리 자리 잡지 못했을 것이라 예측한 가정과 실제 생활 모습이 일치하는지도 확인할 것이다. 일치한다면 정말 커피가 고급품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장애물이 있는지 알아본다. 우리나라의 커피 문화는 가파른 경제 성장에 따라 일반 국민들이 점점 빠르고 간편한 생활을 추구하면서 인스턴트커피를 통해 널리 퍼지게 되었다. 페루 또한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인스턴트커피를 통해 커피의 물결이 시작될 가능성이 있는지 인스턴트커피 시음회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주요 활동은 설문조사를 중심으로 진행되며, 음료 선호도를 설문하여 페루 사람들이 추구하는 맛과 음료 선택 시 고려하는 여러 요소들을 파악하고 그 음료 문화가 일상생활에 얼마나,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다. 또한 커피를 마시는 횟수, 이유 등과 관련된 설문을 통해서도 현재 페루 내 커피 선호도와 수요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한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음료 문화의 주요 특징과 커피 소비의 전반적인 양상을 확인함으로써 페루 문화 자체에 대한 특성도 발견하고자 한다.
탐사내용
페루, 어디까지 가봤니?
공항에 모인 우리 셋은 분주했다. 온 몸을 감싸고 있던 두꺼운 외투를 벗어 던지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출국 심사를 기다렸다. 두 시간 후, 여름이 한창일 지구 반대편 남미 대륙에 위치한 페루로의 비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페인어 여행 책을 한 손에 꼭 쥔 채, 우리는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세계를 온몸으로 맞이할 준비를 했다.
Part 1. 리마 [2017.02.01.~2017.02.04.]
#캘리포니아보다 더 미국 같은 미라 플로레스(Mira Flores)
깜짝 놀랐다. 우리가 정녕 페루에 있단 말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번화한 도시, 사람들로 활기가 도는 광장들, 곳곳에 자리한 세계적인 유명 체인점들, 쉴 새 없이 도로를 지나다니는 고급 자동차들. 25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도착하여 마주한 풍경은 우리의 상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잉카 문명, 마추픽추, 인디오’만으로 정의 된다 생각했던 페루는 놀랍게도 매우 번화했고 발전되어 있었던 것이다.
미라 플로레스는 페루의 수도 리마에 있는 부촌으로, 아름다운 해안가를 끼고 주택가와 고급 상권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이다. 미라(Mira) 플로레스(Flores)는 스페인어로 ‘꽃을 보라’는 뜻으로, 아찔한 해안 절벽 끝으로 잘 가꾸어진 공원들과 산책을 즐기는 커플들의 모습이 그 이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떠오르게 한다. 바다 바람을 따라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과 하얀 거품을 일며 치는 시원한 파도위에서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은 미라 플로레스의 풍경을 한층 풍성하게 한다.
스페인 식민 시절부터 존재한 이 곳은 20세기 리마시가 확장되면서 리마시 안으로 편입된 지구라고 한다. 부촌답게 페루의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백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 때문인지 광장에서 어린 백인 아이를 돌보는 페루인 보모를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었다. 15세기 시작된 물리적 식민이 21세기인 현재까지 경제적 식민으로 이어져 마치 과거 식민 시절의 페루에 온 듯한, 좋지 못한 착각이 들기도 하였다.
#잉카콜라? 잉카콜라!
우리는 첫 식사를 위해 숙소 근처 식당을 찾았다. 이 식당에서는 간단한 샌드위치부터 로모 쌀따도(Lomo Saltado), 로꼬또 레예노(Rocoto Relleno)와 같은 로컬 음식까지 판매하고 있었다. 메뉴에는 커피도 빠지지 않았는데, 그 종류 또한 상당히 다양했다. 식당에서 커피를 함께 판매하는 일은 우리에게 사실 생소하지만, 식사와 함께 곁들여 마실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잉카콜라’였다. 잉카콜라는 페루를 대표하는 탄산음료로서 노란 색깔과 그 특유의 청량감으로 유명하다. 페루 음료회사 린들리의 제품이었던 잉카콜라는 페루 내 점유율 1위의 국민 음료였다. 이를 이길 수 없다 생각한 코카콜라는 린들리를 인수하여 잉카콜라를 출시하였고 페루 국민들의 자긍심과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는 ‘잉카’를 그 마케팅 방법으로 내세워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페루의 맛’이라고 할 수 있는 잉카콜라는 다국적 기업 코카 콜라사라는 날개를 달고 난 후, 해외 각지로 활발히 수출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서도 맛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명성답게 어느 곳을 가던 우리는 잉카콜라를 만날 수 있었는데 들리는 식당마다 잉카콜라를 판매하지 않는 곳이 없었으며 맥도날드에서는 코카콜라 대신 잉카콜라와 햄버거를 함께 파는 콤보 메뉴가 따로 있었다. 심지어는 숙박시설에서도 물과 함께 잉카콜라를 구비해 놓고 판매할 정도였으니 그 인기와 수요는 알만 하다.
