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5기] [유라시아] - 백만송이장미 팀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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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8-11-30 11:57 | Read | 1,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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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7. 18 수
그 전날로 모스크바 일정을 모두 마치고, 상트페테르부르크 행 10시 55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일찍 숙소에서 나왔다. 공항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공항 내 식당에서 허기진 배를 달랜 다음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출발했다. 약 12시 30분에 상크페테르부르크 풀코보 공항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일정이 진행되면서 체력 저하가 큰 문제로 다가왔기 때문에, 저녁을 먹고 남은 기간 동안의 계획을 점검한 후 휴식을 취했다.
2018. 07. 19 목
다들 피로가 쌓여 이날은 일정을 늦게 시작했다. 달러로 환전했던 공금을 전부 루블로 바꾸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숙소를 나선 후 제일 먼저 이 곳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쓸 돈을 환전했다. 그러고 나서 넵스키 대로와 카잔 성당, 피의 구원 성당 등등을 멀찍이 구경하곤 이른 저녁 식사를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전체적으로 좀 더 유럽에 가까운 느낌이었고, 지하철에 모스크바에는 없었던 에어컨과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있는 등 보다 현대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운하와 클래식한 건물들이 서로 어우러져, 낭만적인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식사 후, 백조의 호수 발레를 보러 알렉산드르스키 극장으로 향했다. 주제 확정 전, 좀 더 공연 예술에 집중하며 미리 예매해 두었던 티켓이었다. 러시아 발레는 모두 처음이었기 때문에 모두들 잔뜩 기대했으나, 무대 장치라던가 무용수들의 움직임 등 공연의 수준이 그리 높진 않다고 느꼈다. 주위 관람객들의 관객매너나 공연장 내의 시설도 그리 좋진 못했는데, 특히 에어컨이 없어 공연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다들 땀을 뻘뻘 흘리며 관람했다. 다만 기억나는 점은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굉장히 좋았고, 주연 역할을 맡은 무용수만은 몸짓 하나하나가 매우 훌륭했다는 것이다. 한 치의 군살도 없이 근육으로 꽉 찬 무용수의 다리가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이 공연 관람을 통해 한국의 공연 퀼리티가 이곳에 뒤지지 않게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우리가 스스로도 모르는 새 ‘당연히 이곳은 우리와 비교도 안 되게 훌륭할 것’이라는 사대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있던 게 아닌가, 하고 반성했다. 한국의 수준 높은 공연들이 세계시장에서 보다 더 사랑받았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는 볼쇼이의 A급 공연을 봤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우리가 ‘러시아 발레’라는 타이틀에 기대를 너무 크게 했었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숙소로 복귀하였다.
2018. 07. 20 금
탐사 막바지로 갈수록 팀원들의 컨디션 저하가 심해졌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체력이 더 쉽게 방전됐고, 일찍 들어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데도 잘 회복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체력이 떨어지면 건강 상태의 염려는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짜증과 불만을 일으키기 쉽기 때문에, 일정을 느슨하게 조정하고 서로 격려하며 탐사를 잘 완수하고자 애썼다.
20일은 Лофт Проект Этажи(로프트 프로젝트 에타쥐)로 향했다. 로프트 에타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심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으로, 과거 빵공장이었던 5층짜리 메인 건물을 비롯해 지금은 다양한 갤러리와 소품샵, 서점, 카페 등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이곳 역시 단순한 갤러리라기보다는 아트 플랫폼의 형식에 가까우며, 전시의 대부분이 입주 예술가 혹은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무료로 진행되고 있었다. 영화제나 워크숍, 벼룩시장 등 다양한 이벤트들이 열리며 특히 젊은 층의 시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공간이었다. 복작복작한 가게들과 붐비는 젊은이들이 전체적으로 개인 옷가게와 소품샵이 빼곡하게 들어선 홍대 쇼핑거리를 연상케 했다. 다만 쇼핑과 유흥 위주인 우리나라 번화가와는 다르게, 창작 스튜디오와 갤러리를 중심으로 이런 단지가 형성되었다는 점이 몹시 신기하게 다가왔다.
