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5기] [유라시아] - 박수굿당 팀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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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8-11-30 12:00 | Read | 1,475 |
본문
키르기스스탄
7월13일 오쉬
9시에 코칸드에서 택시를 타고 안디잔을 지나 1시에 오쉬에 도착했다. 탐사 중 첫 국경을 넘는 순간이라 조금 긴장했지만 우즈베키스탄 택시 기사분이 국경 넘는 것을 도와주셔서 별 탈 없이 오쉬에 입국할 수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샤먼은 지인을 통해 사전에 컨택했기에 걱정 없이 탐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키르기스스탄에는 지인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찾아야만 했기에 설렘과 두려움이 모두 공존했다. 탐사 전 한국에서 인터넷 검색 중 정효진이란 분이 키르기스스탄에서 ‘굴리야’라는 샤먼을 만나 점을 봤다는 기사를 찾았다.
그 분의 SNS를 찾아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냈더니 연락이 왔다. ‘카톡’이라는 메신저 아이디를 알려주셨고, 그것으로 혼자 어떻게 샤먼과 만났는지, 혹시 키르기스스탄에 아는 지인이 있는지 물어볼 수 있었다. 아는 지인은 아예 없었고, 즉석에서 만난 현지인들에게 물어서 찾아갔다고 하셨다. 별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기에, 현지에서 한인 마트나 식당에 가서 물어보거나 숙소 호스트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쉬에 도착해서 체크인 할 때 호스트한테 우리의 여행 목적에 대해 말하면서 샤먼을 찾고 싶다고 했다. 호스트는 우리의 주제를 흥미롭게 생각했고, 자신의 남동생을 가이드로 추천했다. 그 남동생은 16살이었지만 키르기스어를 기본으로 하고 러시아어를 잘 했으며, 영어를 소통할 정도로 했다.
우리는 호스트와 함께 샤먼을 만날 계획을 짰다. 처음에 ‘shaman’을 아냐고 물어보았지만 이해하지 못하셨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에서 배운 ‘Kinach’나 ‘folbin’을 아냐고 물어봤지만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모른다고 하셨다. 샤먼이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정의와 샤먼이 하는 일을 영어로 설명한 결과, 드디어 이해하시고는 키르기스스탄에서는 ‘moldo’와 ‘kozu acyuk’으로 부른다고 알려주셨다. 우리는 이것을 듣고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이 부르는 명칭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슬람 국가에서 ‘shaman’이라는 존재가 금기시되기 때문에, 샤먼을 샤먼(주술적 의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슬람적 요소로 인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만 알려주신 것이 아니라 샤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두 가지 종류의 샤먼이 있는데 아픈 곳을 치료해 주는 샤먼과 미래를 점쳐주는 샤먼이 있다. 술라이만투 성산 위에 아픈 곳을 치료해 주는 샤먼(‘Moldo’라 부른다.)은 미리 약속을 잡지 않아도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미래 점을 쳐주는 샤먼(‘kozu acyuk’라 부른다.)은 미리 전화하지 않고 가면 우리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며 kozu achuk 샤먼을 찾아주셨고, 몇 번의 거절 끝에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안 한다는 조건으로 내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숙소 바로 앞에 술라이만투 성산이 있기 때문에 내일 아침 9시에 산 정상에 있는 Moldo를 만난 후 점심을 먹고 Kozu acyuk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일정을 정한 후 여유로운 마음으로 저녁을 먹는데 문득 키르기스스탄사람들은 애국심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는 길에 멀리 보이는 술라이만투 성산 꼭대기에 키르기스스탄 국기가 꽂혀있었고, 집이나 건물 담벼락에 있는 울타리 모두 키르기스스탄 국기모양이었다. 또 저녁식사를 했던 음식점 컵에도 국기가 그려져 있었고, 식당에 있는 에어컨 위에마저도 국기가 꽂혀있었다. 이것은 무언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며 국기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국기는 빨강 바탕에 민족 전통의 노랑 무늬를 배치한 것이고, 이 노랑 무늬는 40개의 햇살을 가진 태양으로서 40개에 이르는 키르기스족을 나타낸다고 한다. 태양 안에는 3줄로 이루어진 2 세트의 선들이 교차하고 있는데 이 나라의 유목민이 사용하는 전통적인 천막인 유르트를 형상화한 것이다. 사전 조사에서 유르트 천장은 태양의 기운을 받기 위해 뚫려있는데, 이는 천신사상과 관련이 있었다. 이슬람국가이기 오래전부터 유목민족이었고, 그로인한 토착종교를 배제할 수 없음을 느꼈다.
