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4기] [동아시아] - 코리스텔러 팀 (1) [독립 운동가들의 발자취 - 동아시아 평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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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7-11-08 10:48 | Read | 1,306 |
본문
탐사 테마
2016년부터 한국사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는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역사적 인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반증입니다. 하지만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청소년들을 포함한 청년들에게 있어 역사 인식은 부족합니다. 이러한 예시로 ‘2013년 청소년 역사인식’(출처:서울신문) 결과에 따르면, 고등학생의 69%가 6.25전쟁을 북침(北侵)으로 대답한 바 있습니다. 또한 ‘2014년 대학생 역사 인식 조사’(출처:대학내일 20대 연구소자료)에 따르면 대학생의 39.2%가 6.25 전쟁의 발발연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일각에선 이러한 문제가 단순한 용어정립의 부족과 학교의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고 주장하며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재 동아시아에서 일어나는 한·중·일간의 갈등, 중국의 동북공정 그리고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는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변국들의 역사 왜곡 속에서 우리 대학생을 필두로 한 청년들이 역사 인식의 중요성을 알지 못 한다면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명언처럼 앞으로의 대한민국의 미래는 존재하지 못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한국학과 [Koristeller]팀은 학과 전공을 살려 여러 역사적 문제 속에서 현재 우리나라를 있게 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역사를 선택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많은 역사적 연구를 역사적인 장소에서 직접 간접 체험하고, 느끼면서 배울 것입니다. 따라서 중국의 하얼빈, 연변, 상하이 등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으며 우리 독립군의 주 활동 지역이었던 장소를 선택해 독립 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려합니다.
첫 번째 탐사 장소인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께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던 장소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의거를 진행하고도 감옥에서 쉬지 않고 대한민국의 독립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하여 안중근 의사는 옥중에서 미완의 [동양평화론]을 집필했습니다. ‘역사는 과거의 반복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 말은 역사를 통한 현재 상황의 해결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 탐사 팀은 이러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을 통해 [동양평화론]의 옛것을 배워 현재 발생하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 간의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대식 방법론을 배울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현재 상황에 맞게 각색하고 응용하여 현재 일촉즉발의 동아시아 상황에 평화를 이륙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두 번째 탐사 장소인 연변은 조선족자치구이자 과거 독립 운동가들이 한반도 내에서 일어났던 일본군의 탄압을 피해 간도 지역으로 피난을 갔던 대표적 장소입니다. 이 지역에서는 윤동주 시인과 청산리 대첩으로 유명한 김좌진 장군이 활동 했습니다. 그래서 본 탐사 팀은 김좌진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가 사전조사를 바탕으로 심화적인 학습 확인을 할 것입니다. 더불어 이 곳에서는 단순히 특정 독립 운동가들을 기념하는 기념관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알려진 몇몇의 독립 운동가들 뿐 만이 아닌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無名)의 독립 운동가들의 후손을 만날 예정입니다.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살아 계신 독립 운동가들은 존재하지 않지만 독립 운동가였던 아버지, 할아버지를 보고 배워왔던 후손들을 통해 당시 처참했던 독립 운동가들의 현실과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면에 숨겨져 있는 독립운동 역사를 배워올 예정입니다.
세 번째 탐사 장소인 상하이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존재했던 곳으로 독립운동의 핵심 지역입니다. 또한 상하이는 임시정부 뿐 만 아니라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일어났던 장소입니다. 영화 [암살]에서는 독립 운동가였던 안옥윤(전지현)은 거사를 치루기 전에 도회지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마시고 거리를 활보하며 일상적인 생활을 경험하고 좋아합니다. 본 탐사 팀은 이 장면처럼 다른 독립 운동가들 또한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본 탐사 팀은 이 곳에서 김구와 윤봉길 의사가 독립 운동을 실행하기 전의 일상적인 생활을 따라가며 그들이 느꼈을 희로애락을 간접적으로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우리와는 동떨어진 인물들처럼 느껴졌던 독립 운동가들에게도 가정과 일상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느끼며, 이런 일상생활을 포기하고 자신의 목숨을 대한민국의 독립과 맞바꾼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존경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탐사 목표
본 탐사 팀은 우선‘독립 운동가’라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 알아보는 활동을 전개할 예정입니다. 또한 중국 지역에서 벌어진 대한민국의 독립 운동은 독립 운동가들과 사건을 대부분 연결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개별적인 인물과 사건을 공부한다기보다는 전체적인 독립운동이라는 맥락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연쇄적으로 연결 지으며 탐사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한국의 정규 고등교육과정을 밟아 온 학생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대표적인 인물과 연결 지을 수 있는 관련된 사건들(예를 들어 윤봉길의 상하이 홍커우 도시락 폭탄 투하 사건, 김구의 상해임시정부 조직, 김좌진의 청산리 대첩 등)을 단지 이전의 이론적인 역사 공부에 그치지 않고, 직접 그 현장에 발을 디디고 당시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직접 전문가와 역사적 인물들의 친인척 및 지인들을 만나 더욱 생생하고 현장감 있는 이야기를 듣고 자세한 정보 수집을 할 것입니다. 