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4기] [브라질-중남미] - 바모스 팀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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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7-11-07 12:10 | Read | 1,442 |
본문
불행하게도, 각자의 특성을 지닌 살바도르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13일 동안 생활하면서 현지에서 빈곤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종은 흑인 및 흑인계 혼혈인들이 다수를 차지함을 확연히 볼 수 있었다. 빈민촌인 파벨라(favela)에서 생활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대부분이 흑인임을 볼 수 있었고, 이 부분은 즉 브라질 사회에서 그들의 사회적 진출의 확률이 어떠한 이유든 간에 백인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짐을 알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주거, 교육, 취업, 의료 등을 포함한 삶의 전반에서 불평등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에 맞서 일부 사람들은 결혼을 불평등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한다고도 한다. “브라질엔 보이지 않는 적이 있다. 그 누구도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지만, 만약 당신의 딸이 흑인과 결혼한다고 하면 모든 것이 바뀐다." Ivanir dos Santos, Rio de Janeiro - Folha de São Paulo라는 말에서 앞서 언급한 결혼을 통한 신분세탁은 제한적이고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와중에 흑인 중에서도 남성보다는 여성이 소위 가정부, 보모와 같은 직업으로 백인들의 사회 안에 보다 깊숙이 진입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지적인 대상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이러한 브라질에서의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와 빈부격차를 줄이고자 제 35대 대통령 룰라는 부단한 노력을 하였다. 반면, 그의 노력과 달리 그는 나라 안팎으로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이라며 많은 비난을 듣고는 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가난에 걸었던 희망을 놓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또한 어릴 적 빈민가 출신으로 가난한 생활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국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국민들을 위한 여러 생활 밀착형 제도 등으로 빈민 2000만 명을 중산층으로 도약시키고 빈부격차를 줄였다. 결과적으로, 룰라 대통령은 임기 8년 동안 브라질의 국가 부채를 모두 해결하고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겠음 하였다.
“왜 부자들을 돕든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은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만 말하는가.” <출처 : EBS 지식채널 e '눈물의 룰라'편> 그는 특히나 임기 내내 빈곤층 감소와 이에 대한 계층의 불평등 격차를 줄이고자 일자리 창출, 교육과 의료 환경 개선 등의 여러 정책을 이루어냈다. 물론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정책들도 있다한다. 살바도르 일정 중 방문한 그곳의 대표적인 빈민촌 ‘area de liberdade’에서 브라질 자국민들의 말을 빌리자면 룰라대통령이 국정을 지휘한 시기가 황금기라 표현했다. 그들이 그 시절을 황금기라 일컫는 이유는 생활 기본적인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생활환경이 개선되었다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예시로는 ‘기아제로 fome zero'라는 식량계획이다. 이 정책은 빈곤하고 매끼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사람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영양가 있는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최종적으로 기아퇴치를 이루고자한 정책이다. “배고픔을 겪는 브라질 형제가 있는 한 저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할 것입니다. 룰라 정부의 최우선 정책은 '기아 제로 fome zero'라는 식량 계획입니다. 임기가 끝날 무렵, 브라질 국민이 아침, 점심, 저녁을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다면 저는 필생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생각하고 만족할 것입니다.” (룰라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줘 pg. 163) 그가 건설한 'fome zero'를 위한 로컬식당에서 영양가 있는 밥을 제공받아 먹고 있는 브라질 사람들을 보았을 때 새삼 놀라웠고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브라질 사회 안에서 굉장히 공교육 체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게끔 일을 가지는데 필요한 실용적인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중산계층의 계층사승이 조금이나마 가능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라 파벨라에 거주하는 사람이 말했다.