잉카 콜라가 현대 페루의 음료를 대변한다면, 치차 모라다(Chicha Morada)는 페루의 전통 음료를 대변한다 할 수 있겠다. 매력적인 보라빛깔의 이 음료는 보랏빛 옥수수를 발효시켜 만든 음료로서, 페루 사람들의 여름을 책임지는 대표 음료 중 하나이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더운 날, 땀을 흘리며 거리를 걷다가 투명한 통 안을 쉼 없이 돌아가고 있는 보랏빛 음료를 마주하면 한잔 주문하지 않고 배길 수 없다. 그 맛을 맛본 이후에는 더욱 그러하다. 아까 점심에 밥을 먹었던 식당 주인에게 ‘이 근처에 치차를 파는 곳이 있나요?’라고 묻자 여기서 제일 맛있는 치차 판매점을 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추천을 해 주었다. 우리는 지체 없이 그 곳으로 이동했다.
#치차의 매력 속으로!
점원이 추천해준 가게의 이름은 La Lucha. 우리만 몰랐나보다.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줄지어 주문을 하고 있었다. 주스, 커피 등 다양한 종류의 음료를 함께 판매하고 있었지만 그중 가장 베스트 메뉴는 말할 것도 없이 치차. 테이블마다 놓여있는 보라빛깔 음료는 영롱하다 못해 아름다웠다. 치차를 손에 쥔 우리들은 너나할 것 없이 빨대를 입에 넣고 쭉, 빨았다. 입안으로 퍼지는 보랏빛 옥수수의 맛을 우리는 이렇게 표현했다.
소정: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이다. 고소하면서도 상큼하다. 이 두 가지 맛이 공존할 수 있다니! 첫 맛은 요구르트 같은데, 또 끝맛은 약간 쌉싸름 한 것이 독특하다. 마신 후에 입에 남는 향이 참 좋다.
슬기: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걸쭉하지 않고 주스같이 맑게 마실 수 있어서 깔끔하고 가볍다. 소정이와 마찬가지로 요구르트 맛이 났다. 친숙한 맛도 있지만 생소한 맛이 더 크기 때문에 한국에 현지화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혜원: 보라색 색감이 이목을 끈다. 맛이 없어 보이는 비주얼 이지만, 과일 주스 맛 같아서 맛있다. 단독으로 마시는 것도 좋지만 음식과 곁들여 먹었을 때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다.
치차를 마시며 각자 느낀 것을 이야기 하던 도중, 궁금한 점이 생긴 우리는 친절한 직원 루이스에게 즉석 인터뷰를 해 보기로 했다. 급히 질문을 정리하고 루이스를 불렀다. 세 명의 한국 여자애들이 치차에 대해 조잘대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흔쾌히 답변을 해 주었다. 루이스에 의하면 이 가게에서 가장 잘 나가는 것은 역시나 치차이며, 이곳 사람들이 매일 마시다시피 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수정과나 식혜를 자주 마시지 않는 것과 비교하여 전통 음료를 이렇게 보편적으로 마시고 즐긴다는 것은 놀랍기도 하면서 부러운 문화라고 생각했다. 특히 이렇게 더운 여름날에는 시원한 치차 한잔이 기력도 보충해주고 더위를 날려준다고 느끼기 때문인지 치차를 판매하는 음식점이나 카페는 늘 상 북적거렸다.