이는 저희 팀의 풍부한 역사 지식 습득에 일조할 수 있으며, 수많은 역사 사건 가운데서도 우리나라 독립 운동에 대해 더욱 심층적이고 자세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저희는 중국 탐사 사전에 ‘또 하나의 한국전쟁’, ‘독립운동의 성지, 간도를 가다’, ‘만주, 동아시아 융합의 공간’,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 ‘국외 3·1운동’, 논문‘이용(李鏞)의 민족운동연구 : 1910~1920년대 항일독립운동을 중심으로’등 다양한 독립 운동과 관련된 책을 읽고 일주일에 1번씩 만나 토론을 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질문들을 만들고 더욱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는 내용 및 각자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또한 전공인 한국학과 교수님들과 탐사 전 약 세 번 정도의 만남을 통해 한국 독립 운동에 대해 강의를 듣고 읽은 책이나 강의 내용에 대해 교수님과 직접 의견을 나눠보는 시간을 가질 것을 계획 중입니다. 이는 탐사 사전에 폭넓은 지식을 미리 알아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탐사를 하는데 있어 저희 팀에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더불어 본 탐사 팀은 ‘독립 운동가들과 그들의 활동 전개’에 대해 단순히 기존에 만연해 있던 지식을 획득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독립 운동가들에게 직접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그들이 있던 그 현장에서, 그들에 대해 한 평생을 연구하고 공부해 온 학자들에게서, 그들은 고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을 기억하는 지인들에게서, 기존의 이미 알던 지식들을 다시 한 번 되새김과 동시에 심층적인 공부를 하고 마지막으로 ‘온고지신’의 자세를 통해 현대인에게 적용될 수 있는 배움의 터전을 열어보고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독립 운동의 현장이었던 중국의 지역을 탐방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그들의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궁극적인 탐사 목표를 모두 이룬다면 본 탐사 팀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 역사’에 대해서만큼은 어느 정도 전문적인 수준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합니다. ‘최고의 증거는 단연 경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저희는 윤봉길의 도시락 폭탄 투하 사건이라고 했을 때 단순히 교과서적인 지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상하이 홍커우의 거리와 그가 남긴 유품들, 그리고 윤봉길과 직접적인 연관관계를 가진 인물들을 떠올리고 그러한 탐사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저희끼리 직접 연구를 하고 배우는 데 있어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탐사 보고회를 통해, 그리고 역사 관련 전공 강의가 자주 개설되는 과 교과활동을 통해서도 남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독립 운동은 우리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저희 탐사 팀원들은 독립 운동이 일본의 강압적인 통치로부터의 대한민국 해방에 한 획을 그었으며 우리나라뿐만이 아닌 동아시아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므로 한국인들이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라는 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따라서 저희가 직접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사를 한다면, 개인적인 지식확장과 더불어 탐사 후에도 일상생활 속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우리 안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함으로서 역사 공부의 나비효과를 기대해봅니다.
마지막으로 본 탐사 팀은 저희들의 여정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물론, 따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한국학과와 사학과 및 로컬리티 전체 여러분들께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그래서 2학기에 있을 아카데미 위크에서 혹은 수업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끔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교과서에서 배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만 바라봤던 다양한 사건들을 직접 탐사를 통해 느낀 점을 위주로 보여드릴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어떻게 항일을 위해서 싸웠는지,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동아시아 평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실천해야겠다고 느낀 것들이 담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자료가 훗날, 한국학 및 로컬리티의 발전에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탐사 내용
2017년 7월 10일 1일차
13:10(한국 시간) 인천 출발
13:55(중국 시간) 칭따오 도착
경유 6시간 40분
20:35(중국 시간) 칭따오 출발
20:35(중국 시간) 하얼빈 도착
출발 당일 김경문 팀원은 나머지 팀원들을 대신해 대표로 서울역에 있는 KB 국민 은행에서 50만원을 중국 위안으로 환전했습니다. 모든 팀원들은 정각 10:30분에 인천공항에 각자 도착한 후 함께 모였습니다. 그리고 여행자 보험 센터에서 중국 국적인 허상도 팀장을 제외한 팀원들의 여행자 보험을 가입하고 하고 통신사로 향했습니다. 정민주 팀원의 명의로 해외 로밍 (1.5GB) 신청을 한 뒤 본격적인 출국 수속을 밟았습니다. 수속 절차를 모두 밟은 후, 면세점에서 미리 섭외해 놓은 중국 측 관계자 분들을 포함하여 도움을 주실 분들께 드릴 선물을 구입했습니다. 이후 13:10에 인천에서 칭따오로 출발하는 비행기에 탑승을 했고 맛있는 기내식으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등 좋지 않던 날씨 탓에 비행기가 혹시 지연될까 팀원들 모두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도 제시간에 비행기가 이륙을 하여 순조롭게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탐사지인 하얼빈에 도착하기 위해 중간에 칭따오에서 6시간 40분정도 경유를 해야 했습니다. 신속하고 합리적인 의견 교환을 통해 본 팀은 공항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칭따오에서 나름의 중국 문화를 체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하여 저희는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탑승해 칭따오의 중심지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팀원들 중 일부는 피곤함으로 인해 잠깐 낮잠을 잤고, 나머지는 중국에 도착했다는 설렘이 큰 듯 버스 창밖에 보이는 중국의 거리를 구경했습니다. 하지만 낯선 곳이라 팀원들 모두 길을 잘 몰랐기 때문에 저희는 본래 목적지였던 칭따오 맥주박물관보다 한 정거장 전 위치에 내렸습니다. 그곳의 명칭은 (电子商街)이였고 한국의 용산 전자상가와 비슷하게 핸드폰, 컴퓨터, 카메라 등 여러 가지 전자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곳을 둘러보고, 중국식 커피숍인 COCO에서 중국의 음료를 사먹으며 33도를 웃도는 더위를 이겨내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원래의 목적지인 칭따오 맥주 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칭따오 맥주 박물관은 실제 칭따오 맥주를 제조하는 공장을 새롭게 리모델링하여 칭따오 맥주의 전통을 관광객과 현지인들에게 알리는 곳입니다. 