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4기] [브라질-중남미] - 바모스 팀 (1)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브라질의 인종 민주주의 -‘칸돔블레’를 종교 혼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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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7-11-07 11:35 | Read | 2,466 |
본문
탐사 테마
브라질은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지금의 브라질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다수의 혼혈인이 생겨났다. 혼혈인이 많아지면서 여러 인종들이 공존하는 사회가 구성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다인종 국가에서는 당연히 인종 차별이 더욱 심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브라질은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인종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인종 민주주의란 다양한 인종들이 서로 조화롭게 공존한다는 뜻이다. 앞서 말한 인종 차별과는 상반되는 개념이다. 다인종 국가에서 발생하는 인종 차별에 대한 사건만을 접한 우리에게는 인종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래서 우리는 인종 민주주의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먼저 브라질의 인종 민주주의의 탄생 배경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식민지 시대 때 브라질 정부와 같은 지위에 있던 가톨릭교회의 영향이 그 배경이라고 판단하였다. 당시 왕실(정부)이 자국의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면, 가톨릭교회는 사람들의 영혼을 통제하며 생활 뿌리 속까지 관여하였다. 사람들의 탄생, 결혼, 죽음 등 인생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개입하였다. 이처럼 브라질에는 종교가 사람들의 삶과 인식에 깊게 녹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민지 시대의 모습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도시는 바이아 주의 항구 도시인 살바도르이다. 살바도르의 인구는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물라토가 다수를 차지한다. 이처럼 아직까지 살바도르에는 아프리카적 요소가 많이 남아있다. 그 예시로 아프리카의 토속 신앙과 브라질의 가톨릭이 합쳐진 종교인 ‘칸돔블레’가 있다. 칸돔블레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되는 견해가 있다. 하나는 아프리카인들이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만들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의 견해는 강제 개종에 대한 저항의식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칸돔블레의 두 가지 측면을 통해 칸돔블레가 진정한 종교혼합인지를 알아보고 브라질을 과연 인종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조사 해 보고자 한다.
탐사 목표
앨빈 토플러는 ‘제 3의 물결’ 책에서 지나친 과학 기술에의 맹신은 자칫하면 인간 본연의 존엄성이나 존재 가치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보화 사회로의 급속한 발전은 인간 소외 현상의 부작용을 함께 동반한다. 사람들은 표면적인 현상만을 믿게 되고 정작 인간의 내면, 즉 드러나지 않는 실생활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기술, 정보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인 요소에서도 피상적으로 드러난 것과 현지 사람들의 실상이 다른 경우가 빈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종 민주주의의 국가라고 잘 알려진 브라질의 표면적인 모습이 아닌 현지 브라질 사람들의 의식과 실생활에 집중하여 조사하려고 한다. 과연 브라질을 인종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브라질의 인종 민주주의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먼저 카테고리를 나눠보았다. 크게 아프로 브라질 문화, 칸돔블레 그리고 가톨릭으로 분류하였다. 칸돔블레의 배경은 아프리카와 브라질의 문화가 합쳐진 ‘아프로 브라질’ 문화이다. 우리는 칸돔블레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그 상위 개념인 아프로 브라질 문화에 대해 이해할 필요성을 느꼈다. 배경에 대해 먼저 알아본다면 칸돔블레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대다수의 흑인들이 믿는 칸돔블레와 브라질의 국교였던 가톨릭 종교와의 비교•분석을 통해 칸돔블레의 종교 혼합 현상의 여부를 파악할 것이다. 만약 칸돔블레가 종교 혼합 현상이 이루어진 결과라면 종교적 측면에서 브라질을 인종 민주주의 국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인종의 문화가 혼합되어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인종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아프로 브라질 문화에 대해서 인터넷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한국어로 된 자료는 거의 없었다. 아프로 브라질의 정의에 대해서는 알 수 있었지만, 아프로 브라질 문화가 브라질 사회에 끼친 영향 혹은 이 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대해 조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아프로 브라질 박물관에 방문하여 사전에 알 수 없었던 구체적인 자료를 수집할 것이다.