7월14일
9시에 통역해주는 호스트 동생과 만나 같이 술라이만투 성산으로 향했다. 태양이 매우 뜨거워서 어떻게 오르나 걱정했지만 정신차려보니 정상이었다. 산 정상은 샤먼과 만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로 북적였다. 줄이 너무 길어서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여 직접 의식을 받지는 못했지만, 문 앞에서 어떤 행위를 하는 지만 보았다. 이 Moldo는 방에 6~7명의 손님을 들인 후 이슬람 경전을 읽는 것으로 의식을 시작했다. 동생의 설명에 의하면 이 읽는 행위로 사람들의 나쁜 기운을 빼주고, 근심과 스트레스, 걱정, 두려움을 없앤다고 했다.
반대편으로 하산하는 길에서 두 번째 Moldo를 만났다. 이 Moldo의 의식 행위를 보지 못했지만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영어로 질문을 하면 동생이 러시아어로 번역하여 샤먼에게 전달했고, 다시 샤먼의 답변을 영어로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우리는 5가지의 원하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몰더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코란을 읽으면서 영혼을 맑게 해준다.”
“몰더와 코지아축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몰더는 코란을 통해서 이슬람의 말을 전해주는 것이고, 코지아축은 옆에 있는 영혼의 말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또한 몰더의 존재는 정부에서 인정하지만 코지아축은 정부에서 금기시 하는 존재입니다.”
“몰더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의식은 무엇인가요?” “코란을 읽는 행위입니다.”
“그 의식을 치루면 어떻게 변하나요?” “코란을 읽으면 여자의 경우 임신을 하거나 결혼할 수 있고, 아픈 사람의 경우 나쁜 기운이 빠져나갑니다.”
“어떤 신을 믿습니까?” “당연히 알라신 입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3000솜을 드린 후 다시 하산했다. 코란을 읽고 병을 치료해 주는 것은 이슬람적 행위로 볼 수 있으니까 고대부터 행해진 것이 아니라 이슬람이 들어온 시기부터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산 밑쪽에 위치한 ‘술라이만투 박물관’에 가서 정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박물관에는 샤먼과 관련된 유적이 있었다. 이 공간은 ‘chilten’이라고 불린다. 영어로 써져있는 설명을 보니 샤먼은 chilten에서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의 영혼을 고쳐주는 역할을 했다. 4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며, 무기력함을 감소시키기 위해 약간의 물만 먹었다고 한다. 샤먼의식이 이슬람으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 행해져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박물관에서 나온 후 점심을 먹고 kozu acyuk샤먼을 찾으러 나섰다. 동생은 이슬람을 믿는 사람으로서 Kozu acyuk을 찾으러 가기 싫다고 했다. 왜냐하면 국가적으로도 금기시 되고, 이슬람에 배반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찾아가는 거라고 해서 그 동생에게 매우 미안했다. 이번에 찾아간 사람은 카드로 점쳐서 미래를 예언하는 샤먼이었다. 카드를 섞고 그중 하나를 골라서 그 부분을 맨 위로 오게 했다. 그리고 그 카드를 중심으로 하나씩 다 펼쳐서 카드 내용을 읽으며 미래를 하나씩 알려주었다.
“오래 살 것이고, 원하는 직업을 얻을 것이다. 현재 남자친구와 결혼할 것이고, 어머니가 아플 수 있으니 옆에서 계속 신경을 써야 한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kozu acyuk이 있을 수 있으니 이 종류의 샤먼을 더 찾아보았지만 아쉽게도 외국인이기 때문에 거절하거나, 다른 지방에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운 상태여서 더 이상 만날 수 없었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인터뷰내용과 샤먼 의식의 방법을 정리한 후 내일 일정을 위해 휴식을 취했다.
7월15일
우리는 유목문화인 유르타를 보기 위해 ‘자일루’라는 산으로 갔다. 그곳까지 가는 데 4시간 정도 걸리므로 저녁 9시 비행기에 늦지 않기 위해 일찍 나왔다. 차를 타고 가면서 드넓은 초원 위의 방목된 말과 야크떼를 보았다. 목적지인 유르타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넌(빵)과 말고기를 먹으면서 전통 술인 크므즈도 마셨다.