운이 좋게도 박물관을 방문하는 학생들은 학생증을 보여주면 입장료를 50% 할인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저희는 급하게 매표소에서 학교 종합 시스템에 접속하여 학생증을 다운로드 받은 뒤, 저희가 대학생임을 증명하고 할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맥주 박물관을 관람하면서 맥주가 제조되는 과정을 직접 보고, 시음 기회까지 얻었습니다. 중국에 오는 과정에서 팀원들 모두 쌓인 피로가 한 번에 풀리는 시원한 맥주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체험들을 통해 칭따오 맥주의 정보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비록 역사 교과서에서는 접할 수 없던 맥주의 역사이지만 우리가 단순히 생각 없이 마시던 맥주도 이렇게 무궁무진하고 유서 깊은 전통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너무 박물관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 나머지 비행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저희는 급하게 택시를 탑승했고, 칭따오 국제 공항에 도착해 간단한 입국 수속을 마친 후 20:35에 하얼빈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하였습니다. 비행기 안에 앉자마자 팀원들은 곯아떨어졌고 기내식이 나올 때 쯤 잠에서 깨어 저녁으로 중국식 돼지고기 덮밥을 먹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모두 찾은 뒤, 허상도 팀장 지인 분의 도움으로 팀원들은 호텔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12시가 넘어서야 체크인을 마무리 할 수 있었고 팀원들은 모두 호텔로 들어와 휴식을 취했습니다. 늦은 밤이었지만 팀원들이 허기져했기 때문에 많은 상가들이 문을 닫았음에도 불구하고, 호텔 매니저 분의 도움으로 근처의 맛집인 “阿里巴巴“에서 여러 꼬치 종류와 채소를 맛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음 날의 본격적인 일정을 위해 첫 날을 마무리했습니다.
2017년 7월 11일 2일차
10:00 기상 및 탐사 준비
12:00 한식당 점심, 하얼빈 역 이동 및 탐사
14:00 카페에서 휴식, 백화점 방문
16:00 하얼빈 성 소피아 성당, 조린 공원 이동 및 탐사
18:00 편의점 저녁 해결, 숙소 복귀
탐사 첫날 이루어진 장시간의 이동으로 인한 피로로 둘째 날은 여유 있는 시작을 계획했습니다. 오전 10시에 팀원 모두 기상해 2일차 탐사를 위한 준비 과정을 모두 마친 후 오후 11시 반에 숙소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오전 12시에 팀원 모두가 합의하여 한국 식당에서 김치 볶음밥, 비빔밥, 냉면, 오므라이스 등 한식을 먹고 본격적인 탐사에 들어갔습니다. 12시 반에 먼저 택시를 타고 하얼빈 역으로 이동했습니다.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위치 및 이토 히로부미가 숨진 지점 등의 의거 사건과 관련한 흔적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으나, 하얼빈 역의 공사와 동시에 휴관한 상황이었습니다. 자세히 조사해보니, 역의 개축과 동시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2년 만에 두 배로 확장하는 공사를 시행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휴관 사실에 대해 널리 공지된 바가 없어 본 팀원들과 같이 헛걸음을 하는 관광객들도 많다고 했습니다. 팀원들 모두 크게 실망하던 찰나에 새로운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완공될 때 까지 임시 이전을 할 계획인 곳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 곳을 3일차 탐사 계획에 추가하기로 하고, 4일차에 탐사를 진행할 장소인 연변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차표를 발권하기 위해 역에서 약 30분가량 대기했습니다. 명절 및 연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타 지역으로 이동을 하기 위해 여러 창구에서 긴 줄을 서고 있는 많은 인파에 익숙지 않은 팀원들은 중국의 인구에 대해 새삼 놀랐습니다.기차표 발권 후 새로운 경험을 위해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사륜 전동차를 타고 하얼빈 시내를 한 바퀴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두 개의 백화점이 마주보고 있는 시내 한 가운데에서 내려 더운 날씨에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시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예산 중간 정리 및 앞으로의 활동 수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생각보다 예산이 빠듯한 듯 보여 본 팀원들끼리 앞으로는 조금 절약하며 활동하자는 결심을 다지고 커피숍 맞을 편에 위치하고 있던 커다란 백화점을 구경해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팀원들 모두 중국의 먹거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백화점 지하 1층에 위치한 식품 코너에 가서 중국의 음식들을 구경하는 좋은 기회를 가졌습니다. 중간 중간 보이는 한국 음식들이 매우 반가웠습니다. 백화점에서의 짧은 구경을 뒤로하고 오후 4시 경,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 성소피아 성당에 방문하였습니다. 성소피아 성당은 러시아 풍의 건물로서 둥근 지붕을 가진 서양식 건축물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팀원들 모두 단체 사진을 남긴 후 바로 옆에 위치한 중국 의류 쇼핑몰에서 더위를 시킬 겸 중국의 다양한 옷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보다 물가가 저렴한 중국에서 팀원들은 각자 필요한 옷들을 구매하기도 하고 한국의 쇼핑몰과 비교도 해보며 팀의 화합을 위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후 6시 쯤, 2일차의 마지막 탐사 장소인 조린 공원을 방문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5분 이동했습니다. 조린 공원은 공원인 만큼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예쁜 경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넓은 공원에서 안중근 기념비를 찾아 나섰는데, 공원의 맨 왼쪽에 팀원들의 키보다 작은 비석이 세워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비석에는 한자 몇 자와 안중근 의사의 단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추가적인 정보에 대한 설명이나 그 외의 부가적 요소 없이 작은 기념비만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 팀원들은 모두 실망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중국어로라도 안중근 의사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과 이 곳에 비석이 세워진 이유 등을 써 놓았더라면 그 곳을 방문하는 중국인들에게 또한 좋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약간의 실망과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안중근 의사의 기념비 앞에서 팀원들끼리 단체 사진을 남긴 후 6시 경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던 과정에서 숙소 주변에 중국 편의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팀원들이 먹어보고 싶었던 중국의 편의점 음식들을 조금 사 숙소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함으로 2일차 탐사 일정을 모두 마무리하였습니다.