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칸돔블레에 내재된 아프리카적 요소를 찾아낸다면 아프리카 전통 신앙에서 계승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로 브라질 문화를 체험함으로써 브라질 다민족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칸돔블레 의식을 참여함으로써 표면적으로 칸돔블레가 어떻게 행해지고 있는지 알아보고 내면적으로는 가톨릭적인 요소가 내재되어 있는지 확인할 것이다. 또한 그 장소에서 칸돔블레를 믿는 사람들을 인터뷰할 것이다.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관람으로 알아낼 수 없었던 것들을 조사할 것이다. 예를 들어 칸돔블레를 믿는 사람들이 여러 신들 중 자신들의 멘토로 하나의 신을 정하는 기준, 칸돔블레를 믿게 된 동기 그리고 칸돔블레가 가톨릭 종교와의 혼합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인터뷰를 통해 가톨릭과의 혼합에 대한 정보를 유추하여 후에 인종 민주주의에 대해 분석할 때 참고 자료로 이용할 것이다. 칸돔블레와 마찬가지로 가톨릭 예배를 직접 체험함으로써 가톨릭과 칸돔블레의 예배 방식에서의 차이점을 조사할 것이다. 또한 가톨릭 신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칸돔블레에 대한 시선과 브라질 내에서 가톨릭교회의 지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이렇게 조사하여 수집한 자료들을 통해 칸돔블레와 가톨릭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여 칸돔블레가 종교 혼합인지에 대한 결론을 도출할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종교적 차원에서 인종 민주주의에 접근할 것이다. 종교 혼합이 이루어졌다면 서로 다른 인종의 문화가 혼합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인종 민주주의의 한 예시가 될 것이다. 반대로 종교 혼합이 피상적으로만 이루어 진 것이라면 이것은 오히려 인종 민주주의의 반례가 될 것이다. 종교적인 차원에서만의 접근이 아닌 사회, 문화적 측면까지 확대하여 브라질 사람들의 아비투스(habitus)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비투스를 파악함으로써 그들 자체를 깊게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궁극적으로 인종 민주주의에 대해 탐사한 것을 바탕으로 범지구적 문제인 인종 차별에 대한 해결점을 고찰해 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탐사 내용
빠르게 세계화되고 있는 21세기 사회에서 아직까지도 인종 차별과 같은 문화 지체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항공사 오버부킹으로 인한 동양인 강제 하차 사건’은 이러한 인종 차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회적 이슈였다. 세계화가 되면서 다민족 국가의 수가 증가되고 있는 반면, 사람들의 인식 수준은 세계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나라, 민족, 인종이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고 함께 공존함과 동시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 속에서 차별이 존재한다면, 현대 사회를 진정한 세계화 및 다민족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던 중 브라질의 ‘인종 민주주의’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인종 민주주의란 다양한 인종들이 서로 조화롭게 공존한다는 뜻이다. 다인종 국가에서 발생하는 인종 차별에 대한 사건만을 접한 우리에게는 이러한 인종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새롭게 다가왔다. 하지만 한 칼럼에서는 “미국의 흑인은 저항하지만, 브라질의 흑인은 알아서 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칼럼은 미국에서는 흑인과 백인 사이의 투쟁이 많이 발생하는 반면 브라질에서는 이러한 투쟁이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고 한다. 브라질에서는 흑인과 백인 등 모든 인종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위의 표현을 접한 후 과연 이러한 생각이 현지 브라질 사람들에게도 통하는 것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인종 민주주의가 오히려 역설적으로 차별을 감추기 위한 화려한 덧칠은 아닐지 의구심이 들었다.
15~19세기 브라질은 포르투갈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했다. 그 당시 다수의 유럽계 인종들이 이주하였고 아프리카계 흑인 노예들은 사탕수수 농업을 위해 대거 유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브라질은 다양한 인종들이 공존하는 사회가 되었다.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는 사회인만큼 그 속에서는 빈번한 인종 차별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브라질의 ‘인종 민주주의’ 개념을 접한 후 브라질의 인종 문제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아보았다. 먼저 인종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아보는 과정 속에서 ‘가톨릭’이 탄생 배경의 원인이라고 판단하였다. 식민지 시대 때 가톨릭은 브라질 왕실 정부와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왕실 정부가 자국의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면, 가톨릭교회는 사람들의 탄생, 결혼, 죽음 등 인생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개입하면서 생활 뿌리 속까지 자리 잡았다. 이처럼 브라질에는 종교가 사람들의 삶과 인식에 깊게 녹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브라질의 종교를 통해 인종 민주주의를 조사한다면 그들의 종교적 의식뿐 아니라 일상생활 속까지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브라질의 종교에 대해 조사하던 중 한 사진을 보았다.