다음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Art play(아트플레이)로 향했다. 모스크바의 아트 플레이와 어떤 차이점이 있을지 기대했으나,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건지 여전히 내부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진행 중인 전시나 이벤트는 없었고, 소규모 인테리어 회사들의 사무실과 스튜디오가 들어서 있어 문화 예술을 즐기는 여가 공간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한 바퀴 둘러본 후, 2층의 카페에서 잠시 쉬다가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дом книги(서점)로 출발했다.
서점에 가는 도중 바로 근처 거리에 ‘감정 박물관’ 이라는 신기한 전시를 발견해 잠시 관람하기로 했는데, 관람 도중 팀원 한 명이 복통을 심하게 호소했다. 잠시 대기해 보았지만 쉽사리 나아질 것 같지 않아, 일정을 취소하고 택시를 잡아 급하게 숙소로 복귀했다. 다행히 여러 종류의 상비약을 준비해 갔기 때문에 얼른 약을 먹이고 쉬도록 조치했으며, 물 이외의 음식은 입에 대지 못하게 했다. 계속 휴식을 취하니 밤 즈음에는 조금 나아진 모습을 보였지만, 타지에서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제대로 치료를 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하루 더 경과를 지켜보기로 판단 내렸다. 탈이 난 팀원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머지 팀원들은 이때껏 조사한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이 날 방문했던 Лофт Проект Этажи가 우리나라 번화가와 닮은 듯 다른 모습이었던 것을 떠올리며, 어떠한 연유로 그 같은 공간이 탄생하게 된 건지 러시아 아트 플랫폼 발달 과정에 대한 여러 예상과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2018. 07. 21 토
오전은 숙소에서 계속 휴식을 취했고, 팀원의 상태가 전날보다는 꽤나 호전된 모습을 보여 오후부터는 천천히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숙소 근처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후, 마찬가지로 주제 확정 전 예매해 놓았던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마린스키 극장으로 이동했다.
마린스키 극장은 모두 클래식한 건물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별관은 본관 한 블록 밑에 현대적인 양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극장에 들어서기 전 소지품 검사가 엄격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관람객들도 이전의 알렉산드르스키 극장과는 달리 좀 더 격식을 갖춘 차림새였다. 우리가 관람한 공연은 ‘차르의 신부’ 라는 림스키 코르샤코프의 오페라였는데, 러시아 원작이여서인지 모든 넘버들이 러시아어로 진행되었고 자막은 러시아어와 영어가 주어졌다. 이탈리아어로만 진행되는 오페라만을 봤던 우리로선 러시아어 넘버와 배우들의 러시아 전통 의상을 보며, ‘자국에서 직접 창작하여 모국어로 이루어진 오페라’ 라는 개념에 생소하면서도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주 스토리는 치정극이었고, 예상할 수 없는 전개에 보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마린스키 극장의 명성에 걸 맞는 훌륭한 공연이었다고 평을 내리며 숙소로 복귀했다.
2018. 07. 22 일
22일은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국립 에르미타주 미술관) 을 방문하기로 했다. 네바 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곳으로, 유럽 미술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세계 최대 미술관 중 하나이다.
모두 둘러볼 시간이 촉박했기에, 먼저 가장 관심이 많은 19-20세기 미술 작품들을 관람하고자 신관으로 향했다. 신관은 매우 현대적이었고, 다행히 본관에 비해 사람이 적어 대기 없이 금방 입장할 수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답게 한 층을 둘러보는 데에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으나, 책 속에서만 보던 작품들을 두 눈으로 직접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이렇게 거대한 문화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러시아가 부러웠고, 어릴 적부터 이러한 예술을 접하고 누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지인들의 애티튜드를 보며 몹시 자극을 받았다.
하루를 전부 이 미술관에 할애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 어쩔 수 없이 본관은 잠깐 훑고만 나오기로 했다. 본관 내부는 눈이 아플 정도로 사방에 금칠을 해 놓은 거대한 방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 했는데, 그 위압감이 엄청났지만 한편으로는 작품보다는 방 자체에 집중하게 돼 작품 감상에는 방해가 될 듯싶었다. 엄청난 규모와 미로 같은 구조, 그리고 수많은 관람객들에 이리 저리 정신없이 구경하다 아쉬움을 한가득 품고 미술관을 나왔다. 예술을 정말 ‘예술’ 그 자체로 활용하고 음미하는 러시아인들의 여유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후에는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서로의 감상을 나누며 휴식을 취했다.
