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ity Summer School

해외학생 초청 Inbound 프로그램 ‘Locality Summer School’

‘Locality Summer School’은 광역특화전공의 각 지역별 외국인 학생들을 한국으로 초대해 광역특화전공생들과 함께 진행하는 문화교류의 장으로써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탐색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광역특화전공 학생들은 외국인 학생들을 통해 자신이 공부하는 지역의 특수성과 문화적 특징들을 몸소 체험할 수 있으며,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 최대 8일간 합숙하면서 현지인을 미리 접하고 로컬리티 현지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게 됩니다.

외국인 학생 1인당 한국인 학생 3~4인이 이루어 과제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Title [활동보고서 - 인도남아시아 트랙] 까쁘레 바달르나 2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7-03-22 15:49 Read 2,032

본문

Guided tour of Seoul


▷여의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제금융로 10 IFC몰)

어제 Find your own local spots in Korea에서는 조금 전통적인 장소를 투어했다면, 오늘은 시작부터 현대적인 장소를 골랐다. 여의도 IFC몰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멀티플랙스로 사실 우리들도 모두 가본적이 없고, 가는 길에 반드시 한강을 지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IFC몰 내의 영풍문고에서 책을 구경하면서 리짜에게 인도관련 설명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또한 CGV를 구경할 때는 리짜가 인도의 영화관과 이곳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었다.

 

▷동대문 히말라야

지난 일요일부터 계속 우리가 리짜에게 한국의 음식을 소개해 줬다면, 이번에는 리짜에게 인도의 음식을 소개받기로 하였다. 그래서 ‘수요미식회’에도 출연한 적이 있는 유명 네팔음식 맛집 히말라야를 방문했다. 네팔 음식점에서 무슨 인도 음식을..? 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네팔과 인도는 과거에 한 나라였기 때문에 실제로 거의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식당에서는 인도의 펀잡주에서 온 인도인 종업원도 만났다. 같은 음식이라도 조금씩 향신료가 다른데, 리짜가 모두 설명해 주었고 그중에서도 어떤 것이 우리의 입맛에 맞는지도 추천해주었다. 우리들은 리짜를 따라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마구잡이로 먹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오른쪽 손만을 사용하고, 난을 찢을 때도 모두 방법이 있었다.


▷조계사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55 조계사)

‘절’은 우리팀의 IIP 주제와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곳이다. 왜냐하면 리짜가 불교에 관심이 아주 많고, 적극적으로 가고 싶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리짜가 불교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첫 번째로 어머니가 불교 신자이시고, 두 번째로 리짜의 고향이 불교와 관련이 많은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계사는 어떻게 보면 쌩뚱맞을 수 있는 절 중의 하나인데, 서울 완전 도심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스케쥴상 조계사를 밤에 방문할 수 밖에 없어서 많이 못둘러보면 어쩌지 고민을 했지만 방문하는 순간 밤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등불로 절이 정말 예쁘게 꾸며져 있었고, 무엇보다 그 웅장함에 압도되었다. 사찰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우리는 사찰 안에도 들어가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왔다. 

 


In-depth Investigation Project


까쁘레 바달르나 팀은 인도인이 그들의 전통복장인 사리를 왜 좋아하는지와 한복의 미래라는 주제로 로컬리티 윈터 스쿨에서 IIP를 진행하였다. 이 주제를 선정한 것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최근 우리 팀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 한복 동아리 아람에서 게시한 글을 봤다. 그 게시글에는 흐름이라는 전시회가 열린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또한 그 흐름이라는 전시회가 마지막인 것을 강조했다. 전시회 흐름은 배화여자대학교 전통의상학과에서 진행하는 졸업 작품 전시회이다. 이 전시회가 마지막이 된 것은 지난 2015년에 배화여대 전통의상학과가 패션디자인과와 통폐합되었기 때문이다. 한복 동아리 아람은 이러한 사건에 대해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전하며 글을 마쳤다. 게시글에는 더 자세한 내용이 나와있지 않아 인터넷 기사를 통해 이 사건에 대해 더 알아보기로 하였다. 인터넷 기사를 조회한 결과 다음과 같은 신문 기사가 있었다.