이 사진은 성모 마리아 동상을 가운데에 세워 놓고 흑인들이 그 주변을 동그랗게 둘러싼 채 의식을 치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 이 사진을 접했을 땐 굉장히 낯설었다. 우리가 기존에 생각했던 가톨릭 의식의 모습은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치러지는 것이었는데 이 사진 속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사진 속 사람들은 모두 흰 계열의 옷을 입고 특이한 장식품을 몸에 두르고 있다. 사진 속 모습이 어떤 종교의 의식인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종교 혼합’이라는 개념을 접하였다. 사진 속 모습은 브라질의 가톨릭과 아프리카의 토속 신앙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칸돔블레’의 의식이었다. 칸돔블레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되는 견해가 있다. 하나는 아프리카인들이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강제 개종에 대한 저항의식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칸돔블레의 두 가지 측면을 통해 칸돔블레가 진정한 종교 혼합인지 알아보고 브라질을 과연 인종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조사하기로 결정하였다.
노예로 팔려오면서 혼혈인을 형성하여 지금의 바이아는 대부분의 인종이 흑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살바도르에는 아프리카적 요소가 많이 남아있다. 우리는 바이아 주의 살바도르에 간다면 우리의 주제인 ‘종교 혼합’과 ‘인종 민주주의’에 대해 탐사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살바도르에 방문하여 브라질의 가톨릭 종교와 칸돔블레를 비교, 분석하여 종교 혼합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였다.
가톨릭이 국교였던 브라질답게 살바도르에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교회가 굉장히 많았다. 거리 곳곳에 교회가 위치해 있었고 우리는 거리를 거닐면서 몇몇 교회에 들어가 보았다. 매일 미사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 교회의 모든 미사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교회의 실상을 직접 볼 수는 있었다. 교회 외부의 모습은 우리나라와 별다른 차이점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교회 안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우리는 살바도르의 교회에 방문하기 전까지는 ‘가톨릭’하면 화려한 장식들과, 백인 형상을 띈 동상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살바도르 교회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형상을 띄고 있었다.
교회에 들어서자마자 새로운 광경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그동안 백인 형상의 동상들만 봐온 우리에게 흑인 형상의 동상들은 낯설면서도 흥미로웠다. 이 사진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가톨릭 동상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서양권 교회의 모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살바도르의 교회에는 대부분의 동상들이 흑인 형상을 띄고 있었다. 살바도르 교회에는 그들만의 방식이 존재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인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 보는 시간을 가졌다. 너무나 당연히 가톨릭은 백인들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우리에게 흑인 동상의 모습을 본 것은 꽤 큰 충격으로 와 닿았다. 그동안 우리의 마음속에 당연시했던 것들이 명백한 인종 차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Basílica do senhor do Bomfim는 살바도르에서 사람이 가장 북적이는 교회이다. 우리가 간 날에는 미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도착했을 때 교회 내부에는 이미 사람들로 꽉 차있었고, 교회 밖에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함께 미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우리도 자연스럽게 그 속에 껴서 종교 문화를 같이 즐겼다. 사람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의 찬송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나라는 경건하고 조용하게 진행되는 한편 브라질의 찬송가는 굉장히 신났고 떠들썩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의 미사가 종료된 후 실내로 들어가 교회 신자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그 들 중에서는 칸돔블레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있었고 전혀 모르는 사람도 존재했다. 칸돔블레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가톨릭과 칸돔블레는 엄연히 다른 종교이며 그들과 우리는 믿는 신이 다르고 의식을 치르는 방법도 다르다고 말하였다. 피상적으로는 혼합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전혀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종교 혼합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브라질에 오기 전, 칸돔블레는 가톨릭과 아프리카 적 요소가 완전히 혼합된 종교라고 생각했으며, 흑인과 백인 모두 함께 어우러져 의식이 진행된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현지 사람들과 대화를 해본 후 우리가 칸돔블레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단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Basílica do senhor do Bomfim 교회 내부 천장에는 뼈로 된 조형물들이 있었다. 이것을 처음 접한 우리들은 굉장히 충격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이런 걸 걸어놓았지?’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이 뼈 조형물들은 질병으로부터의 치료 및 회복을 의미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그들의 질병을 낫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고, 천정에 매달린 조형물들이 그들이 가진 질병을 가져간다고 믿는다고 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사뭇 징그러워 보일 수 있지만 여기 사람들에게는 모두 소중한 의미가 담긴 물건이었다.