하지만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최 이후 오히려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측면이 많이 나타난 것 같았다. 2016 올림픽의 주 개최지였던 리우데자네이루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그곳을 공항리무진을 타고나오면서 흐릿하게 볼 수 있었던 파벨라의 모습은 너무나도 충격적 이였다. 우리나라에서 유치원정도 다닐법한 작은 아이들이 흙탕물 속에서 돼지를 비롯한 여러 가축들과 뒹굴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는 부산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던 감천문화마을을 부산지역의 예술가와 주민들의 합심으로 마을 군데군데를 벽화로 그리며 부산의 관광명소로 만들어냈다. 물론 리우데자네이루에서도 한국의 감천문화마을과 유사하게 1990년 빈민가의 허물어진 계단을 세라믹 타일로 이어붙인 셀라론계단 - Escadaria Selarón 리우데자네이루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탈바꿈시켰다. 하지만, 국제스포츠대회의 개최에 따라 대다수의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를 임시방편으로 가리고자 도로와 그곳을 분리시키는 반투명 판넬을 건설해 방치하는 모습 또한 볼 수 있었고 이는 겉에 모습만 신경 쓰는 정부의 급급한 마음을 대변하는 듯 해보였다. 화려한 국제스포츠대회의 폐막과 동시에 일반 서민들은 더더욱 극심한 가난을 겪고 있는 듯해보였고 이러한 불안정한 정세 안에서 사람들은 원망을 가지고 오히려 이에 맞서 투쟁하고 매일 크고 작은 폭동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우리는 13일 동안 브라질 생활에서 인종민주주의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브라질을 결코 인종민주주의 국가라 칭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답사 전 우리는 브라질이 다민족으로 구성되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더더욱 열린 시각으로 탐사에 임하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이 한 쪽으로 치우치는 순간 근본적으로 알아보기로 하였던 브라질의 ‘인종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정확하고 보다 객관적으로 조사 할 수 없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전에 알고 간 브라질은 인종 간 대립 및 차별이 없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이었다면, 현지인들이 느끼는 브라질은 인종 차별이 존재하는 곳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가정부처럼 소위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직업에서는 흑인계 및 흑인계 혼혈인종들이 대부분 종사하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와 다르게 사회적 위치가 높은 업종에서는 상대적으로 백인들이 종사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아직 브라질 사회 내에서 인종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브라질에서 탐사를 마친 지금, 우리는 항상 의구심을 가져왔던 ‘인종민주주의’의 개념이 단지 사회 내에서 발생하는 인종 차별을 미화시키기 위해 생겨난 화려한 덧칠일 뿐이었다.
브라질 상파울루대학에서 불평등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 정치학자 마르타 아레트체는 “인종차별은 더욱 수법이 교묘해지고 있다”며 “브라질에서 인종에 대한 얘기는 금기시되는데 이는 백인엘리트가 흑인을 통제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우리 또한 브라질에 있으면서 단 한 번도 자신과 다른 피부색을 지녔다고 무시하거나 차별당하는 모습을 표면적으로는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동양계인 우리를 무시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다민족 국가인 만큼 모든 인종을 포용하고 아우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브라질 사람들이 동양계에 대한 무시발언 및 행동을 할 때는 정말 황당했다. 이러한 부분에서 또한 브라질이 결코 인종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우리는 탐사 전후에 우리가 알고 있던 지인 분들과 현지에서 만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우리가 준비해간 몇 가지 질문들을 했었다. 대표적인 질문으로는 첫째, 브라질이 ‘인종민주주의’국가라고 알려져 있음을 아는가. 둘째 브라질 내에서 인종 차별은 목격한 적이 있는 가였다. 그리고 자국에 인종차별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브라질은 ‘인종민주주의’국가라 알려져 있지만 이는 잘 실현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반면 이에 맞서 흑인들이 인종에 반해 투쟁하고 언성을 높이기보다는 “그냥 그런가보다” 혹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이러한 생활에 적응해 살아간다고 표현했다. 물론 브라질 내에서 대부분의 차별을 받는 대상은 흑인이라고 했다. 이러한 인종적 차별은 더 나아가 생활 전반적으로 경제적 측면에서 불평등이 이루어지고, 결국 브라질이 ‘빈익빈 부익부’현상에서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끔 했다.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면서 특정 계층의 예를 들면 흑인 및 흑인계 혼혈인 들이 브라질사회에서 더더욱 소외되고 심지어는 배척되는 경우까지 생기는 듯 했다.