 ‘요즘 대학교가 시장 논리에 따라 취업사관학교가 되어가고 있다. 이는 학교 내에 있는 학과에서 적당한 아웃풋, 즉 취업률이 좋지 않으면 돈이 안 된다는 명목 아래에 그 과를 폐지시키거나 통폐합시킨다는 것이다. 여기 이러한 사회적 추세에 피해를 본 학과가 있다. 바로 배화여자대학교의 전통의상학과다. 해당 학과는 2015년 패션디자인과로 통폐합되었다. 사유는 한복 시장이 작음에 따라 학생들의 취업이 어렵고 굳이 같은 계열에 패션디자인과가 있는데 과를 존속시킬 필요성이 없다는 학교의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그 과의 동문들은 광화문에서 시위를 펼쳐 가며 과의 통폐합을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하 생략.’(매일 신문)


 물론 이 기사 내용은 한복 관련과인 전통의상학과의 사연만 다루고 있진 않다. 오히려 여기서의 핵심은 대학교에 취업사관학교화의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 팀이 여기서 주목한 바는 한복 시장이 작다는 것이었다. 한복 시장이 작다는 것은 즉 한복의 수요가 적다는 것이다. 한복의 수요가 적다는 것은 또한 사람들이 그 만큼 한복에 관심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본 팀은 단순히 경제적 가치 때문에 우리의 고유 문화가 평가 절하 된 것에 대해 대단히 아쉬워했다. 아래의 표는 한국 사람들이 그들의 전통 복장인 한복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통계이다. 


0fee0c6418511ade842b719c751e14ca_1490165
0fee0c6418511ade842b719c751e14ca_1490165

이 통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국인들이 얼마나 그들의 전통 복식인 한복에 대해 관심이 없는지 드러나는 어느 정도 들어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고유한 옷인데도 불구하고 한복을 보고 신기해하거나 관심없어 한다. 1년에 한 번 조차 입지 않고 그 만큼 관심이 없으니 구매 또한 현저히 떨어진다. 이러한 무관심이 결국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를 지키던 학생들의 학구열과 의지를 꺾어버리게 한 것이다. 우리 팀은 이러한 사회적 성향을 꽤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번 로컬리티 윈터 스쿨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한복을 안 입게 되었는지를 알아 볼 것이다. 그리고 한복이라는 전통을 지키기 위해 어떤 자세를 임해야 하는지를 인도학과 답게 인도에서 그 해답을 찾기로 했다.


 인도는 그들의 전통 복식을 여자의 것은 사리 남자의 것은 도티라고 부른다. 그 중에서 사리는 현재의 인도에서도 일상복으로 입을 만큼 대중적인 옷이다. 인도의 사리가 얼마나 대중적인지는 다음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다.


 

0fee0c6418511ade842b719c751e14ca_1490165

 

출처 border&fall, 2016


 우리는 이 자료를 통해 어째서 인도에서는 그들의 전통 복장을 즐겨입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윈터 스쿨에서 우리와 함께한 리짜와의 토의를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토의 결과  여러 측면에서 사리와 한복의 차이가 분명히 갈라졌는데 크게 역사적, 경제적, 문화적인 측면에서 그 차이를 알아볼 수 있었다.