2017년 7월 12일 3일차
08:00 기상 및 탐사 준비
10:00 조선민속예술관 안중근 기념관 이동 및 탐사
12:00 평양관 이동, 점심
14:00 731 부대 이동 및 탐사
16:00 숙소 복귀, 휴식
18:00 저녁 KFC, 탐사 일정 정리
12일 수요일은 오전부터 바쁜 일정이 있었습니다. 바로 전 날 하얼빈 역에 있는 안중근 기념관을 방문하려 했지만, 하얼빈 역의 리모델링 일정으로 인해 안중근 기념관이 폐관을 해 찾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팀원들은 모두 좌절하고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팀원들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허상도 팀장이 조사해 본 결과, 그날 저녁 숙소에서 검색사이트를 통해 안중근 기념관 이관 기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 포털사이트와 한국 언론에서는 크게 보도하지 않았던 안중근 기념관의 이관 소식을 중국의 언론을 통해서 들은 것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안중근 열사의 기념관 이관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는 것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죄책감 또한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팀원들은 원래의 일정을 조금 수정하고, 안중근 기념관을 가장 먼저 다녀오기로 결정했습니다. 팀원 모두 오전 8시 반에 기상해, 탐사를 위한 준비를 마치고 오전 10시 조선민족예술관 옆에 위치한 ‘안중근 기념관’을 방문했습니다. 평일인데다가 이른 시간이여서 기념관을 둘러보는 사람들은 우리 팀원들 네 명뿐이었습니다. 기념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들어가려는데, 팀원들이 한국인임을 눈치 챈 직원이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고 짧게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관광객이 비교적 적은 비수기의 하얼빈에서 팀원들을 제외한 다른 한국인들은 보기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국에서 수 천 km 떨어진 하얼빈에서 한국말을 들으니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렇게 ‘안중근 기념관’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을 방문하러 온 팀원들의 노고를 알아주듯, 입구의 오른쪽에선 안중근 의사의 흉상이 있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흉상은 안중근 의사의 사료와 사진들을 동원하여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안중근 의사의 흉상 밑에 적혀있던 안중근 의사의 출생 연도와, 사형을 선고받아 돌아가신 연도였습니다. 1879년 – 1910년, 32살. 안중근 의사는 짧지만 굵은 삶을 살고 가셨습니다. 우리와 열 살조차도 차이가 나지 않는 나이에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를 위협하는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입니다. 또한 기념관에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 도착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까지의 과정을 날짜순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 외에도 안중근 의사가 실제로 집필한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의 원본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20분 남짓 기념관을 둘러본 뒤 마지막에 나가기 전, 방문객 란에 저희 [Koristeller]팀 팀원들의 이름을 모두 적으면서 방문을 마무리했습니다.