로컬리티 챌린지를 끝마친 소감
노민정
사실 로컬리티를 처음 시작 했을 때는 단순히 브라질에 가고싶다! 라는 생각으로 막연하게 시작하였다. 하지만 주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평소에 잘 몰랐던 종교에 대해 알게 되었다. 종교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브라질이란 먼 나라에 대해 공부를 하니 처음에는 무척 힘이 들었다. 책을 찾아 읽어보기도 하였고, 과 교수님을 찾아가 브라질 종교와 인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도 하였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깊고 전문적인 지식을 얻게 되었다. 어떤 것에 대해 깊게 파고드니 저절로 그 나라에 대해 더욱 호기심이 생겼고, 우리는 로컬리티를 통해 이 호기심을 풀고 싶었다. 어려웠던 주제가 흥미롭게 다가왔고 더 나아가 브라질의 인종에까지 생각을 넓힐 수 있었다. 이번 탐사를 위해 브라질에 지내면서 가장 좋았던 곳은 살바도르이다. 우리의 주 목적지이기도 했지만 너무나 다른 문화가 신기하고 새로웠다. 어딜 가든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우리는 주목을 받았다. 물론 대부분이 좋은 관심이었지만, 몇몇 사람들에게는 인종 차별을 겪기도 하였다. 처음 당한 인종 차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간 지 얼마 안됐을 때는 그저 웃기만 하였다. 며칠을 보낸 후 한 식당에서 "너네는 동양인이니까 중국어도 알아듣겠네?" 라는 어이없는 발언을 듣기도 하였다. 아직까지 이렇게 인종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브라질에 가기 전과 지금의 우리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정해진 틀 속에 박혀있던 우리의 지식과 견해는 다른 문화를 가진 나라에 대해 깊이 탐사함으로써 더욱 넓어지고 견고해졌으며 앞으로의 살아가는 일상생활 속에서 그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지현
이번 로컬리티 챌린지를 통해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말에 너무나도 큰 공감을 할 수 있었다. 학과에서 가장 친한 동기들과 한 팀을 이루어 오직 우리의 힘으로 정말 3번도 넘게 바뀐 주제선정부터 모든 계획서 작성, 열악한 환경 속에서의 사전 조사, 비행기, 호텔, 안정 등 모든 사전준비, 그리고 가장 중요한 현지에서의 로컬리티 챌린지는 2017년 1학기 나에게 정말 큰 선물이자 새로운 세상을 보게끔 해주었다. 우리가 한 학기 내 동안 열심히 준비한 만큼 현지에서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내기에는 아주 완벽했다. 물론 너무나도 위험한 브라질에서 정말 한순간도 긴장을 놓칠 수 없었고, 브라질 사람들의 따갑다면 따갑고 신기하다면 신기해하던 관심과 눈빛은 잊을 수 없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40시간 여정에 앞서 공항에서 어머니와의 마지막인사를 나눌 때는 “내가 과연 팀원들과 아무 사건사고 하나 없이 싸우지 않고 무사히 총을 안 맞고 한국에 돌아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정말 눈가에 눈물에 핑 돌았다. 어렸을 적 브라질에서의 3년 동안 생활로 브라질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알고 있어서 더더욱 겁이 나고 무서웠던 것 같다. 그 외로도 정말 수만 가지의 걱정에 앞서있었던 나를 옆에서 챙겨주고 할 수 있다며 용기를 심어준 동기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브라질에서 어릴 적 3년 동안 살면서 대놓고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인종차별을 겪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로컬리티 챌린지를 하면서 나와 팀원들이 브라질사람들과 외관상 다르게 생겼다(상대적으로 브라질인 들보다 작은 눈)며 2번 정도 비하발언과 행동으로 인종차별을 당했다. 정말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지만 우리는 결론적으로 브라질은 인종민주주의국가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 반성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혹여나 내가 어느 누구든 나와 조금 다르다고 해서 차별을 한 적이 없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번 로컬리티 챌린지를 통해 내가 세상을 좀 더 크고 넓게 볼 수 있게끔 만들어 준 것 같다. 앞으로도 내가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서 로컬리티 챌린지에서 쏟아 부었던 열정을 잊어먹지 않고 도전해 나가는 내가 될 것이다.
정수아
2017년도 1학기는 나에게 로컬리티 챌린지가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그 당시 로컬리티 챌린지에 빠져있었다. 학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취방에서 팀원들과 나는 항상 로컬리티 챌린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했다. 대학교 입학 후에 한 번도 무언가에 빠져 살아본 적이 없었던 나는 로컬리티 챌린지에 도전하면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바쁜 와중에도 잠을 쪼개가면서까지 활동 준비를 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앞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무언가에 열정을 다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나는 브라질 학과에 입학하기는 했지만 브라질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보니 포르투갈어를 배우는 것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브라질에 가서 직접 몸으로 부딪혀보니 자연스럽게 전공 공부의 필요성과 더불어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또한 탐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을 한층 더 넓힐 수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대화를 통해 파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것을 좋아했다. 이에 따라 브라질이라는 먼 나라에서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 그들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세상을 크게 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로컬리티 챌린지를 통해 돈으로 살 수 없는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이 활동을 통해 한 층 더 성장했으며, 탐사를 통해 더 깊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P.S 이런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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