점심을 먹고 나와서 말의 젖을 짜는 모습을 봤다. 여기서 말의 젖을 짜는 사람은 한명만 허용된다고 한다. 만약 원래 정해진 사람이 아닌, 다른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젖을 짜게 되면 말이 놀라 뒷발을 차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우리는 멀리서만 지켜보며 키르기스스탄의 유목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시간이 다 되어 산을 내려와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익숙한 한국말로 말을 거는 분이 계셨다. 그 분은 코이카에서 봉사를 오셨는데 잠시 오쉬에 여행차 오셨다고 했다. 그분 친구인 비슈케크 인근 도시 나린에 사는 키르기스스탄 현지분과도 인사를 나눴다. 우리는 18일에 나린이라는 도시에서 샤먼을 찾으러 갈 계획이었지만, 아직 확실하게 연락이 된 샤먼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가기 전에 나린의 현지분을 만나다니! 감격하며 샤먼 정보에 대해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 분은 나린에서 샤먼에 대해 들어본 적 없다고, 나린에 와도 샤먼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급하게 계획을 변경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오후 9시 비행기를 타고 키르기스스탄의 수도인 비슈케크로 갔다. 밤 11시에 숙소에 도착하였고, 체크인을 하며 호스트와 잠깐 얘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우리가 비슈케크에 온 이유를 설명하며 샤먼의 정보에 대해 여쭤보았다. 하지만 샤먼에 대해 잘 모르신다고 하셨다. 우리는 큰일 났다고 생각했고, 내일 대책회의를 하기로 하며 잠에 들었다.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7월16일
어제 정보로는 샤먼을 찾을 수 없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샤먼을 알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찾을까 토론을 했다. 시장에 가면 남녀노소 모두 있고, 사람도 많이 오기 때문에 샤먼에 대해 아는 사람 한명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시장으로 출발했다. 음식점 주인부터 해서 옷가게 점원한테도 샤먼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모두들 비슈케크나 인근 지역에 아는 샤먼이 없다고 했고 샤먼이라는 존재를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한식당에 가서 물어보았지만 비슈케크는 도심이기 때문에 샤먼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비슈케크나 인근 지역에 샤먼이 거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금까지는 모든 도시에서 샤먼을 만났기 때문에 비슈케크에서도 샤먼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조금 실망했다. 우울해진 마음으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내일 이식쿨 호수로 갈 준비를 한 후 일찍 잠에 들었다.
7월17일
공동묘지와 암각화를 찾으러 이식쿨 호수로 떠났다. 버스타고 편도 5시간이 걸린다. 9시에 출발하여 오후 2시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오기 시작해서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음식점에 2시간 정도 머물렀다. 비가 그치고 밖으로 나와 암각화를 찾아보았다. 이곳에 오기 전 한국에서의 사전조사에서는 이식쿨 호수 옆에서 암각화를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했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호수 근처를 돌아보고 현지인들한테도 물어보았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암각화 찾기를 그만두고 호수 옆에 위치한 공동묘지로 이동했다. 공동묘지를 보며 우리나라처럼 조상을 섬기는 것인가, 그렇다면 유일신만 믿는 것이 아니라 영적 존재를 믿는 것인가 생각했다. 그때 공동묘지 옆 탑같이 생긴 건축물 맨 위에 이슬람을 상징하는 초승달이 조각되어 있었다.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과 혼합된 다른 종교를 찾기 이전에 이슬람은 이슬람이구나 생각했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7시에 돌아가는 버스에 탑승했다. 5시간을 다시 달릴 생각을 하니 힘이 빠졌다. 셋 다 지쳐서 밤 12시에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7월18일
어제 10시간동안 차를 타서 다들 지쳐있었다. 거기다 기름진 현지식을 많이 먹다보니 물갈이를 시작하여 계속 화장실에 가게 되었다. 그래서 일정을 바꿔 아침에는 쉬면서 체력을 보충하고 오후 3시쯤 일정을 시작했다. 우리는 비슈케크 박물관에 갔다. 그곳에서 어제 보지 못한 암각화를 볼 수 있었다. ‘Saimaly-Tash’라는 암각화이다. 기원전 3천년부터 중년까지 Tien-Shan과 Pre-Ferghana주민들에 의해 계속해서 신성한 장소로 사용되어 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여기에는 사냥꾼, 가축 사육자, 최초의 소작농들의 일상생활, 심리, 역사, 문화에 대한 것들이 담겨있다. 그들의 영적인 문화, 그들의 종교적인 믿음 그리고 그들의 산과 자연, 토템과 태양-우주 이미지에 대한 숭배가 나타나있다. 이런 설명을 읽으면서 어제 이식쿨 호수에서 암각화를 찾지 못해 아쉬웠다.
박물관에서 나와 저녁을 먹으며 내일 가는 마지막 도시인 알티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숙소로 돌아와 일찍 잠이 들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7월 19일
탐사 10일째, 우리는 키르기스스탄에서의 탐사를 마무리하고 버스로 대략 3시간을 달려 카자흐스탄 국경 검문소에 도착했다. 도착하기 전부터 우리는 버스 안에서 카자흐스탄에 간다는 생각에 매우 신나있었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5개국 중 경제 성장률이 가장 높은 나라일 뿐만 아니라 세계 국가 면적 9위에 오를 만큼 굉장히 넓은 나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카자흐스탄에 가는 내내 버스에서 다른 중앙아시아국가에서는 흔히 볼 수 없던 높은 건물들과 카자흐스탄 특유의 푸른색 에메랄드 빛의 건물들을 상상하며, 그리고 한편으로는 ‘너무 발전된 나라이기에 우리가 찾아보려는 샤머니즘적인 요소들이 남아있을까?’라는 걱정을 떠안은 채 카자흐스탄에 발을 내딛었다.