Bonfim 교회를 나와 길을 걷다 한 외국인을 만났다. 그는 덴마크에서 온 50살이 넘은 아저씨였다. 먼저 우리에게 어디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봐 주셨고 한국이라고 하니 흥미를 가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살바도르에는 무엇이 유명하고, 이 주변에서는 어떤 음식점이 괜찮은지. 이 골목에서 조금 위로 가면 정말 맛있는 코코넛 주스를 판다는 것. 정말 사소하고도 따뜻한 대화였다. 비록 우리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대화하는 내내 정을 느낄 수 있었고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사람이어도,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이어도 이렇게 재밌고 소소한 일상에 대해 소통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따뜻하고 유쾌했던 덴마크 아저씨와 함께 걷다 보니 우리의 목적지인 Sé 광장에 위치해있던 São Francisco 교회에 다다랐다. 교회에 들어서자마자 그 압도감에 놀랐다. 교회 내부는 전부 금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곳곳에는 화려한 장식품들이 위치해 있었다. ‘왜 이렇게 화려하게 해놓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는 ‘교회의 권위’ 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전에 조사한 지식을 바탕으로 가톨릭 권위와 교회의 모습을 연관 지어보았다. 브라질 왕정시대 때 정부와 권력이 비등하였던 가톨릭교회가 국민들의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끼친 중요한 부분인 만큼, 교회의 모습을 더욱 권위 있고 화려하게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사실 사전에 이 교회에 대해 조사했을 때 건축적인 부분이 강조되었다. 바로크 양식, 매너리즘이 그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양식을 이용하여 가톨릭의 권위를 더욱 높인 것이었다.
이 교회는 살바도르 시내 중심에 위치한 Igreja Nossa Senhora do Rosário dos Pretos이다. 교회 이름과 걸맞게 흑인들을 위한 교회이다. 흑인들을 위한, 흑인들이 지은 최초의 가톨릭교회이다. 이곳에서는 흑인들은 주권을 가지고 있었고 마땅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간 요일에는 미사가 없어서 의식을 보지는 못했다. 신기하게도 이 교회는 입장료를 받았다. 시민들을 위한 교회지만 관광지의 목적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에게 살바도르 내에서의 흑인들의 종교적 활동을 더욱 알리고자 하는 데에 목적을 둔 것 같았다. 실내에 들어가 보니 전시회처럼 살바도르 가톨릭 역사에 대한 설명이 나열되어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의 흑인들 및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참여를 알려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흑인들의 위상은 점점 높아지고 있었고 공동체를 이루어 스스로 주권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였다고 한다. 교회를 둘러보면서 실제 의식이 진행되는 실내의 모습은 일반 교회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교회 담당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는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보았다. 교회 뒤편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다.
이 정원에서 사람들은 식사를 할 뿐 아니라 공식적인 미사 외에 의식들을 치른다고 한다. 겉으로는 가톨릭의 관례를 따르는 듯 보이지만 뒤편에서는 그들만의 색다른 방식으로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브라질에 방문하기 전 자료 조사를 칸돔블레에 대해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칸돔블레를 검색해보니 ‘Syncretism’이라는 용어가 함께 나왔다. 위키피디아 같은 사전에는 칸돔블레가 Syncretism 즉, 혼합 종교라고 설명되어 있다. 종교적으로 흑인과 백인의 문화가 혼합되었고 그 속에서 공존하며 자연스럽게 새로운 종교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접한 뒤 처음에는 그저 ‘아, 그러면 그 속에서 백인과 흑인이 서로 문화도 교류하고 잘 지내겠네?’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가톨릭과 칸돔블레의 종교 혼합에 대해 조사하였을 때 우리가 알고 있었던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칸돔블레는 그저 피상적으로만 가톨릭과 혼합되었고 그 속은 전혀 다르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겉과 속이 완전히 혼합되었다는 주장 또한 존재했다. 우리가 검색한 사전 지식으로는 두 의견을 정확히 분석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분쟁이 우리에게는 흥미롭게 다가왔다.