2018. 07. 23 월
사실상 상트를 돌아다닐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정을 소화하고자 전의를 다졌다. 제일 먼저 숙소 주변의 갤러리로 이동했으나, 아트 플랫폼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전시/관람 형태의 갤러리였기 때문에 빠르게 돌아본 후 다른 후보지로 이동했다. 허나 이동한 푸쉬키나-10은 휴무일이었기에, 전시 홍보물과 거리 분위기, 건물들만 훑어본 후 또다시 이동했다.
이동한 장소는 Артмуза(아트 무자)였다. 4층짜리 한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나 규모가 매우 커 모두 둘러보는데 시간이 꽤나 걸리는 곳이었다. 1층에는 진행 중인 전시와 의류/인테리어 편집숍 등이 모여 있었고, 2층에는 소극장들과 카페, 갤러리들이 있었다. 3,4층에는 작가들의 창작 스튜디오와 역시 작품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갤러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른 아트플랫폼들과는 달리 버려진 부지를 재활용한 것이 아니라 그런지, 공간 활용적인 측면에서 이때껏 돌아본 곳 중 제일 현대적이고 체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작업실 환경도 좋아보였다. 또한 진행 중인 전시가 가장 많았고 그 종류도 다양했으며, 무엇보다 복도 중간 중간에 가정집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안락해 보이는 쇼파와 테이블을 마련해 놓아 관람 도중 언제든지 편히 쉴 수 있었다. 3,4 층으로 올라가니 전시와 작업실의 구분이 비교적 흐릿했고, 작업실 문에는 작가들의 이름과 간단한 소개, 그리고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삽화 등으로 꾸며져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작업실 복도 바깥에 작품들을 그냥 전시 겸 방치해 놓는 경우도 눈에 많이 띄었는데, 관람객 입장에서는 작업실마다 확연히 구분되는 가지각색의 작품을 보다 세심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이 같이 아티스트들의 창작 활동과 작품 발표가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의 장점을 정리해 보았는데, 1)먼저 버려진 부지와 낡은 건물을 재활용함으로써 도시 재생 효과를 빚어낼 수 있다. 2) 예술가는 무료로, 혹은 부담 가지 않는 금액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공간을 지원받을 수 있으며, 3)다른 입주 예술가들과의 교류가 쉬워져 다양한 영감을 주고받으며 협동 프로젝트를 수행할 기회 역시 생길 수 있다. 4)방문객 입장에서는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들을 한 데 모아놓음으로서 이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보다 더 많이 얻을 수 있으며 구매 절차 역시 더욱 간편해지는 셈이 된다. 5)또한 이 같은 공간은 단순한 갤러리의 형태에서 벗어나 다양한 프로그램과 이벤트가 열리는 지역 문화 복합 공간으로 발전되어, 지역민들이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가 된다. 6)이는 결국 창작자들의 작품에 대한 홍보 효과를 불러일으키며, 작품 판매를 통한 상업적 효과 역시 함께 가져오게 된다. 이 같은 선순환이 일어남으로써 결국 창작자와 소비자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문화 예술의 발전과 확산이라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렇게 아트 무자의 탐사를 마치고, 조금 더 욕심을 내 전에 가지 못했던 дом книги(서점)도 둘러보았다. 모스크바에서처럼 예술 분야의 서적과 음반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종류와 퀼리티 역시 훌륭했다. 더욱이 여기서는 발레 카테고리가 따로 존재한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이후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일정을 정리했다.
2018.07.24 화
24일 저녁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가까운 기차역 라커에 짐을 맡긴 후 마지막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돌아다녔다. 일정 상 가고 싶었던 관광지들을 방문하지 못했기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지인들의 선물과 기념품을 구입한 후 늦은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비행기 탑승 전 공항 내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탐사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서로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무더운 날씨와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는 부담감, 나날이 떨어지는 체력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서로서로 배려했으며, 조급해하지 말고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계획을 이행해 결국 무사히 일정을 마쳤다. 팀 이전에 대학에 들어온 이후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탄탄한 신뢰와 각자의 성향을 잘 알고 있어 서로 존중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제안할 일이 있으면 자유롭게 제안하고, 사과할 일이 생기면 바로바로 사과할 수 있는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끼는 시간이었다. 단 한 번도 와해 혹은 위험한 상황 없이 무사히 일정을 마친 우리의 팀워크를 자화자찬하며, 기분 좋게 비행기에 탑승했다.