다음 일정은 팀원들의 중국 방문에 도움을 주신 허상도 팀장 지인 분들과의 점심 식사였습니다. 지인 분들께서 아직은 중국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 팀원들을 특별히 배려해주셔서 북한 음식점인 [평양관]에 가게 되었습니다. 평양관은 실제 북한 종업원 분들이 서빙을 하고, 북한의 요리사분들이 이북의 음식을 요리해 주는 식당입니다. 입구에서 여러 명의 여성 종업원 분들이 우리를 맞이해주셨습니다. 중국에 도착한 후 정민주 팀원이 중국에 왔으니 중국식 회전 테이블에서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평양관은 정민주 팀원이 언급한 회전 테이블에서 각자 먹을 만큼을 떠먹는 방식이었습니다. 음식으로는 북한 감자떡, 도토리묵, 튀김음식, 양꼬치, 삼겹살 등이 있었습니다. 또한 TV에서만 볼 수 있었던 북한의 술인 ‘대동강 맥주’와 ‘참대술’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일정이 731부대 박물관이었기 때문에 팀원들은 적당하게 한 잔씩만 맛보았습니다. 대동강 맥주는 한국의 맥주와는 조금 다르게 톡 쏘는 맛이 매우 강했고 알코올 도수도 5도를 넘었습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일 또한 있었습니다. 지인 한 분께서 여성 종업원에게 나이를 물었는데 마침 그 종업원의 나이가 겨우 23살로 김경문 팀원과 동갑이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태어난 곳이 남한과 북한으로 각자 달랐을 뿐인데, 한 명은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으로 대학에 진학해 이렇게 여행을 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다른 한 명은 타국에서 어린 나이부터 외화 벌이를 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이러한 깊은 생각을 하며 저희 팀은 이북 음식 체험을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공식 일정은 731부대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이었습니다. 팀원들이 점심을 먹었던 평양관에서 731부대 박물관까지의 거리가 비교적 가까웠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731부대로 향했습니다. 731부대 박물관은 새로 지어졌을 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었습니다. 안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들어 가보니,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러시아어, 몽골어로 써져있는 “비인도적 잔학행위”라는 글자를 볼 수 있었습니다.
박물관이 단지 중국인만을 관람 대상으로 지정하여 만들어진 박물관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박물관은 과거 731부대에서 생체 실험을 당했던 중국인 피해자들의 증언과 731부대에서 근무했던 일본인 가해자들의 인터뷰 등 다양한 사료를 전시해놓고 있었습니다. 731부대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물은 임산부 여성을 해부한 해부도였습니다. 그 해부도는 단지 해부에서 끝난 것이 아닌 시체가 썩어가기까지의 과정도 함께 담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끔찍했습니다. 관련 설명이 한국어로는 적혀있지 않았지만 팀원들은 영어로 된 설명을 조금씩 참조하며 허상도 팀장의 번역으로 구체적인 내용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731부대 박물관에서의 관람을 마지막으로 팀원들은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박물관이 단지 중국인만을 관람 대상으로 지정하여 만들어진 박물관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박물관은 과거 731부대에서 생체 실험을 당했던 중국인 피해자들의 증언과 731부대에서 근무했던 일본인 가해자들의 인터뷰 등 다양한 사료를 전시해놓고 있었습니다. 731부대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물은 임산부 여성을 해부한 해부도였습니다. 그 해부도는 단지 해부에서 끝난 것이 아닌 시체가 썩어가기까지의 과정도 함께 담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끔찍했습니다. 관련 설명이 한국어로는 적혀있지 않았지만 팀원들은 영어로 된 설명을 조금씩 참조하며 허상도 팀장의 번역으로 구체적인 내용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731부대 박물관에서의 관람을 마지막으로 팀원들은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연변은 조선족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라 거리 곳곳마다 한글로 쓰인 간판이 많았고, 한자로 쓰인 글 밑에도 한글 번역이 항상 뒤따라 있는 등 하얼빈보다 한국어를 훨씬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연변대학교 근처에 위치한 한국식당인 '백년 돌솥밥'에서 육개장과 된장찌개 등 모두 든든하게 점심을 해결한 뒤,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연변 지역에서의 숙소는 허상도 팀장의 조선족 친구 분 집이었는데 마침 그 친구 분께서 여행 중이라 집이 비어있어, 팀원들이 사용하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중국의 아파트였던 숙소는 신축 건물인 만큼 아주 깔끔하고 깨끗했습니다. 그러나 집 주인이 오랜 여행길에 올라있던 터라, 전기 공급이 중단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음 날부터 전기 요금을 정산하고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의도치 않게 팀원들은 모두 하루 동안 전기 없이 생활했습니다. 비를 많이 맞아 팀원들은 근처 사우나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숙소에 짐을 대충 풀어놓고 택시를 타고 연변 대학가 근처의 사우나에서 찜질을 하고 깨끗하게 씻을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과 별 다를 바가 없는 중국의 사우나가 팀원들에게는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집에서 음악을 듣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진 후 저녁시간 때가 되어 출출해져 숙소 근처로 나왔습니다. 숙소 근처에는 두 개의 가게가 있었는데, 하나는 한국 식품들을 파는 한국 가게였고, 다른 하나는 중국 식품들을 위주로 파는 중국 가게였습니다. 팀원들은 한국 가게에서 신라면 몇 봉지를 사고 중국 가게에서는 중국 과자들과 야식으로 먹을 수 있는 몇 가지의 식품들을 구매했습니다. 그 후에 중국 가게 옆에 위치한 중국 식당에서 꿔바로우, 야채볶음, 계란 볶음밥과 돼지고기 볶음밥 등 중국 가정식을 먹었습니다. 중국에 와서 처음 먹는 중국 가정식이었기 때문에 혹여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팀원 모두 맛에 감탄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8시 경에 숙소에 돌아와 각자 씻고 다음 날부터 시작될 연변 지역의 탐사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침 5일 차 오전에 연변대학교의 고승룡 인문사회과학대 교수님과 면담이 있었기 때문에 팀원들 모두 머리를 맞대고 면담 질문들을 준비했습니다. 약 10가지의 질문들을 준비했는데, 하얼빈에서 팀원들이 느낀 것들과 본 안중근 관련 내용들을 포함하여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대첩과 731부대에 대해 질문지를 작성해보았습니다. 질문지 작성을 마친 후로 마지막으로 교수님께 미리 면담 질문을 보내드려 준비하실 수 있도록 한 후, 모두 취침 준비를 했습니다. 전기가 없어 휴대폰과 카메라 충전도 되지 않아 전자기기의 배터리를 아껴 써야했고, 무엇보다 전등이 켜지지 않아 깜깜해지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기 때문에 9시 반에서 10시쯤, 팀원들은 평소보다 일찍 잘 준비를 했습니다. 이래현과 정민주 팀원은 방에 들어가 취침 준비를 했고, 김경문과 허상도 팀원은 야식으로 중국 순대를 먹으면서 노트북으로 한국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4일차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2017년 7월 14일 5일차