Igreja Nossa Senhora do Rosário dos Pretos의 외부 모습은 평범한 가톨릭교회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 뒤편에서 사람들은 칸돔블레를 믿고 있었다. 사람들을 가르치고 집회를 하며 새로운 종교를 이루어 나갔다. 가톨릭교회 내부에서 칸돔블레의 종교적 의식을 치르는 부분이 혼합 종교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뒤 정원에 숨어서 의식을 치러야 했으며, 그 당시 자신이 칸돔블레를 믿는다는 것을 표출할 수 없었다. 칸돔블레를 믿는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톨릭의 성인을 내세웠기 때문에 지금까지 칸돔블레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러한 점에 의거해보았을 때 칸돔블레를 진정한 혼합 종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단지 피상적인 혼합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칸돔블레는 27개의 Orixás를 믿는 종교이다. 칸돔블레 신자들은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Orixás를 숭배하고 1:1 멘토를 지정해 믿는다고 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음악을 이용해 의식을 치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톨릭처럼 경건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다소 축제의 느낌이 나며 모두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부분이 바로 ‘아프로 브라질’ 문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문화인 음악적 요소가 지금의 브라질의 종교 중 하나인 칸돔블레에 정착하였다. 아프로 브라질 문화는 지금의 살바도르를 존재하게 한 아주 중요한 문화적 특징이다.
Afro-brazilian은 언어 그대로 아프리카와 브라질 문화의 혼합을 의미한다. 우리는 Museu afro-brasil (아프로 브라질 박물관)에 방문하였다. 살바도르의 중요한 문화적 요소인 만큼 박물관도 굉장히 크고 정보가 풍부하였다. 박물관 내부에는 아프리카적 요소가 담긴 조형물들이 존재했으며, 브라질 바이아의 문화와 역사적인 부분을 담고 있었다. 식민지 시대 때 바이아로 끌려온 흑인 여성 노예들의 모습도 담고 있었다. ‘baiana’라고 여성들은 바이아 주에서 전통 의상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이들 역시 아프로 브라질 문화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통이 크고 넓게 퍼진 치마를 들여오면서 바이아 지역의 방식으로 변형되었다. 이처럼 브라질에는 아프리카 문화를 들여와 그들만의 방식으로 재탄생 시킨 문화들이 많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칸돔블레에 대해 다루고 있던 Orixás 조각 작품 관이었다. 이곳에는 27명의 Orixás를 전시해놓고 있었다. 처음으로 27명의 신의 모습을 제대로 본 경험이었다.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각각의 오리샤들은 물, 불, 땅, 바람 등 자연의 특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생김새도 제각각 이었다. 또한 신의 모습 아래에는 동물의 모습도 있었다. 더욱 신기했던 것은 27명의 신이 모두 가족 관계였다. 이것은 곧 칸돔블레의 가족적인 요소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운이 좋게도 우리가 살바도르에 머무를 때, 일 년에 한번 열리는 칸돔블레 행가가 진행되었다. 우리는 행사에 참여해 칸돔블레의식이 어떻게 행해지는지 관람하였다. 아쉽게도 관람도중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사진이나 영상을 찍지 못했다. 칸돔블레의식은 악기연주, 노래, 춤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가톨릭과 달리 설교말씀은 없었다. 교주는 오리샤 중 한명이 강림한 역할을 맡아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고 그들은 자신의 몸에 신성한 성인의 혼을 받기 위해 악기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이는 아프리카 무속신앙과 매우 흡사하였다. 다만 형식으로 보았을 때 가톨릭의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의식이 끝난 후 우리는 칸돔블레 의식을 관람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몇 가지 질문을 하였다. 칸돔블레와 가톨릭이 혼합종교가 맞다고 생각 하냐는 질문에 칸돔블레신자들은 혼합종교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하였고, 칸돔블레 신자가 아닌 사람들은 혼합종교에 대해 알고 의식을 관람하였다고 대답하였다. 칸돔블레 신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명히 갈리었다. 몇몇은 가톨릭과 칸돔블레는 확연히 다른 종교라고 덧붙였고 몇몇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칸돔블레는 가톨릭과 아프리카 토속신앙이 혼합된 종교라고 알려진 것일까?