설렘 반, 걱정 반의 마음을 가진 채 도착한 카자흐스탄 국경 검문소는 키르기스스탄의 국경 검문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직원이나 국경 심사 과정이 조금 더 체계적인 느낌이었으며, 건물 또한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음직한 모습이었다. 특히 우리가 가장 좋아하던 푸른색 지붕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지붕, 과자봉지, 초콜릿 봉지 등 카자흐스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푸른색은 국기에도 나타나있다. 이러한 푸른색 바탕은 카자흐스탄의 다양한 민족을 상징하는 동시에 하늘신 ‘곡탄리’와 물을 상징하는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알라신만을 모시는 이슬람 국가에서 국기에 샤머니즘적 요소인 푸른색이 담겼다는 점에 신기한 마음을 가지며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향했다. 그렇게 카자흐스탄 국경 검문소에서 대략 3시간을 더 달려 카자흐스탄 알마티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그 후 메가 센터에 있는 숙소로 이동한 후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7월20일
탐사 11일째, 아침 9시에 아침식사를 한 후 10시에 우리는 카자흐스탄 중앙 박물관으로 향했다. 1931년 설립된 카자흐스탄 중앙 박물관은 알마티에서 가장 큰 박물관일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전역 중에서도 가장 큰 박물관 중 하나이다. 카자흐스탄 중앙 박물관은 고대 화석과 건축물에 대해 전시해둔 1관, 샤머니즘과 의복, 장신구, 매사냥 등 카자흐스탄 중세에 대해 전시해둔 2관, 카자흐스탄의 근대에 대해 설명해둔 3관, 카자흐스탄과 여러 다른 나라들과의 국제관계 및 현대의 카자흐스탄에 대해 전시해둔 4관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샤먼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 여쭤보았을 때 큐레이터분이 이렇게 이야기해주셨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샤먼을 어떤 식으로 부르나요?”
“카자흐스탄에서는 샤먼을 Бақсы라고 부른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2관을 눈여겨보았다. 2관에서는 카자흐스탄 중세시대에 활동했던 박스들의 의식행위, 그 때 사용했었던 장신구들, 그리고 키이즈 위이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었다. 우선 우리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박스들이 사용했었던 모자였다. 특히 모자에는 달이 그려져 있었다. 이슬람이 존재하기 전부터 중앙아시아 지역은 하늘을 숭배했었다. 따라서 사냥에 나가거나 몸이 아플 때 달의 힘을 빌어 성공적인 사냥과 상대방을 치료하는 의식행위를 나타낸 것이라 설명되어 있었다. 또한 동물 문양의 장신구를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특히 하늘의 힘을 얻기 위해 독수리 혹은 매를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하늘을 숭배하는 것은 단순히 박스들의 도구에서만 찾아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전통 가옥인 키이즈 위이의 천장에서도 찾아 볼 수 있었다. ‘샹으락’이라고 불리는 천장의 구멍은 하늘을 숭배하는 통로였다. 그 구멍을 통해 하늘의 기운을 받아 안전하고 성황된 유목생활을 기원한다는 내용이 설명되어있었다.
카자흐스탄 중앙 박물관에서 우리는 옛 Бақсы들이 하늘의 힘뿐만 아니라 동물의 힘을 빌어 작게는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것에서 부터 크게는 아픈 사람들을 치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이 동물들 또한 하늘의 왕인 독수리와 매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장신구의 경우는 동물 모양이 아니면 주로 옥을 사용하여 푸른색의 장신구를 사용했는데 이 또한 하늘과 비슷한 색을 사용한 점에서 천신사상적인 요소가 담겨있었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하지만 하나 아쉬운 점은 직접 Бақсы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는 것이었다. 박물관에 계신 큐레이터와 연구원, 그리고 information center에 계신 분들에게 박스를 직접 만나볼 수 있냐고 여쭤보았지만, 모두가 옛날에 Бақсы가 있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알마티에는 없다고 이야기 하셨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숙소 앞 '메가 센터'라고 우리나라의 코엑스와 비슷한 느낌의 복합 쇼핑몰에 갔다.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서 볼 수 없었던 스타벅스, 엔젤리너스, 미니소 등의 국제 브랜드를 볼 수 있었다. 또한 두 나라에 있을 때보다 물가가 확 올랐다는 인상을 주었다.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서는 한화로 4~5000원이면 배부른 한 끼를 할 수 있었는데 카자흐스탄에서는 7~8000원정도 생각해야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개방적으로 다른 브랜드를 수입하고, 물가가 확 오른 것을 보며 확실히 카자흐스탄이 발달되었다고 느꼈다. 또한 이렇게 도시가 점점 발달할수록 샤먼의 존재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7월21일
탐사 12일째, 아침 10시에 판필로프 공원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으로 향했다. 판필로프 공원 중앙에 위치한 젠코브 러시아 정교회 성당은 세계 8대 목조 건축물로도 잘 알려진 성당이다. 높이가 50m 정도 되지만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건축된 것으로 유명하며, 규모 10.0의 알마티 대지진에도 견뎌낸 건축물로 내구성이 튼튼한 정교회 성당이었다. 처음 외관을 접했을 때, 우리는 한 목소리로 ‘우리 에버랜드 온거 같은데?’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동화 속에 나오는 건축물 같았다. 여러 형형색색으로 채워진 지붕은 우리를 동심의 세계로 이끄는 듣한 느낌을 주었다. 내부에 들어가자 화려한 여러 장식들이 우리의 마음을 훔쳤다. 금으로 도금되어 있는 정면의 장식은 신을 두르고 있었다. 또한 여러 신들의 모습이 벽들에 모두 그려져 있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딱딱한 모습의 성당이 아니라 무언가 유럽에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모습이여서 거부감 없이 편히 들어갈 수 있었다.