2018.07.25 수
기내식으로 제공된 비빔밥에 감격하며 긴 비행 끝에 한국에 도착했다. 어마어마한 폭염이 한반도를 달구고 있었기에 잠시 멈칫했지만, 그래도 2주 만에 만나는 한국은 몹시 반가웠다. 모두가 지쳐있었기 때문에 차후 일정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를 나눈 뒤, 빠르게 작별 인사를 하며 탐사를 마쳤다.
+추가 탐사 (인천, 한국)
2018. 8. 4 토
한국에서는 아직 아트 플랫폼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다. 각종 포털 사이트의 사전에는 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으며, 공식적으로 ‘아트 플랫폼’이라는 이름을 걸고 운영 중인 건물은 현재 인천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인천 아트 플랫폼’ 뿐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도시의 역사성과 공간특성을 살려 문화적으로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탄생한 공간으로, 인천 중구 해안동 일대에 위치해있다. 1888년 지어진 舊일본우선주식회사를 비롯한 근대 개항기 건물과 1930~40년대의 건축물을 리모델링하여, 지역 예술인과 젊은 작가들의 예술 활동을 돕고 있다. 이에 개인 사정 상 함께하지 못한 팀원 한 명을 제외하고, 두 명의 팀원이 모여 인천 아트 플랫폼을 방문하게 되었다.
인천에서 꽤나 각광받는 방문지인 차이나타운과 굉장히 근접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는 방문자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대로 하나를 중심으로 양 쪽에 A동부터 H동까지 쭉 늘어서 있는 모습이었는데, 외관은 근대의 건축 모습을 그대로 살려 붉은 벽돌과 함께 멋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창작스튜디오, 전시장, 공연장, 생활문화센터 등 총 13개 동의 규모로 조성되어 있었고, 작업실과 입주 작가들의 생활공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게 되어있었다. 중심대로 곳곳에 역사적/예술적 의미가 담긴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어 포토 스팟으로 이용되고 있었고, 어린이 방문객들의 흥미를 끌 만한 간단한 체험 공간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카페, 그리고 소규모의 도서관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또한 진행 중인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는데, 전시 규모가 크지는 않았고 전시 공간 역시 그리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작품들의 존재감만으로도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방문했던 공연장 홀에 이곳 인천 아트플랫폼의 역사와 입주 작가들의 작품을 꼼꼼히 기록해 놓은 정기 간행물이 비치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방문한다면 이곳의 취지와 입주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에 대해 잘 알 수 있어, 지역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도록 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또한 아트플랫폼 중심대로 바로 옆에는 한국 근대 문학관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 곳 역시 100년 역사의 물류창고를 문학관으로 리모델링한 곳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근대문학자료를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한용운, 최남선, 김소월 등의 근대문학을 만날 수 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보이는 외관에도 불구하고 들어가면 생각보다 많은 공간이 있었고, 공간 활용과 전시 내용의 퀼리티도 매우 뛰어났다. 굳이 공간을 아낄 필요가 없어 보였던 러시아의 널찍널찍한 전시와는 또 다르게, 조그만 공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러 애쓴 흔적이 보였다. 이 같은 경우는 전시 작품이 쉴 틈 없이 배치되어 있거나 동선이 복잡해 자칫 정신없어 보일 수가 있는데, 관람객의 입장에서 호흡을 잘 조절하여 알차고 아기자기한 기분이 나도록 세심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아트 플랫폼을 중심으로 이 같은 다양한 공간들이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인천아트플랫폼은 굳이 러시아의 사례를 모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될 만큼 시설이나 구성 면에서 뛰어났지만, 아쉬웠던 건 홍보가 잘 안되어지고 있다고 느꼈던 점이다. 우리만 해도 ‘아트플랫폼’ 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가지고 검색 후 이 곳을 찾아낸 것이며, 특히 팀원 중 인천 시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장소를 처음 들어보았다고 한다. 러시아인들은 이러한 장소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예술을 즐기고 향유하는 태도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에 반해 한국은 아직까지 예술과 일상 사이의 벽이 보다 단단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인천 아트 플랫폼은 차이나타운과 월미도, 신포시장 등의 관광지와 인접해 있으며 교통 역시 편리한 곳에 위치해 있어 잘만 홍보한다면 크나큰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물론 관광객들의 포토 스팟으로만 이용될 수 있다는 유려처럼 적당한 선에서의 조절과 고민은 불가피 하겠다. 허나 이 같은 공간을 보다 활성화 시키고 발전시켜, 창작자들과 시민들이 예술을 함께 나누는 문화 예술 향유의 광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결론