이는 칸돔블레 신전에 가서 마르코스라는 신자와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초기에는 칸돔블레를 믿는 것이 금지되어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내세우고 그 안에서 칸돔블레 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물론 가톨릭은 칸돔블레가 금지된 상황에서 칸돔블레 의식을 행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지만, 그들은 이를 가톨릭과 아프리카 토속신앙에 종교혼합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교육을 받은 젊은 칸돔블레 신자들은 가톨릭과 칸돔블레는 엄연히 다른 종교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즉, 칸돔블레는 표면적으로 수단으로만 작용하는 가톨릭과 아프리카 신앙의 혼합종교라는 것이다. 칸돔블레 신전에 와서 실제 의식이 어떻게 치러지는지에 대해 들은 후 우리가 전날 봤던 의식은 극히 일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식의 시작은 오전 5시부터라고 한다. 그때부터 신자들은 의식을 준비한다. 제물론 바칠 동물을 씻기고 신부님이 동물에 영혼이 있는지 확인한다. 영혼이 있으면 동물을 제물로 바친 후 오전 7시까지 춤을 추며 노래를 하고 아침을 먹는다고 한다. 오전 11시에 제물로 바친 동물을 주방으로 들여와 음식을 만든다. 오후 5시 해가 지기 전에 그들은 음식을 보기 좋게 꾸민다고 한다. 그리고 8시에 문을 열고 사람들에게 세레머니를 보여준다. 우리가 본 것은 이 세레머니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들은 아프리카 옷을 입고 춤을 추며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준다고 한다.
우리는 마르코스에게 칸돔블레와 가톨릭에 차이점에 대해 질문을 하였다. 칸돔블레와 가톨릭사이에는 가톨릭성인을 숭배한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그마저도 사실이 아니다. 단지 칸돔블레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를 통해 칸돔블레가 ‘표면적/피상적’ 종교혼합(Syncretism)이라는 것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칸돔블레와 가톨릭의 차이점은 매우 많다. 첫째로, 믿는 신이 다르다. 칸돔블레는 ‘Orixá오리샤’를 믿고 가톨릭은 ‘하나님’을 믿는다. 오리샤는 한명의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총 27명의신을지칭하며각각자연적요소를대표한다. 또한이두종교에서치르는의식은확연히다르다. 칸돔블레는카톨릭에비해춤과음악적요소가많고카톨릭은칸돔블레에비해형식적이다. 가톨릭에 ‘성경’이 있다면, 칸돔블레에는 ‘우두’가있다. 실제 칸돔블레를 믿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니 가톨릭과의 차이점을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살바도르의 가장 큰 경기장 옆에는 이렇게 8개의 동상이 호수 위에 떠있다. 이 8개의 동상은 전부 칸돔블레의 Orixás이다. 공원 관리자 분께서 오리샤 외적 모습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이 호수 위에 떠있는 오리샤들의 모습을 보면 전부 여자이다. 여자인 이유는 칸돔블레 내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수명의 차이 때문에 수명이 더 긴, 여자가 그 중심이 된다고 한다. 동상의 모습을 보면 넓고 펑퍼짐한 치마를 입고 있다. 이는 유럽의 영향을 받은 모습이다. 유럽의 중세 시대 때 여성들은 모두 길고 통이 큰 치마를 입었다. 그 모습을 들여와 바이아의 전통 옷과 혼합시킨 것이다. 또한 칸돔블레를 믿는 신자들은 몸에 다양한 장신구를 차고 있다. 장신구를 몸에 참으로써 신(오리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Casa de Yemanja’(예만자의 집) 에 갔다. Yemanja는 27명의 신들 중 한 명이다. 칸돔블레의 가족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곳이어서 방문하였다. Yemanja 신은 인어공주를 형상화 한 것처럼 보였다. 바다의 정령처럼 물고기들과 푸른 계열의 옷을 입은 신자들과 함께 지낸다고 한다. 예만자의 집에 대해 설명을 들을 때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포용해요. 그게 성소수자일지라도" 라는 말이 인상 깊게 남았다. 우리나라로 예시를 들어보면, 포용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가톨릭에서도 평등, 평화를 지지한다. 하지만 그게 소위 사회적 약자라 불리는 성소수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성소수자 축제인 퀴어축제에도 몇몇 가톨릭 신자들은 반대 시위를 벌이곤 한다. 