젠코브 성당은 대체로 내부와 외부 모두 화려하게 장식이 되었다. 특히 외부의 모습은 에버랜드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모습이었기에 의외로 친숙한 느낌이었다. 젠코브 성당을 둘러본 후 점심식사를 했다.
내일이면 탐사에 마침표를 찍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우리는 카자흐스탄에서 샤먼 한명도 만나지 못하자 일이 잘 안 풀린다며 속상해했다. 다시 의지를 다지자는 의미에서 메가 파르크에 가서 산책을 하며 2주간의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샤먼과 컨택 된 도시에서는 짧은 시간 내에 컨택된 모든 샤먼을 만나야 해서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컨택 되지 않은 도시에 왔을 때는 샤먼을 찾으러 도시 외곽으로 더 나가볼 걸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내일 마지막으로 샤먼을 찾아보기로 하며 숙소로 돌아갔다.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7월22일
탐사 마지막날, 아침식사 후 10시에 로자바크예브 모스크로 향했다. 로자바크예브 모스크의 외관을 처음 본 순간 지붕 색이 금색이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신선했다. 우리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방문했던 대부분의 모스크는 지붕이 푸른색이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신선히 다가왔다. 입구는 총 두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남자는 정문을 통해 1층에서 예배를 드리며, 여자는 옆으로 돌아 들어가서 2층으로 올라가서 예배를 드린다. 또한 내부는 푸른색 계열과 중간에 금색으로 장식을 해놓았으며 벽면에는 코란의 구절을 담아놓은 벽서가 금색으로 적혀있었다.
대체로 푸른색으로 장식되어있는 로자바크예브 모스크는 화려했지만, 전날 살펴본 젠코브 러시아 정교회 성당의 화려함과는 사뭇 달랐다.
“성숙함이 담겨 있는 화려함이었다.”
하지만 동물 모양 등 샤머니즘적인 요소가 담겨있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는 점이 조금은 아쉬웠다. 뿐만 아니라 모스크를 살펴본 후 밖에서 사람들에게 박스에 대해 직접 만나볼 수 있는 장소가 있냐고 물어보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모른다고 스쳐지나갔고, 한 할머니는 모른다며 버럭 화를 내고 가셨다. 이로써 샤먼은 도시 외곽지역에는 존재하지만 점점 도시로 갈수록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과 중앙아시아 내 발전된 국가일수록 찾아보기 힘들다는 우리의 결론은 더욱 기정사실화되었다. 샤먼을 찾지 못해 아쉬웠지만, 어떻게 보면 샤먼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당연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게 되었다.