잉카콜라에서도 보여 졌지만, 페루는 전통과 새로운 것을 참 잘 결합하는 나라임에 틀림이 없다. 싱크로니즘(Syncronism)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민족이 바로 페루 사람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미라 플로레스 해안가에 위치한 라르코마르(Larcomar) 쇼핑센터에 들어가자 탁 트인 해변을 배경으로 여러 카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치차 그라니자두(Granizado)’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치차를 갈린 얼음과 함께 마시는 형태로써 프라프치노와 비슷하다. 익숙한 커피 메뉴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판매되고 있었다.
이들에게 치차는 과거로부터 현재이며, 익숙함과 새로움의 공존 가능성이다. 유명 하이퍼마켓에서도 치차 음료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판매해 접근성이 좋았고 특히 ‘즉석 식품’ 판매관에 치차가 함께 진열되어 있었는데, 이는 그만큼 페루 사람들이 식사 종류의 음식과 함께 치차를 자주 소비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식당에서는 세비체(리마의 전통 음식으로 신선한 회를 레몬, 고수 등과 함께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와 함께 치차를 판매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하였고, 중국식 음식을 페루식으로 현지화 한 음식인 치파(Chifa)는 그 느끼한 맛을 감소시키기 위해 치차를 함께 곁들여 먹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었다. 치차는 페루를 대표하는 음료인 만큼 이후 여정에서도 지속적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커피로 드러나는 페루의 빈부격차
사실, 고백하자면, 미라 플로레스에 도착하여 우리는 조사의 모든 의욕을 잃었었다. 사전 조사 당시 코트라의 정보에 의하면 페루는 ‘남미에서 가장 적게 커피를 소비하는 국가’였고 양질의 커피를 생산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해외로 수출되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 있던 국가였다. 당연히 커피를 많이 마시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던 우리가 도착해 마주한 풍경은 미라 플로레스 내 광장 주변으로 줄지어 늘어서 있던 카페들이었다. “왜!?”라는 외마디 외침과 함께 좌절감에 빠진 우리들은 광장에 앉아 원망스러운 카페들을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정신을 차린 슬기가 말했다. “이러고 있지 말고 차라리 저 카페들 중 하나를 한번 가보자! 뭔가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는 심정으로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에 앉자 직원은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우리가 페루에 와서 가장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스타벅스가 아닌 카페에서도 아메리카노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이었다. 브라질 유학 경험이 있던 혜원과 슬기는 브라질에서 겪었던 가장 큰 고충 중 하나를 ‘아메리카노’로 꼽는다. 찌는 듯 한 더위 속에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마시고 싶은 마음에 친구에게 아메리카노를 파는 곳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미국산 커피를 마시고 싶은 거냐며 브라질산 커피가 더 맛있다는 대답을 해 주었다. 브라질에서는 아메리카노라는 형태의 커피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진한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작은 샷으로 마시거나 그 안에 우유를 곁들여 마시는 것이 이들이 보통 마시는 커피의 전부였다. 스타벅스에서 조차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여기, 우리는 페루에서 아메리카노를 발견했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우리는 페루산 원두로 추출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여유를 되찾고 주변을 둘러보자 우리의 눈에는 오로지 노란 머리의 하얀 형체들만이 들어왔는데, 몇 안 되는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있던 사람들은 우리를 제외하고 모두 백인이었던 것이다. 카페 앞 광장에는 수많은 토착민이나 메스티소로 보이는 인종의 사람들이 모두 앉아 담소를 나누고 햇빛을 즐기고 있는데, 우리가 이 카페에 있는 두어 시간 동안 단 한명의 유색인도 볼 수 없었다. 우리는 여기서 커피가 소득 수준이나 생활수준을 구분 지을 수 있는 매체가 되는 것인지 궁금증이 생겼다.