아트 플랫폼을 방문하며 탐사를 진행하던 도중, 몇몇 시민들과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어떻게 이곳을 알게 되었나, 주로 이곳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가, 등등의 질문을 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이러한 공간에 만족하느냐, 그 이유도 함께 답해 달라.’ 라는 질문에 ‘Yes I am! I like to learn about new things through the art. And I really like the atmosphere of these places, there I feel how Moscow developed and became one of the cultural centers of the world.’ 이라고 또박또박 답하던 우리 또래의 학생이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자국의 예술 문화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이 소유하고 있는 거대한 문화 자본과 그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그걸 잘 닦아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전시키겠다는 당당한 애티튜드가 묻어나오는 대답이었다.
‘문화자본’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로, 그에 의하면 문화자본은 ‘상징적 표현인 화폐나 재산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지배계급에 의하여 결정된 교환가치’ 로 정의된다. 이는 한 개인에게 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져다주는 지식, 소양, 기술, 교육 등을 지칭하며, 세습을 통해 계급 재생산의 도구가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더욱이 현대 사회는 안목과 취향의 형성 역시 자본에서 비롯되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니 만큼, 대중들이 직접 예술을 감상하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보다 더 쉽게 주어져야한다. 학교나 정부, 그리고 지역 공동체에서 경제자본이 없는 계층에도 문화와 취향이 형성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사회적 보편성을 추구하는 사회정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관련하여 러시아는 소비에트 이후, 문화 산업 지원 정책을 펼치며 일반 대중들이 예술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문화민주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문화유산에 대한 자국민의 이용가능성 확장, 도시 외곽에 거주하는 지역민들의 문화적 소외 최소화 등 여러 가지 목표와 과제를 세웠고, ‘아트 플랫폼’과 같은 공간 역시 예술가와 그의 제작물을 상품화시키기 위해 문화 마케팅 및 판매유통을 강화 시킨 장소라 할 수 있다. 처음 아트플랫폼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그저 전시를 관람하고 몇몇 체험활동을 할 수 있을 뿐인 공간이 젊은이들에게 그토록 사랑받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화려하고 복잡한 번화가와 다양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오락 시설 등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로서는, 그러한 공간이 보다 덜 자극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허나 2주간의 탐사를 통해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자, 러시아인들의 정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술을 예술 그 자체로 향유하고 즐기는 여유, 예술이 일상 구석구석 녹아있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태도와 자세, 그리고 이에 대한 거대한 자긍심. 러시아를 예술 강국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분명 많은 인재와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세계 여러 나라를 둘러보면서 우리나라의 기술이나 예술 활동의 퀼리티가 딱히 뒤처진다고 느낀 적은 없었으며, 오히려 기존에 보유한 자원에 비한다면 매우 훌륭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우리가 이를 적극적으로 누리며 발달시키고 있는지 묻는다면 ‘YES'라는 대답이 자신 있게 나오지는 않는다. 우리는 아직도 예술을 온전히 즐기는 일에 왠지 모를 장벽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술 산업의 발전과 접근성에 대한 고민이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대학이나 평생학습센터, 문화센터에서나 접했을 법한 교양 강좌, 취미활동이 점차 산업화되어가며 여가산업이 각광받고 있는 요즘, 우리 백만 송이 장미 팀은 ’아트 플랫폼‘ 역시 이러한 흐름의 한 줄기로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대중들이 이를 즐기는 것. 창작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흐릿해지고 예술의 벽과 경계를 허무는 것. 더 많은 사람들의 삶 속 예술이 실천되는 것. 우리에게 예술 문화를 향유하는 일이 더욱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되기를 바라며 그 간의 탐사를 마무리짓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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