로자브크예브 모스크를 살펴본 후 우리는 인천공항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기위해 알마티 국제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아시아나 oz578편을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탐사결과
1. 지역별 샤먼 명칭 정리
우즈베키스탄 :
Ⅰ. folbin Ⅱ. kinnach
키르기즈스탄 :
Ⅰ. Молдо Ⅱ. Кози асуик
카자흐스탄 :
Ⅰ. Бақсы
2. 인터뷰 정리 및 샤먼 비교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folbin>
질문 | 비고 및 답변 |
당신은 어떤 일을 합니까? | folbin은 미래를 예언하고 치료하는 사람 |
folbin과 shaman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 폴빈과 샤먼은 단어만 다를 뿐 같은 의미이다. 의식의 방식과 사용하는 물건이 다르다 |
금지된 행위나 행동이 있다면? | 다른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기도(주술적 행위) EX. 사이를 나쁘게 하는 일 |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합니까? | 1. 임신이 안 될 때 2. 건강이 안 좋을 때 3. 일이 안풀릴 때 |
중요하게 생각하는 물건이나 의식이 있다면? | 1. 칼 (나쁜 영혼을 없앨 때) 2. 회초리-Kamchi (사람 안에 나쁜 영혼[jin]이 들어갔을 때) |
주로 오는 손님은 누구인가? | 남녀노소 상관없이 다 온다. |
folbin이라는 직업이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 | 손님들의 고통을 넘겨받아 고통스러울 때가 가장 어려움. |
당신은 어떤 신을 믿는가? | 알라 |
<우즈베키스탄 코칸트 kinnach>
질문 | 비고 및 답변 |
당신은 어떤 일을 합니까? | 심리적-영적 치료 |
금지된 행위나 행동이 있다면? | 1. 예언을 하면 안된다. 2. 음지에 가면 안된다. (양지[white side]에서 일하는데 장례식과 같은 음지[black side]에 가면 나쁜 기운이 몸에 들어온다.) |
중요하게 생각하는 물건이나 의식이 있다면? | kinnach가 되기위해선 Master kinnach에게 축복을 받아야한다. 알라에게 사람모양의 빵, 고기, 밀가루, 차를 준비해서 제물을 바쳐야한다. |
주로 오는 손님은 누구인가? | 남녀노소 상관없이 다 온다. (아프거나 스트레스받는 사람들) |
folbin이라는 직업이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 | 1. 사람들의 병을 kinnach가 빨아들인다. 이후 kinnach가 아프게 되면 Master kinnach에게 가서 축복을 받고 낫게된다. 2. Kinnach는 불법이다.(사회적 인식) |
당신은 어떤 신을 믿는가? | 알라 |
<우즈베키스탄 코칸드 folbin>
질문 | 비고 및 답변 |
당신은 어떤 일을 합니까? | folbin은 미래를 예언하고 치료하는 사람 |
folbin과 shaman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 폴빈과 샤먼은 단어만 다를 뿐 같은 의미이다. 의식의 방식과 사용하는 물건이 다르다 |
금지된 행위나 행동이 있다면? | 다른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기도(주술적 행위) EX. 앞길을 막거나 임신을 못하게 하는 일 |
당신은 어떻게 folbin이 되었습니까? | 할머니부터 무당이였다. (한국 무당과 같이 신내림이나 가족력) (다른 shaman들과 차이) |
중요하게 생각하는 물건이나 의식이 있다면? | 1. 타스피흐(Taspih) - 목걸이를 손가락에 걸고 흔들면서 주변의 영혼들에게 점괘를 물어본다. |
주로 오는 손님은 누구인가? | 남녀노소 상관없이 다 온다.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 |
folbin이라는 직업이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 | 손님들의 고통을 같이 느낄 때 힘들다. |
당신은 어떤 신을 믿는가? | 신앙은 이슬람이지만 점괘를 볼 때는 마음과 영혼의 소리를 듣는다. |
<키르기스스탄 오쉬 두 번째 Молдо>
질문 | 비고 및 답변 |
당신은 어떤 일을 합니까? | 코란을 읽으며 영혼을 맑게한다. |
Молдо와 Кози асуик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 몰더는 코란을 통해 이슬람의 말을 전해주는 것이고, 코지아축은 옆에 있는 영혼의 말을 전해준다. 또한 몰더는 정부에서 인정하지만 코지아축은 정부에서 금기시한다. |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합니까? | 여자의 경우 임신을 하거나 결혼할 수 있고 아픈사람의 경우에 나쁜 기운이 빠져나가도록 돕는다. |
중요하게 생각하는 물건이나 의식이 있다면? | 코란을 읽는 행위이다. |
당신은 어떤 신을 믿는가? | 알라 |
<키르기스스탄 오쉬 첫 번째 Молдо>
*줄이 너무 길어 인터뷰 요청을 할 수 없었다.
하는 일: 6~7명은 손님을 방으로 들어오게 한 후 코란을 읽으며 병을 치료한다.
사용하는 물건: 코란 책
비용: 자유이긴 하나 300~1000솜(4000원에서 만원)정도 낸다.
<키르기스스탄 오쉬 Кози асуик>
*인터뷰 요청을 승인하지 않았다.
하는 일: 카드로 미래를 읽는다.
사용하는 물건: 카드
비용: 샤먼이 500솜 이상을 요구했다.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샤먼의 공통점은 우선 두 가지 종류의 샤먼으로 나눌 수 있다. 예언하는 샤먼과 병을 고치는 샤먼. 두 나라에서 모두 치병샤먼은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이슬람을 믿는 사람 모두 이 샤먼과 만나도 불법이 아니었다. 하지만 미래를 예언하는 샤먼은 이슬람을 믿긴 하지만 불법적이고, 알라신 외의 것의 존재를 인정했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에서 외국인 교수님은 절대 이분과 만나면 안 된다고 했고,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우리를 도와준 동생이 만나기를 꺼려했다. 이런 모습을 보아 일반적인 무슬림은 이 샤먼과의 만남을 꺼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나라의 샤먼이 하는 일은 병을 치료하고 미래를 예언하는 것으로 비슷하다고 볼 수 있으나, 샤먼마다 그것을 행하는 방식과 사용하는 도구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치병샤먼은 코란을 읽으며 도구를 사용하며 의식을 행했지만,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단지 코란을 읽는 행위만으로 병을 치료했다. 우즈베키스탄의 예언하는 샤먼은 타스피흐라는 도구를 사용했지만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카드를 사용하여 점쳤다.