09:00 기상 및 탐사 준비
10:30 연변대 이동, 교수님 인터뷰 진행
14:00 백년 돌솥밥 식당 점심
15:00 숙소 복귀, 휴식, 탐사 전체 보고서 중간 정리
19:00 훠궈 저녁
오전 7시 30분쯤 허상도 팀장이 아파트의 관리 사무소에 방문하여 팀원들이 묵고 있는 숙소의 전기 문제를 먼저 해결했습니다. 이후 모든 팀원이 오전 9시경에 기상하여 준비를 마치고 10시에 숙소를 나와 연변대학교로 이동했습니다. 연변대학교에서는 고승룡 인문 사회학 교수님을 찾아뵙고, 사전에 전달해드린 질문지의 질문들을 바탕으로 교수님의 개인적인 견해 및 독립 운동의 역사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팀원들은 하얼빈 역의 안중근 기념관이 조선민족예술관 근처의 위치로 이전한 배경에 관한 질문을 시작으로, 기념관에 한국 관광객들보다 중국 관광객의 방문이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의미, 안중근 의사 기념관 이전에 대한 불충분한 정보, 현 시점의 한중 관계에 의해 앞으로 전개될 양상, 731 부대로 인한 한국 독립 운동가들의 피해,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 운동가, 청산리 전투 이후 중국에 미친 긍정적/부정적 영향,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 외의 업적, 독립 운동의 역사 교육의 중요성, 동양 평화 정신 확산의 방안 등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또한 짧지만 지금까지의 탐사를 통해 느낀 점 등을 말씀드리며 최근 사드 문제 등으로 한중 관계가 악화된 것이 안중근 기념관 유지 등에 혹여나 영향을 미쳐 자칫 관리의 소홀함 등으로 이어질까 걱정된다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며 이에 대한 의견을 여쭤보았습니다. 그러자 중국에서도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등과 같은 독립 운동가들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기리는 기념관 또한 철저히 관리하는 것은 정치적인 문제와는 별개로 당연한 것이니 굳이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친절히 답변해 주셨습니다. 또한 교수님께서도 동양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중국 대륙과 한국 반도, 일본 열도가 힘을 합쳐 평화를 이룩할 수 있게끔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약 한 시간 반 정도의 짧은 인터뷰였지만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으며 이번 탐사 기간인 열흘의 중간 지점에서 적절히 탐사 내용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점심을 먹은 뒤 숙소로 돌아와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날 저녁에 허상도 팀장은 운이 좋게도 지인 분을 통해 연변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연구하는 분이자, 한국학과의 반병률 교수님과도 친분이 있는 분을 섭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분은 현지 민족역사연구소 소장 겸 연변역사학회 회장을 맡고 계신 분입니다. 아쉽게도 교수님께서는 중국인인 허상도 팀장을 제외한 한국에서 온 나머지 팀원들을 직접적으로 만나 인터뷰를 하는 것은 거절하셨습니다. 확실히 한중 관계에 대한 문제가 존재하며 중국 정부의 제제가 엄중하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결국 다른 팀원들은 따로 숙소에서 고승룡 교수님과의 인터뷰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기로 했고, 허상도 팀장만 따로 교수님을 만나 뵙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녀온 뒤 인터뷰 내용을 팀원들과 공유하기로 하였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안중근은 우리 민족 역사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숭배하는 위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현재 21세기와 비교 및 적용을 할 수 있는지와 관련한 질문에 교수님께서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기반으로 현재와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동양평화론]은 1900년대에 지속되었던 전쟁의 영향으로 나온 것이고, 이와 달리 광복 후 지금까지는 평화가 장기간 지속되어 왔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1900년대의 전쟁문제는 사드 등 21세기에 시사되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문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동양평화론]을 현재와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본질의 차이가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청산리대첩]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는 [청산리대첩]은 약간 과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청산리대첩] 이전에 중국은 만주 지역에 군대를 파견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당시 일본군은 마적에게 돈을 주고 훈춘이라는 마을을 약탈하라고 했는데, 돈을 받은 마적들은 훈춘에 있는 일본 영사관까지 쳐들어가서 일본 순경 등약 11명의 일본인들이 죽였다고 합니다. 일본은 만주 지역의 작은 영사관을 하나 보호하지 못한 것에 대해 수치를 느끼며 이 구실로 일본군 약 2만 5천명을 만주 지역에 보냈다고 합니다. 실제 [청산리대첩]에는 약 천 여명의 일본군이 참전하였고, 3천명은 와룡 지역에서 대적했으며, [청산리대첩]에서 우리 독립군이 죽인 일본군은 약 3백 명이라고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청산리대첩]이 우리 민족의 항일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 전쟁이라고 하였습니다.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청산리대첩]의 승리로 우리 민족의 항일에 대한 열기는 더욱 상승했고, 독립 운동은 이전보다 활발해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방 직전까지도 우리 민족은 열심히 싸웠다고 하였습니다. 허상도 팀장의 인터뷰가 끝나고 팀원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일보사 부사장님과 함께 저녁 먹으러 광동 훠궈 집으로 이동했습니다. 온종일 인터뷰와 보고서 작성으로 고생했던 팀원들은 맛있는 훠궈를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습니다.