리마 구시가지에 나아가 보니 그 궁금증에는 더욱 확신이 생겼다. 미라 플로레스 지구에서만 대여섯 개는 보았던 스타벅스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 앞 하나를 제외하곤 찾아볼 수 없었으며 카페의 개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광장의 뒤쪽으로 가보니 그 현상은 더욱 확연해졌다. 우리는 집에 돌아가는 길, 우연히 잡아 탄 택시 기사 아저씨와의 대화를 통해 궁금증에 대한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커피는 주로 집에서 마셔요. 원두를 대용량으로 사서 내려 마시는 방법으로요. 우리는 그걸 Gota a Gota라고 하는데, ‘방울방울’ 이라는 뜻이죠. 오랜 시간 물을 내려 우러나온 커피를 마시기 때문에 한 방울, 한 방울 기다리는 묘미가 있어요. 사실 대부분의 페루 사람들이 이렇게 할 거에요. 싼 원두를 구하기가 어렵지 않거든요. 품질 좋은 원두나 비싼 값 하는 거지, 에콰도르나 코스타리카산 수입 원두가 싼 값에 들어오기 때문이죠.
미라 플로레스 같은 부촌에 있는 카페는 결국 거의 외국인들을 위한 거죠. 아시다시피 거긴 백인 이민자들이나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 그 사람들은 이미 카페 같은데 가서 비싼 돈 주고 커피를 사먹는 일에 익숙해 있잖아요. 사실 그건 새로 들어온 문화지 원래 우리가 하던 건 아니거든요. 미라 플로레스가 아닌 리막(Rimac), 산 보르하(San Borja), 뿌엔떼 삐에드라(Puente Piedra), 라 빅토리아(La Victoria), 코마스(Comas) 등 지역에서는 카페가 거의 없어요. 리마 중산층 주거 지역인데, 그 곳에서는 카페를 찾는 사람도 없어요. 대부분 제가 말했던 것처럼 집에서 마시죠.”
택시 기사 아저씨의 말은 현실적이면서도 옳았다. 실제로 우리가 택시를 타고 오며 지나친 타 지역들의 모습은 아직도 덜 발달된, 지붕이 없는 집들, 흙으로 어렵게 쌓아 올린 집들이 대부분이었고 높이 솟은 빌딩숲 건너로 보이는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은 극히도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고작 몇 십분 차를 타고 나온 것에 불과한데 생전 다른 나라를 보는 것 같은 풍경들이 이어졌다. 가방을 대충 매고 돌아다녀도 안전한 느낌을 받았던 미라 플로레스와는 전혀 다르게 신호를 받아 멈추어 있는 택시 안에서도 창문을 깨고 사람이 뛰어 들어올까 겁이 났다. 들고 있던 가방을 다리 밑으로 조심스레 넣었다. 미라 플로레스 일면만 보고 페루가 상당한 발전을 이룩한 국가라는 단편적인 판단을 할 뻔 했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페루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업들이 많은 국가였다. 빈부 격차, 인프라, 가뭄 홍수 등의 빈번한 자연 재해 등.
페루는 다른 남미 국과들과는 달리 토착민 비율이 전체 인구의 45%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백인 인구는 16%에 불과하다. 대항해 시대, 무차별적으로 들어온 스페인 정복자들은 페루의 잉카 민족들을 정복하고 지배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들은 신식 무기와 전염병 앞에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수세기 전부터 안데스 산맥 위에서 찬란한 유산을 일구어냈던 잉카 민족은 하얀 백인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현재, 안데스 산맥 위 비탈진 곳 위에 지붕도 없는 흙집에서 그들은 겨우 하루하루 먹고 살 돈을 벌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의 무대가 되었을 아름다운 해변을 바라만 본 채.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커피를 어디서 어떻게 마시느냐 하는 방법의 차이가 있는 음료이기 때문에 그러했다. 마시느냐 안 마시느냐는 문제가 아니었다. 해안가의 누군가에게 카페에서 한잔의 음료는 여유이지만, 도시 외곽의 누군가에게 카페에서 한 잔의 커피는 사치이기 때문이다. 커피는 이 사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매체였던 것이다.
#브라질 사람이 생각하는 페루사람들의 커피 소비 습관!
페루에 가기 전, 브라질 교환학생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 카렌(karen)이 페루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방학 기간 동안 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한달 동안 페루 전역을 돌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마침 리마에서 활동하던 우리는 카렌과 연락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마침 광장에서 설문조사를 하고 있던 우리는 카렌의 적극적인 도움을 통해 많은 설문을 할 수 있었다.