돈을 요구하는 방식도 달랐다. 치병샤먼은 내고 싶은 만큼만 내면 되었다. 만약 돈이 없다면 내지 않아도 되었고, 샤먼이 앉아있는 방석 밑에 돈을 넣으면 되었다. 하지만 예언해주는 샤먼은 5000원정도 이상을 내라고 요구했고, 직접 손으로 건네 주는 방식을 취했다.
도시의 발달정도에 따라 샤먼의 유무를 결정하는 것 같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타슈켄트가,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비슈케크가, 카자흐스탄에서는 알마티가 발달된 도시였다. 이 도시들에서는 샤먼을 찾을 수 없었다. 실재 존재할 수 있으나 상대적으로 수가 적어 발견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외곽과 코칸드, 키르기스스탄의 오쉬는 덜 발달된 도시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 도시들에서는 샤먼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발달된 도시보다는 적었고, 어렵지 않게 샤먼을 찾을 수 있었다.
모든 샤먼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알라신을 믿는다는 것이다.
3. 한국과 중앙아시아 지역의 샤먼 비교
| 한국무당 | 중앙아시아 샤먼 |
옷 | 굿을 할 당시에 한복, 부채, 오색끈이 달린 종, 장구, 징, 피리, 굿, 꽹과리 등등 대다수가 비슷한 물품을 사용함. 하지만 점괘를 볼 시에는 깃발, 좁쌀, 동전 등 다양한 종류의 물품들을 사용함. 또한 일관적으로 작두를 타는 등의 보여주기 식의 행동들이 크게 많음. 무언가 굿에 대한 행위를 할 때 제사상을 차려놓고 함. | 평범한 옷, 일상생활할 때 입는 옷과 크게 다르지 않음. 칼, 망치, 잿가루, 타스피흐, 납 등등 각자 다양한 물품을 사용함.
|
신내림 | 어쩔 수 없이 신내림을 받아야하는 상황에서 신내림을 받음, 후에 공부함. 각 무당마다 다른 신을 모심. | 킨나치 : 자신이 하고 싶을 때 배우고난 후 마스터키나치에게 직위를 하사받음. 폴빈: 알라신의 계시가 있을 때 어쩔 수 없이 신내림을 받음. 모두가 공통적으로 알라신만을 믿고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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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
| 대다수가 주변에 있는 신령님에게 이야기를 전달받아 손님에게 전달해줌. 그리고 난 후 굿이란 행위 혹은 부적 등으로 치료하는 행위를 함. | 주변에 있는 조상님 혹은 신에게 이야기를 전달받기도 하나, 직접적으로 손님의 감정을 느끼고 아픈 곳을 이야기한 후 칼 등으로 치유하는 행위를 함. |
비용 | 상대적으로 적게는 20만원에서부터 많게는 1000만원도 넘게 가격을 부름. 단순히 가게에 들어가서 절을 한 것만으로도 돈을 지불해야하면 상대적으로 중앙아시아 지역보다 돈을 벌기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 샤먼, 폴빈, 키나치에게 주고 싶은만큼의 비용을 각자 판단한 후 방석 밑 혹은 이불 밑, 샤먼, 폴빈, 킨자치가 안 보이는 곳에 돈을 넣고 나옴. 상대적으로 돈을 지불하는데 있어 손님의 자유에 맡기며, 우리나라에 비해 돈 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듯한 모습은 보이지 않음. |
위치 |
우리나라는 수도권, 지방 전역에 걸쳐 무당집이 있음. | 도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며 존재 또한 모르는 사람이 많았음. 특히 카자흐스탄에서는 샤먼을 찾아보기 힘들었음. 하지만 시골 등 도시 외곽지역으로 멀리 나갔을 때 찾아볼 수 있었다. |
한국의 무당과 중앙아시아 샤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무당의 경우, 돈을 위해 굿과 점괘를 봐주는 듯이 하나의 행위를 할 때마다 돈을 요구했으며 그 비용 또한 일반인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큰 액수였다. 반면 중앙아시아의 샤먼은 돈을 샤먼이 보이지 않는 방석 밑이나 이불 밑에 넣고 나가는 형식이었으며, 돈을 놓고 가지 않아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한 지불하는 비용도 200숨에서 많게는 1000숨으로, 우리나라 돈으로 2000원에서 10000원 사이에 크게 부담되지 않는 비용이었다. 지불하는 비용 또한 자유였기에 현지 일반인들에게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 가격이었다.