2017년 7월 15일 6일차
10:00 기상 및 탐사 준비
12:00 가정식 식당 점심
13:00 연변주청, 천지광장, 연변대 문화 거리, 연변 법원 탐방
17:00 분식 저녁
19:00 양꼬치 저녁, 노래방
10박 11일간의 탐방 기간 가운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여유로운 일정인 6일차는 숙소 주변인 연변대학가를 둘러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팀원들 모두 아침 10시까지 늦잠을 자고 숙소 근처 중국 가정식 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습니다. 아침 식사 후 각자 숙소에서 나갈 채비를 한 후 오후 12시 쯤 연변대학교 정문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에어컨이 없는 숙소와 더운 날씨 탓에 팀원 모두 지쳐있던 터라 다들 시원한 음료수를 먹기로 하고 연변대학가 근처를 살펴보던 차에 익숙한 카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페 체인점인 ‘카페베네’가 중국 연변 거리에 있는 것을 보고 모두 놀랐습니다. 익숙한 이름 때문인지, 반가운 마음인지 팀원들은 카페베네로 발걸음을 향했고, 한국 카페베네와 똑같은 내부 디자인과 커다랗게 붙여져 있는 광고모델인 배우 김수현을 보며 팀원들은 주문하기도 전에 들떴습니다. 각자 마실 음료를 주문한 뒤 대학가가 훤히 보이는 카페 창가에 앉아서 창밖을 살펴보기도 하고 탐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지나가는 연변대학교의 캠퍼스 커플을 보며 우리나라와 다를 것 없는 모습에 웃기도 했고, 잔뜩 멋 부린 젊은 대학생들을 보면서 한국 학생들과 꾸미는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또 팀원들이 현재까지 모두 수행한 탐사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전날 인터뷰한 교수님에 관한 이야기와 하얼빈에서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기념비에 대한 느낌들을 공유했습니다. 두어 시간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와 수다를 즐긴 후, 카페에서 나와 거리로 이동했습니다. 거리에는 연변 대학가의 명물이라 불리는 ‘매건채 뒤꿈치’를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팀원들도 서서 음식을 만드는 모습만 보다가 전혀 익숙하지 않은 ‘매건채 뒤꿈치’라는 이름 때문에 사먹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매건채 뒤꿈치 구경을 마치고 거리를 걸으며 이동하던 중 이래현 팀원이 여분으로 입을 티셔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 연변대학가에 있던 쇼핑몰을 들어갔습니다. ‘천지광장’이라는 큰 쇼핑몰이었는데, 아직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비어있는 공간도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쇼핑몰과 비슷하게 옷가게와 문구팬시점, 카페와 식당가도 모두 들어서 있었습니다. 옷가게의 경우 하얼빈에서 갔던 옷가게에 비해 비싼 옷들이 많았고, 문구 팬시점에는 마치 우리나라의 ‘다이소’나 ‘아트박스’처럼 예쁘고 아기자기한 저렴한 물건들이 많았습니다. 식당가에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체인점들이 있었는데, 중간 중간 비어있던 공간에는 앞으로 백화점의 유명 브랜드들이 입점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천지광장에서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오후 5시 경이었고, 팀원들 모두 저녁 식사를 위해 숙소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택시를 타는 대신 연변의 거리를 구경할 겸 멀지 않은 거리인 만큼 걸어가기로 했고, 걸어가면서 연변의 정부 청사와 법원과 같이 평소에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곳들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정부 청사는 정원 또한 예쁘게 꾸며져 있어 팀원들은 그 곳에서 사진을 찍고 자연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날 저녁에 허상도 팀장은 운이 좋게도 지인 분을 통해 연변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연구하는 분이자, 한국학과의 반병률 교수님과도 친분이 있는 분을 섭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분은 현지 민족역사연구소 소장 겸 연변역사학회 회장을 맡고 계신 분입니다. 아쉽게도 교수님께서는 중국인인 허상도 팀장을 제외한 한국에서 온 나머지 팀원들을 직접적으로 만나 인터뷰를 하는 것은 거절하셨습니다. 확실히 한중 관계에 대한 문제가 존재하며 중국 정부의 제제가 엄중하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결국 다른 팀원들은 따로 숙소에서 고승룡 교수님과의 인터뷰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기로 했고, 허상도 팀장만 따로 교수님을 만나 뵙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녀온 뒤 인터뷰 내용을 팀원들과 공유하기로 하였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안중근은 우리 민족 역사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숭배하는 위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현재 21세기와 비교 및 적용을 할 수 있는지와 관련한 질문에 교수님께서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기반으로 현재와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동양평화론]은 1900년대에 지속되었던 전쟁의 영향으로 나온 것이고, 이와 달리 광복 후 지금까지는 평화가 장기간 지속되어 왔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1900년대의 전쟁문제는 사드 등 21세기에 시사되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문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동양평화론]을 현재와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본질의 차이가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청산리대첩]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는 [청산리대첩]은 약간 과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청산리대첩] 이전에 중국은 만주 지역에 군대를 파견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당시 일본군은 마적에게 돈을 주고 훈춘이라는 마을을 약탈하라고 했는데, 돈을 받은 마적들은 훈춘에 있는 일본 영사관까지 쳐들어가서 일본 순경 등약 11명의 일본인들이 죽였다고 합니다. 