1. 역사적인 이유


 한복이 현재의 상황을 직면하는 것의 가장 큰 시작점은 조선의 개방부터 볼 수 있다. 개방 이후 서구문화가 조선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조선정부는 근대문화와 제도를 받아들여 조선을 근대화시킬 방법을 강구하였다. 곧 위로부터 근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으로 사절단을 파견하여 새로운 문화를 배워오게 하였다. 1881년 일본에서 신식문화를 배우기 위해 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등으로 신사 유람단을 조직하여 일본에 파견하였다. 현재까지는 이들이 양복을 입고 귀국한 것이 조선인 가운데 최초의 양복 입은 신사로 알려져 있다. 1896년 1월 고종이 「문무관복제개정령」을 선포하고, 본인도 종전의 의관을 벗고 양복으로 바꾸었다. 전근대의 상징이던 한복과 상투는 단발과 양복으로 변하였다. 중앙의 관리들이 양복으로 갈아입고, 권력과 재력 있는 자들부터 서서히 양복에 반질반질한 머릿기름을 바른 짧은 머리로 권위를 이어나갔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일본인들이 조선으로 건너오면서 양복문화는 급속히 퍼져나갔다. 게다가 일본은 조선에 양복을 만들 수 있는 옷감을 마구 제공하였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양복이 많이 보급되었을 법하지만, 간간히 발견되는 사진들을 보면 여전히 조선의 많은 민중들은 무명으로 짠 힘없는 한복으로 몸을 칭칭 감고 있다. 일제 말이 되면서 부녀자들의 노동복으로 몸빼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백의민족의 상징물인 한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해방이 되자 귀환동포들이 몰려들어 왔고 미군도 진주하였다. 이들이 입고 들어온 복장은 그동안 고이 지켜온 한복 중심의 복장 패턴을 바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자나 여자들이 한복을 벗고 양장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한국전쟁은 많은 공장시설을 파괴하기도 했지만 원조물자나 구호물자, 군용관련 물자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온 시기이기도 했다. 전쟁의 어지러움 속에 거추장스런 한복보다 간편한 양장계통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중반 원조자금으로 면방직공장이 복구되고, 고급복지를 생산하는 공장이 등장하였다. 나일론이 수입되다가 생산되면서 새로운 옷감이 다양한 옷을 만들 수 있게 하였다. 1956년 10월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패션쇼가 열리었다. 패션의 변화에는 당시 상영되었던 영화나 출판된 여성용 잡지들이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점차 양장이 한복을 압도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1961년 5 · 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사치를 근절하는 재건국민운동의 영향으로 의류제품의 수입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수출산업으로 섬유산업이 발달하면서 국내 의류산업 또한 발전하였다. 재건운동 과정에서 재건복, 즉 남자와 여자의 근무복이 등장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간편복이 강요되면서 자유로운 패션에 걸림돌이 되는 듯 했다. 1970년대 들어서자 서양 옷이 우리의 평상복이 되었다. 한복은 어머니들이 큰 일이 있어 외출하는 날이나 명절 때나 등장하는 특별한 옷이 되었다. 무슨 라사, 무슨 양복점이니 하는 양복 맞추는 집들이 한 몫 보는 시기도 이즈음이었다. 1980년대 초, 반도패션, 삼성물산, 코오롱, 한일합섬, 제일모직 등 대기업에서 기성복을 만들어 내면서 수제품 양복점들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컬러텔레비전의 등장, 1983년 교복자율화,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해외여행 자유화, 수입 자유화 등은 패션산업에도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그리고 백화점과 대형할인마트의 등장은 패션의 다양화를 더욱 부채질하였다. 1990년대 이후 웰빙 바람은 건강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이 바람을 탄 스포츠용품은 또 다른 스포츠 패션을 만들었다. 그리고 IT산업 발달과 함께 통신판매가 증가하면서 우리의 입을 거리는 한층 다양해졌다.


인도의 사리는 위와 같은 한복과 역사와 달리 조금 상한 모습이 전개된다. 인도의 사리는 5000년 정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여러 시대를 거치며 그 형태는 조금씩 변하여갔지만 긴 천을 한 번에 둘러 입는 다는 기본적인 형태는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리도 우리나라의 한복과 같이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 데 그것이 우리와 같은 식민 통치를 받던 시기, 바로 영국령 인도제국 시기이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촌락 단위로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촌락 내에서는 전통적으로 이어져오는 관습이 있었다. 이는 굉장히 영향력 있었으므로 촌락 내에서의 관습은 그 곳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때문에 인도는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도는 굉장히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고 그 광활한 영토 내에서 수 없이 많은 촌락과 그 만큼의 전통 또한 존재했었다. 인도 사회가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인도 내에서 타 문화가 들어오는 것이 늦었고 또한 배척되기도 하며 문화 유입에 대해 상당히 방어적인 성향이 많이 나타났다. 그리고 수 없이 많은 전통들과 관습들이 존재했으므로 영국이 문화적으로 인도를 침략하는 것에 굉장히 큰 장애 요소가 있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영국은 인도 통치 시절 그 많은 양의 촌락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들어 했기 때문에 인도 사회의 엘리트 계층을 친영파로 만들어 그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자 하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인도 국민 회의였다. 그러나 친영파였으며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는데 크게 공조한 인도 국민 회의는 영국이 인도를 효과 적으로 지배하고자 실행했던 벵골 분할령 발표하자 그들의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벵골 분할령이 같은 민족인 힌두를 단순히 종교적인 구분점을 둬서 힌두교와 무슬림 사이에서 분란을 조성하며 민족을 분열하는 것에 그 목적을 둔다고 인도 국민 회의가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친영 세력이었던 인도 국민 회의는 민족주의 성향으로 바뀌어 그들 중심으로 영국에 대항하기 시작하였고 그런 과정에서 복식(사리)을 포함한 인도의 자문화가 보호되었다.