뿐만 아니라 위치하고 있는 지역과 의상에 있어서도 차이점이 존재했다. 한국의 무당의 경우 수도권과 지방에 모두 존재하였지만,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주로 도시 외곽지역에 존재했다. 그리고 한국의 무당의 경우 대다수가 한복을 입고 있었지만, 중앙아시아 지역의 샤먼은 일상 생활복을 입고 점괘를 보았다.
하지만 행위에 있어서는 한국과 비슷한 점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염주를 사용하는 것과 같이 타스피흐라는 염주의 형태를 띈 물건을 사용했으며, 악귀를 쫓는 의미에서 사용하는 칼 또한 우리나라와 같았다. 하지만 굿이라는 행위는 없었으며,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악기가 사용되는 것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신내림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어쩔 수 없이 신내림을 받는 경우가 존재했지만, 한국의 무당은 여러 각자만의 신을 믿는 반면에 중앙아시아의 샤먼은 ‘알라신’만을 믿는 차이점이 존재했다.
4. 소감한마디
고동일
“탐사하러 가기 전에 충분한 준비를 하고 사람들과 소통을 목적이 아닌 자료조사를 목적으로 다녀와라.” 라고 면접에서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 팀의 주제인 “중앙아시아, 샤먼을 찾아서”라는 주제에 대해 효과적으로 탐사할 수 있는 방법은 샤먼과 직접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자료조사와 설문지를 통한 샤먼들과의 소통을 중요시하게 생각했다.
탐사 중에도 몸소 느낄 수 있었던 점은 한국에서 자료조사할 때 찾을 수 없던 정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먼저 샤먼들의 명칭부터 세 국가 모두 달랐다. 미리 연락해 두었던 지인들이 아니였으면 샤먼만 찾으며 일정을 끝낼수도 있었다. 우리 팀과 같이 한 국가나 도시 만이 아닌 긴 여정을 다녀야 한다면 그 곳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연락을 확실하게 한 후 찾아가는 것이 좋다. 또한 인터뷰를 통해 샤먼들에 대해 심도있게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기억에 남았던 경험은 코칸드에서 만난 filbin이라는 샤먼을 만났는데 그녀는 한국의 무당과 같이 주변의 영혼에 의해 점을 하지만 믿는 신앙은 이슬람이었다. 이런 점도 일종의 민속신앙과 이슬람의 신앙적 융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역민들이나 국가적 차원에서 긍정적인 이미지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아 이슬람의 전파 후 토속신앙과 이슬람의 종교적 갈등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와 같이 샤먼들은 보통 도시와 단절된 채 농촌이나 근교도시에서 활동 중이며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와 같은 비교적 근대화된 도시에서는 무당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미루어보아 중앙아시아나 한국 모두 무당에 대한 배척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며 연령대는 노년층에서 자주 찾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당의 비교조사와 인터넷 서칭에서도 찾을 수 없는 고귀한 자료를 찾을 수 있어 의미있는 탐사가 되었던 것 같다.
김보미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샤먼을 만나는 것은 힘들다고 한다. 장려되는 샤먼도 있지만 이슬람에 배반되는 샤먼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현지 분들이 도와주어 탐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탐사에서 아쉬운 것이 있다면 카자흐스탄에서 샤먼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시간이 없어서 도시 외곽 쪽으로 나가지 못했다.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곤 한다.
이번 탐사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중앙아시아의 샤머니즘적 요소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병을 치료해주는 샤먼만 있는 줄 알았는데, 미래를 예언하는 샤먼도 찾았다. 직접 탐사를 해 보니 사전조사보다 더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어서 점점 흥미가 생겼고, 열정적으로 샤먼을 찾아볼 수 있던 것 같다.
이재민
'잃어버린 샤먼을 찾아서~' 우리가 중앙아시아로 샤먼을 찾아 떠날 때 사실 처음부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을 했었다. 우리말을 사용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무당을 찾는 것도 매우 어려운데, 아직 카작어와 우즈벡어가 서툰 중앙아시아에서 무당을 찾아 떠나는 것은 더 힘들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특히 키르기스스탄에서의 샤먼을 찾아가는 길은 우리가 사전에 알아볼 수 없는 길이었기에 더욱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가는 길목마다 좋은 사람들이 있었고 덕분에 우리는 수월히 탐사를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디를 가든 여행은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여행객이든, 혹은 현지인이든, 아니면 샤먼까지, 우리가 공부한다는 내용에 대해 자기들의 일과 같이 알아봐주고 또 우리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줬었다. 탐사 내용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것들 까지 알려주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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