저녁을 함께 먹으며 카렌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우리의 페루 방문 의도와 커피에 대한 궁금한 점들을 이야기 하니 놀라워했다. 카렌도 비슷한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카렌이 한 달 동안 페루 일반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동안, 가족들이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잘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빵이나 과일과 같은 가벼운 아침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는 브라질과는 달리 페루는 아침을 상당히 무겁게 먹는 편이었다고 한다. 또한 커피 대신 아침에 마시는 에몰리엔떼(emoliente)라고 하는 독특한 음료가 있는데, 레몬 주스에 볶은 보리, 그리고 허브 추출물을 넣은 음료라고 한다.
또 다른 특징은 커피를 마실 경우, 대부분 커피를 물에 타먹는다는 것이었다. 보통 커피는 물에 타먹는 것이 맞지만, 우유에 타먹는 것에 익숙한 브라질과 달리 페루는 커피와 우유 맛이 동시에 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하는 것 같다 하였다.
카렌의 말처럼, 이후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놀랍게도 믹스 커피 내에 있는 우유 맛을 신기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순수한 물에 다른 어떠한 것도 섞지 않고 마신다는 코멘트를 잊지 않고 해 주었다.
브라질은 cafe com leite라고 하는 커피 종류가 보편화되어있다. 커피를 우유에 함께 타서 마시는 것이 일상적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달달하고 부드러운 맛과 커피의 쌉싸름한 맛의 조화는 익숙한 맛이다. 하지만 페루 사람들은 커피를 물에 내려 그 순수한 원두커피 자체로 마시는 것에 익숙해 있는 문화가 있다. 같은 남미라고 해도 나라별로 민족별로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커피의 맛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방 커피 맛에 길들여져 왔고 믹스 커피에 입맛을 맞춰왔고, 현재 프렌차이즈 카페의 다양한 메뉴 속 달달하고 부드러운 맛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에게 커피 맛의 선호는 개인 취향 차이가 되어버렸지만 아직 커피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페루 사람들에게는 집에서 마시는 것이 습관화 되어있는 듯 했다.
또한 카페의 존재 유무가 독특했다. 브라질에서 카페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면 커피 자체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우리나라처럼 간단히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커피와 음식을 함께 파는 것이 대부분이고 이를 카페라 칭하지 않는다. 하지만 페루는 카페 자체가 장소 혹은 커피를 파는 곳이라는 뜻의 상점을 가리키며 그 기능 또한 한국과 유사하였다.
#현지 친구의 집에서!
카렌과 마찬가지로 슬기와 혜원이 브라질 유학 동안 친하게 지낸 페루 친구 알렉샨드라(Alexandra)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알렉샨드라는 오빠네 가족과 함께 san martin이라는 지구에 살고 있었는데, 미라 플로레스에서 북동쪽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동네였다. 시원한 바닷길을 이십분 가량 달리고 나니, 알렉샨드라가 사는 아파트 단지가 등장했다.