 또한 독립 이후로도 초대 수상인 네루가 비동맹 노선을 내세운 것이 전통 복식을 포함한 자국 문화를 보호하는데에 크게 작용했다. 비동맹 노선이란 서방권, 공산권과 다른 패널에서 단순히 양 진영에서 한 세력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자본, 공산 두 세력을 벗아난 3세계를 형성하였고 그들만의 독자적인 노선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비교적 다른 나라에 비해 외부 문화의 침투가 비교적 적었고 자국중심 문화 위주로 사회가 발전한 부분도 사리의 보존하는 데에 영향력을 주었다.


2. 경제적인 이유


 사리와 한복 사이에는 경제적인 측면의 차이점 또한 존재한다. 사리의 구조는 옆에 사진과 같은데, 먼저 노출된 허리가 살을 더 시원하게 유지시켜준다. 사진에선 보이지 않지만 엉덩이쪽은 딱 붙기 때문에 발 부근의 공기순환을 돕고, 상체에선 사리가 팔을 덮기 때문에 47%의 단열효과가 있다. 또한 원뿔형의 치마가 계속해서 공기순환을 돕는 역할을 한다. 단편적으로 말하자면 사리는 편하지만, 한복은 일상생활 하는데 불편하다. 한복은 치마가 넓기 때문에 여기저기 쓸리고, 앉아 있다가 일어날때 항상 치마밑단을 밟고, 고름이 자주 풀려서 항상 신경써야 하며, 저고리는 면소재가 아니라 신축성이 전혀 없다. 한복을 입고 하는 육체적 노동, 예를들면 밭일이나 손빨래 등을 상상해 본다면 쉽게 그 불편함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반면에 사리는 왼쪽의 그림과 같이 입고 일상생활 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하나의 긴 천을 몸에 두르는 방식으로 입기 때문에 따로 신경 쓸 것이 없고, 신축성도 매우 좋다. 다음은 유지·관리 차원이다. 사리는 관리가 쉽다. 사리의 원단은 주로 silk, cotton, crepe, chiffon으로 만들어지는데, 그 때문에 집에서 쉽게 손빨래가 가능하고 바람에 널어 두었을때도 잘 마른다. 그에 비해 한복은 관리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한복의 원단은 주로 화학 섬유 혹은 본견(비단)으로 만들어지는데, 그래서 세탁기나 손빨래가 아닌 드라이클리닝이 필수이다. 드라이 클리닝의 비용이 8000원에서 10000원 선이라고 생각하면 일상적인 의복을 세탁하기에 부담스러운 비용일 수 있다. 또한 사리는 가지고 다니기 용이하다. 얇고 부피가 작아 여행할 때 매우 편리하게 짐을 쌀 수 있다. 결정적으로 사리는 한복과 달리 체형에 관계없이 입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사이즈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예를 들어 살이 찌거나 살이 빠져도 재구매를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누구나 알 듯이 한복은 사이즈가 고정되어 있고 더욱이 신축성이 전혀 없어서 체중에 변화가 있다면 다른 사이즈로 재구매를 해야 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사리는 한복에 비해 경제적이다 할 수 있다. 또한 한복은 보통 접근성이 떨어진다.


인사동이나 광장시장에 가야 한복가게가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렇게 한복을 모아둔 곳에 가면 생각보다 저렴하고 다양한 디자인의 한복을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옷을 대형 쇼핑몰에서 구매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복은 일상생활에서 노출되기도 쉽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한복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기에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사리의 상황은 다르다. 백화점과 시장을 포함한 모든 의류 상점에서 다양한 디자인과 가격대의 사리를 항상 구매할 수 있다. 따라서 사리는 한복과 같은 전통의상이지만, 일상생활에 항상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리감을 느끼지 않은 것이다.