일본은 만주 지역의 작은 영사관을 하나 보호하지 못한 것에 대해 수치를 느끼며 이 구실로 일본군 약 2만 5천명을 만주 지역에 보냈다고 합니다. 실제 [청산리대첩]에는 약 천 여명의 일본군이 참전하였고, 3천명은 와룡 지역에서 대적했으며, [청산리대첩]에서 우리 독립군이 죽인 일본군은 약 3백 명이라고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청산리대첩]이 우리 민족의 항일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 전쟁이라고 하였습니다.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청산리대첩]의 승리로 우리 민족의 항일에 대한 열기는 더욱 상승했고, 독립 운동은 이전보다 활발해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방 직전까지도 우리 민족은 열심히 싸웠다고 하였습니다. 허상도 팀장의 인터뷰가 끝나고 팀원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일보사 부사장님과 함께 저녁 먹으러 광동 훠궈 집으로 이동했습니다. 온종일 인터뷰와 보고서 작성으로 고생했던 팀원들은 맛있는 훠궈를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습니다.
2017년 7월 15일 6일차
10:00 기상 및 탐사 준비
12:00 가정식 식당 점심
13:00 연변주청, 천지광장, 연변대 문화 거리, 연변 법원 탐방
17:00 분식 저녁
19:00 양꼬치 저녁, 노래방
10박 11일간의 탐방 기간 가운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여유로운 일정인 6일차는 숙소 주변인 연변대학가를 둘러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팀원들 모두 아침 10시까지 늦잠을 자고 숙소 근처 중국 가정식 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습니다. 아침 식사 후 각자 숙소에서 나갈 채비를 한 후 오후 12시 쯤 연변대학교 정문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에어컨이 없는 숙소와 더운 날씨 탓에 팀원 모두 지쳐있던 터라 다들 시원한 음료수를 먹기로 하고 연변대학가 근처를 살펴보던 차에 익숙한 카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페 체인점인 ‘카페베네’가 중국 연변 거리에 있는 것을 보고 모두 놀랐습니다. 익숙한 이름 때문인지, 반가운 마음인지 팀원들은 카페베네로 발걸음을 향했고, 한국 카페베네와 똑같은 내부 디자인과 커다랗게 붙여져 있는 광고모델인 배우 김수현을 보며 팀원들은 주문하기도 전에 들떴습니다. 각자 마실 음료를 주문한 뒤 대학가가 훤히 보이는 카페 창가에 앉아서 창밖을 살펴보기도 하고 탐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지나가는 연변대학교의 캠퍼스 커플을 보며 우리나라와 다를 것 없는 모습에 웃기도 했고, 잔뜩 멋 부린 젊은 대학생들을 보면서 한국 학생들과 꾸미는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또 팀원들이 현재까지 모두 수행한 탐사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전날 인터뷰한 교수님에 관한 이야기와 하얼빈에서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기념비에 대한 느낌들을 공유했습니다. 두어 시간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와 수다를 즐긴 후, 카페에서 나와 거리로 이동했습니다. 거리에는 연변 대학가의 명물이라 불리는 ‘매건채 뒤꿈치’를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팀원들도 서서 음식을 만드는 모습만 보다가 전혀 익숙하지 않은 ‘매건채 뒤꿈치’라는 이름 때문에 사먹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매건채 뒤꿈치 구경을 마치고 거리를 걸으며 이동하던 중 이래현 팀원이 여분으로 입을 티셔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 연변대학가에 있던 쇼핑몰을 들어갔습니다. ‘천지광장’이라는 큰 쇼핑몰이었는데, 아직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비어있는 공간도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쇼핑몰과 비슷하게 옷가게와 문구팬시점, 카페와 식당가도 모두 들어서 있었습니다. 옷가게의 경우 하얼빈에서 갔던 옷가게에 비해 비싼 옷들이 많았고, 문구 팬시점에는 마치 우리나라의 ‘다이소’나 ‘아트박스’처럼 예쁘고 아기자기한 저렴한 물건들이 많았습니다. 식당가에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체인점들이 있었는데, 중간 중간 비어있던 공간에는 앞으로 백화점의 유명 브랜드들이 입점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천지광장에서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오후 5시 경이었고, 팀원들 모두 저녁 식사를 위해 숙소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택시를 타는 대신 연변의 거리를 구경할 겸 멀지 않은 거리인 만큼 걸어가기로 했고, 걸어가면서 연변의 정부 청사와 법원과 같이 평소에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곳들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정부 청사는 정원 또한 예쁘게 꾸며져 있어 팀원들은 그 곳에서 사진을 찍고 자연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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