삼엄한 경비를 지나 들어간 집은 아담한 사이즈의 깔끔한 아파트였다. 알렉샨드라의 어머니가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계셨다. 따뜻한 느낌으로 우리를 맞이하여 주셨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알렉샨드라는 덥지 않냐며 어머니가 집에서 만든 치차가 있다고 내어 왔다. 우리는 가정식 치차를 마시게 된 것에 몹시 흥분했다. 꼭 제조 과정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우리가 오기 전 이미 모두 만들어 놓으셨었다. 하지만 마셔보는 것 만으로 어디냐, 하는 생각으로 감사하게 받았다. 갓 만들어 아직은 미지근한 치차는 밖에서 마시는 것 보다 덜 달고 덜 자극적이었으며 오묘한 쌉싸름한 맛이 조금 더 강했다. 하지만 여전히 맛있었다. 이후 어머니가 준비해 주신 맛있는 밥이 나왔다. 닭고기와 볶음밥, 그리고 페루식 아히(Aji, 소스와 감자가 함께 요리되어 나왔다. 치차와 함께 먹는 밥의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손님이 왔을 때 가정식 치차를 내놓는다는 것도 치차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고, 20살 밖에 안된 어린 친구도 치차를 너무 좋아한다는 말을 하였다. 남녀노소 모두 사랑하는 전통 음료가 있다는 것은 참 부러운 일 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알렉샨드라의 오빠와 아내, 그리고 아들이 도착했고, 알렉샨드라의 여동생, 어머니, 그리고 알렉샨드라의 친구가 모두 모여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페루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상당히 유익했다. 특히 우리는 커피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물어 보았는데, 완벽하지 않은 스페인어 실력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엄청난 체력 소모를 필요로 하였지만, 좋은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알렉샨드라의 친구는 우리의 조사를 흥미로워 하며, 자신의 국가가 남미 내에서 최저로 커피를 마시는 국가인지는 몰랐다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페루가 아마존 지역을 브라질, 에콰도르와 함께 공유하고 있는 만큼, 페루의 북동부 지역에서는 질 좋은 커피가 많이 생산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 품질의 우수성으로 인해 대부분 미국으로 수출이 되고 있다고. 페루산 커피가 맛이 좋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정작 일반 페루 사람들이 마시는 커피는 코스타리카나 콜롬비아 등지에서 보통 품질의 커피를 수입해와 저렴한 가격으로 마신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즐겁고 유익했던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음 여정지 아레키파로 향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우리의 안전을 걱정하신 알렉샨드라의 오빠 파울은 직접 차로 우리를 공항에 데려다 주셨다. 좋은 여행이 되라며 멀리서 인사해주는 파울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조건 없는 따뜻한 마음씨에 벌써 페루에 정이 들어버린 것 같았다.
Part.2 아레키파 [2017.02.04.~2017.02.07.]
# 백색의 도시, 아레키파
아레키파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제일 먼저 이 도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아르마스 광장으로 향했다.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살펴본 아레키파는 눈길 닿는 곳곳마다 하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광장에 크게 자리 잡은 성당과 건물들, 걸어 다니는 거리의 모든 벽들이 하얀 빛이다. 유럽에 오면 이런 느낌일까..싶을 만큼 유럽의 향기를 마구 풍기고 있다. 실제로 아레키파는 ‘스페인의 도시처럼 만들라!’는 명령에 따라 일궈진 곳으로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건축양식들이 더욱 옛 유럽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직전에 있었던 리마는 높은 빌딩, 고급 아파트가 즐비해있던 도시 중의 도시였던지라 더욱 상반되어 색다른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이토록 하얀 건축물이 많은 이유는 아레키파 근처에 있는 화산에서 나온 흰색 암석으로 거의 모든 건축물을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아레키파는 ‘백색의 도시’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사람들은 리마에서만큼 다양한 인종을 많이 찾아볼 수 없었고 그래서 그런지 우리 동양인들에 대한 현지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더욱 뜨거웠다. 아르마스 광장 가운데 분수대 근처로 우리들이 들어서자 다수의 무리가 일제히 동시에 고개를 돌려 노골적으로 우리를 구경할 정도였다. 우리들은 마치 동물원 우리 안의 동물이 된듯한 기분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우리에게 직접 다가와 중국 사람이니? 일본 사람이니?라고 물어보기도 하고 정말 TV속 연예인을 본 듯이 좋아하며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냐고 부탁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불타는 관심을 보낸 만큼 그들 자신을 우리에게 내비치는 데에도 불타는 열정을 보였다.
# 우리가 바로 Arequipeños!
Arequipeño! 바로 아레키파 태생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본 아레키빼뇨들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곳을 사랑하고 긍지 또한 매우 넘쳐보였다. 한 아주머니는 페루사람이냐고 묻는 우리들의 질문에 굳이 아레키파 출신이라고 콕 집으며 아레키빼냐라고 대답하실 정도였다.