 

3. 문화적인 이유


 위에 그래프에서도 확인한 바이지만 인도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그들의 전통 복장 입는 것이 일상적이고 정상적이다. 그러나 단순히 사리가 그들의 일상복이자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사리를 입는 것이 아니다. 인도는 힌두의 나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힌두교도들인데 그들은 위의 역사 부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촌락 형성에서 관습을 지키며 살아 온 사람들이라 보수적이고 전통을 중요시 여긴다. 힌두들은 또한 그들의 의식주 하나하나에 그들의 종교관이 들어가 있어 사리를 입는 것에도 힌두교의 철학이 여러 녹아들어가 있다. 즉 그들이 사리를 입는 것은 종교적인 필요에 의해 행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 인도는 자문화 우대주의의 성격을 가진다. 이는 지난 2014년 힌두 극우 당파인 인도인민당(BJP)가 정권을 잡은 것을 봤을 때 설명이 되는 부분이다. 즉 자신들의 문화를 보호 우대하려는 그들 자체의 최근 동향으로 인한 것으로도 판단된다. 또한 방송을 보면 연예인, 정치인 등의 유명 인사들이 사리를 입고 등장하는 것이 자주 보이는 데 이것도 자국 문화 보호 우대주의에 의한 것이라 판단되는 것인데 유명 인사들이 사리를 입음으로써 그들이 현재 동향에 대해 지지를 표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 그들의 인지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 


4. 결론


 이번 캠프에서 인도의 사리와 한국의 한복을 비교하면서 한복이 앞으로 한국의 전통 의상으로서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가져야 할 자세, 혹은 미래상에 대하여 예상할 수 있었다. 인도의 사리가 영국 식민지 시절 이후로 하여 의복으로서의 지위를 지킬 수 있었던 까닭은 국민이 그들의 것을 지키려고 하는 엄청난 시도 덕분이었다.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복을 지키지 않았다거나 자국 문화를 소중히 하지 않았다는 뜻을 내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들은 그들의 것을 지켜 지금까지 잘 계승해오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곧 정도의 차이이다. 인도인들이 그들의 것을 지킬려고 하는 수 많은 저항들과 함께 전통을 유지하려는 그들의 특성이 사리를 지킨 것이다. 우리도 또한 자국 문화를 지키려고 하는 수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그것이 범국민적이지 않고 일부의 사람들에 의해 진행되었다는 것에서 지금과 같은 차이가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한복을 미래에도 후세에게 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소수의 움직임이 아닌 다수의 움직임으로써 고유 문화를 지켜야한다는 것이다. 즉 관심이다. 


 또한 이러한 관심을 바탕으로 한복 시장에 활기를 넣어야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언급한 대로 한복을 일반적인 매장에서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는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만큼 사람들의 관심 또한 하락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관심이 하락하면 그 만큼 수요도 떨어지기 때문에 한복 시장에 대한 과감함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현 시대에 맞게 한복은 변화를 준비해야한다. 기존의 한복은 시대와 동떨어진 면이 다분하다. 긴 치마는 사람들의 거동을 불편하게 하는 장애 요소이며 다른 복잡한 한복을 입는 방식 또한 효율적이지 않다. 이와 달리 사리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모습도 그 시대에 맞게 변화하였고 이에 따라 사람들 또한 사리를 더욱 즐겨 입게 된 것이다. 한복 또한  과거에서 벗어나 간편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출시되어야 한다. 즉 최근 조금씩 대중화 되고 있는 생활 한복의 발전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생활 한복은 1990년대 전통한복을 현대 생활에 적합하도록 간략하게 변화를 준 한국적 양식의 의복을 지칭하는 용어로 개량한복과는 그 발생 배경에서 차별화된 것이다. 한복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 기능성과 실용성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가미한 것이 특징적이다. 현대인의 일상생활에 적합한 한복 유형이라는 의미에서 생활한복으로 불리는 데 이러한 한복은 현 흐름에 맞게 변화하는 추세에서 사람들, 특히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대중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여 더욱 한복을 알리고 한복이 불편하다는 인식을 버리게 만들어야 하고 한복 자체의 멋을 중점적으로 알려야 하는 것이다. 즉 이러한 한복의 변화 그리고 사람들의 변화가 우리 고유의 문화를 지키는 발걸음의 일보가 될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외대로 81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 교양관 213-1호
031-330-4593~4 / localitycenter@hufs.ac.kr
Copyright (c) 2020 한국외국어대학교 로컬리티 사업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