이에 반해 칸돔블레는 인종, 사회적 지위 등 모든 것을 개방하고 차별 없이 가족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칸돔블레를 믿는 사람이면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에서 더 나아가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칸돔블레가 오늘날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들어온 사람들이 소외당할 때 칸돔블레는 이들을 포용하여 하나의 공통체를 만들어 그들에게 소속감을 선사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칸돔블레의 가족적인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하루 빨리 인종,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답사 전, 우리는 저명한 브라질 사회학자 질베르뚜 프레이레(Gilberto Freyre)의 현재 브라질 사회학의 주류를 형성한다는 인종민주주의 이론이 브라질에 잘 정착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브라질은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라질에 도착한 순간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그의 이론이 사회생활 속에서 실현되는 순간을 목격하기란 힘들었다. 브라질은 소위 편견에서 자유로운 나라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답사 전 브라질에 거주하고 있는 브라질 지인과의 이메일을 통해 다른 나라와 같이 브라질에서 또한 편견에서 잇따른 차별은 어느 곳에서든 쉽고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다했다. 그에 반면, 사람들은 그것에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그런 사회에 적응해 가면 살아간다고 했다. 우리는 약 13일 동안의 브라질생활에서 이러한 프레이레 인종민주주의 이론을 부각시켜 인종차별의 모습을 희석시키는 경우라고 생각하였다.
우선, 우리는 아프리카의 토속 신앙과 브라질의 가톨릭이 합쳐진 종교인 ‘칸돔블레’를 통한 종교적인 측면에서만 브라질이 과연 인종민주주의 국가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내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 꺼라 생각하였다. 따라서 현지인들의 삶에 흡수되어 녹아나오는 일상생활 또한 유심히 관찰하기로 하였다. 약 13일 동안 브라질에서의 여행일정동안 이루어진 관찰을 통해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점은 사회적 지위는 인종에서 비롯됨이었다. 또한, 인터뷰를 통해 더 어두운 피부색을 지니고 있을수록 모든 면에서 능력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여 그들에 대한 편견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브라질이 여러 인종들이 공존하는 다민족사회로 구성되어 있는 나라로서 여러 사람들이 서로의 객체와 차이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모습 또한 찾아볼 수 있었다.
식민지 시대의 모습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도시이자 바이아 주의 항구 도시인 살바도르에서 9박10일 동안의 여정에서는 앞서 언급한 사회적 지위가 인종에서 비롯되는 모습을 정말 두드러지게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대다수의 일정을 소화했었던 역사 구시가지의 레스토랑, 카페, 기념품가게, 박물관 등 여러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여행지에서 일하던 종업원들의 인종은 대다수가 흑인계 인종이었다. 반면,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던 고객들은 순수 흑인이 아닌 다양한 혈통을 지닌 사람들이였다. 따라서 다소 지식을 덜 필요로 하는 직종은 대부분 어두운 인종의 혈통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2박3일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의 일정에서 또한 인종의 다양성을 대도시 번화가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살바도르에서의 모습과 흡사하게 각 곳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대다수가 흑인 및 흑인계 혼혈인들로 이루어져있었다.
다행히도 여행지에서 고객들뿐만 아니라 종업원들도 불평 없이 자신이 속해있는 상황을 이해하고 즐기는 듯 해보였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예전 브라질이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다른 나라의 노예제도와는 달리 브라질의 노예제도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운명공동체로 받아들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이론덕분에 어느 곳에서든 인종에 따른 차별이 만연하다는 말에 반면 브라질사회에서 인종간의 평화공존이 이루어지고 더 나아가 국가통합에 이바지한 듯 했다. 흑인 및 흑인계 혼혈인들과 백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관계'라 생각했다. '나도 이 사회에서 기여한 바 있는 자랑스러운 국가의 국성원이다'라 생각하며 ‘인종구분이 뭐가 중요하냐? 같은 브라질사람이면 되지!’하는 사고방식이 뿌리 깊게 자리잡혀있었다. 물론 노예해방 이전 도망을 친 흑인노예들이 낄롬부(quilombo)라는 자신들만을 위한 공동체를 건설해 정부에 무력으로 대항한 예외 또한 존재한다. 낄롬부와 같은 예외는 굉장히 브라질 사회에서 드문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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