설문지를 복사하기 위해 들린 한 인쇄소에서 만난 주인아저씨는 전형적인 Arequipeño였다. 아저씨는 자신의 도시 아레키파를 뛰어넘어 페루 사람인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하시며 거의 1시간동안 그의 조상들의 훌륭한 옛 업적들을 마구 뽐내셨다. 자신은 위대한 잉카인의 후손이고 페루를 중심으로 스페인이 정복하기 전 남미 대륙은 하나였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셨다. 또한 아레키파가 지닌 유럽의 모습은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은 예쁘다고 감탄하지만 자신에게 있어서는 진짜 페루의 모습이 아니며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치셨다. 그렇게 열정적인 대화 끝에 마지막으로 밝히신 아저씨의 이름은 퓨마(PUMA)...! 사실 실제 이름이 아닌 과거 잉카인들이 신성시했던 퓨마로 자신을 불러주길 바라며 알려주신 별명이었지만 그 모습을 보며 우리들은 비록 짧은 시간이었고 그가 페루인 중 극히 작은 일부분뿐이지만 잉카인의 후예로서 어떻게 그 정신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는지, 얼마나 자신의 역사와 나라를 사랑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러한 아레키페뇨들의 애국심과 자긍심을 보고 우리들은 어떤지 또한 잠시 반성해본다.
# 치차가 술이라니!
우리가 본 페루 사람들은 식사를 할 때면 언제 어디서나 치차가 한 세트처럼 따라다닌다. 리마에서부터 아레키파에 와서도 식당에 갈 때마다 테이블 여기저기에서 보라색으로 빛나는 잔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자기 집에서든, 허름한 식당에서든, 고급 레스토랑에서든... 꼭 그들의 옆자리는 보랏빛 음료가 차지한다. 치차가 페루 전통 발효음료라 해서 우리나라의 ‘식혜’쯤 되려나..?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거의 매 식사마다 빠지지 않는 모습을 보고 페루인들의 일상에 훨씬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구나! 하고 놀랐다.
하지만 이 놀라움은 새발의 피일뿐.. 아레키파 프리워킹투어에 참여한 우리는 가이드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치차가 술이란다! 매일 매일 페루 식탁에 올라오는 음료가 술이었다니! 사실 우리가 보고 마시던 보라색 치차의 정확한 명칭은 치차 모라다(Chicha morada)로서 발효시키지 않고 오늘날 누구나 마실 수 있게 음료 형태로 발전한 것이고 과거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술로서 사랑받았었다. 보라색 옥수수를 발효시켜 만든 막걸리로 잉카 시대 때는 종교의식이나 토지에 대한 제사 시에도 사용했고 힘든 농사일을 할 때 피로를 잊기 위해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그 예전 사람들이 마시던 치차를 느껴보기 위해 가이드분이 준비해주신 보드카를 휙 들이키고 바로 치차를 마셨는데 느껴지는 건 식도를 강하게 쓸고 내려오는 보드카의 알싸함뿐.. 치차의 향긋한 냄새가 입에 남은 쓴 맛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듯했지만 알코올은 알코올이었다. 한 때 이 곳 아레키파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치차를 마시고 취해서 거리에는 인사불성인 사람들이 가득하여 나라에서 치차 지령까지 내렸을 정도라고 하니 옛 치차의 위대함을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치차의 원료가 되는 옥수수도 성당 내 그림과 조각상, 옛 건물들의 벽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어 오래전부터 치차는 페루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치차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술 가운데 하나로도 평가 받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치차 데 호라(Chicha de jora)라는 옥수수 맥주도 남미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이렇듯 긴 역사를 지닌 치차는 옛날부터 페루 사람에게 사랑받으며 언제나 식탁 한 켠을 굳건히 지켜옴에 따라 자연스레 오늘날 페루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 고산병에는, 마테차!
매일 아침 숙소를 나와 활동을 위해 사람들이 많은 광장 근처로 갈 때면 길이 경사진 탓인지 우리들은 항상 숨이 차서 헥헥 대며 힘들어했다. 이토록 체력이 약했나하며 평소에 운동 좀 할 걸하고 좌절하곤 했는데 혜원은 가만히 앉아 있는 순간마저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며 힘들어했다. 혹시나 해서 한 아주머니께 물어보니 아레키파는 무려 해발고도 2300m가 넘는 고산에 위치해있다고 한다. 사실 많은 여행자들이 쿠스코로 가기 전 고산지대에 적응하기 위해 이 곳에 들르기도 한단다. 그렇다, 그렇게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던 고산병이 시작된 것이다!
마테차를 마시면 좀 나아질 것이라는 아주머니의 조언에 따라 근처에 있는 작은 가게로 들어가 마테차를 주문했다. 사실 우리는 알루미늄 재질의 관으로 된 빨대가 꽂혀있는 마테차 전용 컵에 마테나무 잎을 가득 담아 진하게 우려낸 차를 예상했지만 단순히 마트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마테차 티백으로 우려낸 차를 내주셨다. 아주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정말 마테나무 잎의 효능 때문인지 뜨거운 물을 마셔서인지 빨리 뛰는 심장이 조금은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쓴 맛도 거부감 들지 않고 부담 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이 마테차는 예부터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체력이 떨어지고 건강이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주 마셨다고 한다. 고산지대인 만큼 아레키파에서는 리마보다 차를 마시는 모습을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도 이 마테차와 함께 더 높은 고산지대인 쿠스코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Part.3 쿠스코 [2017. 02. 08 – 2017. 02.11]
우리는 안데스 산맥 해발 3,399m 지점에 있는, 옛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로 향했다. 쿠스코의 높은 고도와 일조량은 최상의 커피 원두를 재배하는데 적합하기에, 실제로도 페루 내 많은 커피 제품이 쿠스코 원두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실제로 쿠스코 현지에서도 커피를 많이 마실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 고산병, 얕보다가 큰 코 다친다.
페루에 도착한 지 열흘 정도가 지났다. 우리는 마지막 목적지, 쿠스코로 향하는 심야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갔다. 그곳에선 많은 사람들이 물 한 병씩을 가지고 대기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우리는 단순히 ‘없는 것 보단 낫지!’ 라는 생각으로 물을 구입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앞으로 어떠한 일을 겪게 될지 예상하지 못했다.
버스를 타고 얼마나 지났을까? 깊게 잠이 들었던 우리는, 미친 듯이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물을 아무리 먹어도 갈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건조한 버스 공기와 더불어 고통은 배가 되었다. 잠들었다가 물을 마셨다가, 몇 번을 반복하다보니 새벽 어스름이 밝아오기 시작했고 그제야 우리 몸에 일어난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손과 발은 퉁퉁 부어, 찌릿찌릿한 느낌이 반복되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두통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혔다. 이러한 증상과 더불어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진 페트병은 우리가 고산 지대에 도착했음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호텔에 도착했고, 가장 먼저 고산병 약을 복용했다. 나름대론 아레키파에서부터 고산병 약을 복용하고, 서서히 고도를 올려 적응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나 보다.
우리가 너무 지쳐보였는지, 호텔 프론트 직원이 코카잎을 띄운 차를 건네주며, 갑작스러운 고도 변화로 인해 몸의 컨디션이 악화되었을 땐 코카차를 자주 마시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코카잎을 생각했을 때, 쉽게 마약을 떠올릴 수 있다. 그렇다면 코카차를 먹어도 안전한 것인지? 정말 고산 증세에 효과가 있는지? 맛은 어떨지? 우리는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차를 마셨다.
코카차는 생각보다 익숙한 맛이었다. 맛을 정확하게 묘사하긴 힘들지만, 국화차와 같이 은은하면서도 민트처럼 톡 쏘는 맛이 있었다. 우리는 묘하게 중독성 있는 코카차를 두 잔씩 마신 후에야 로비에서 일어났다. 실제로 코카차가 효과가 있었는지 아니면 기분이 좋아져선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코카차를 마시기 전보다 몸이 가벼웠다. 이 후, 우리는 조식을 먹을 때마다, 숙소로 돌아왔을 때 코카차를 마시며 지친 심신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이래서 페루 사람들이 코카차를 즐겨 마신다고 말하는 걸까?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잎을 띄워 마시는 코카차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메뉴판에서 아예 없는 경우도 잦았고, 실제로 슈퍼마켓에 방문했을 때도 가공된 티백 형식으로 팔았으며 그 수도 극히 드물었다. 코카로 된 제품들 중 쉽게 접해볼 수 있었던 것 사탕 정도였다. 고산병 증상에도 좋고, 사람들이 즐겨 마신다는 코카차인데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우리는 그에 따른 해답을 찾기 위해 코카 박물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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