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ity Challenge

해외탐사 프로그램 ‘Locality Challenge’

백문불여일견이라는 말, 알고 계십니까? ‘Locality Challenge’는 자신이 공부하는 지역을 직접 탐사하는 해외탐사 프로그램입니다.

참여하는 학생들은 탐사지역에 관해 인문·지역학적 탐구과정을 실시해 계획을 수립·발전시키고, 각 지역의 지역학적 효용가치를 재발견하며 도전정신을 배양하게 됩니다.

‘Locality Challenge’를 통해 학생들은 인터넷과 책에서만 보던 지역을 눈으로 직접 보고 피부로 느낄 수 있으며, 광역특화전공 내 4가지 트랙의 오지성 지역을 팀원들과 함께 구석구석 탐사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됩니다.

Title [3기] 한국학과 - 텐사이하꼬 (1) [식민지 문인들의 작품을 통해 바라본 도쿄와 서울의 도시 경관]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7-03-17 10:22 Read 2,07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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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이란 참 치사스런 데로구려!

 

어디를 가도 구미가 땡기는 것도 없오 그려!”

 

1930년대, 조선의 문인 이상이 동경에서 김기림에게 쓴 <사신>의 일부분입니다. 그는 조선의 경성에서 태어나 일본의 동경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그의 생각과 행동, 남겨진 작품 그리고 그의 생애까지 그는 조선 근대의 한 키워드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경성에서 늘 근대를 꿈꾸던 그는 자신이 근대라고 생각하였던 동경에 유학을 가게 됩니다. 동경은 그 당시 조선의 제국 수도였기 때문에 그 모방인 경성보다 나은 원본이라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동경에 와서 그의 친구 김기림에게 동경은 치사스러운 곳이다라고 단정 지어 버립니다.

 

동경이라는 곳은 이상뿐만 아니라 1920, 1930년대 한국문학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공간입니다. 동경은 단지 제국의 수도가 아닌 하나의 문화적 공간으로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의 조선의 문인들은 제국 일본의 수도 동경을 식민지 지식인들의 문명과 지식을 향한 특별한 환상과 욕망이 투여된 상징적 공간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본 탐사 팀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여러 문인들의 작품을 시대, 공간적 배경과 함께 연관 지어 전공 수업을 수강해왔습니다. 그 당시 동경 행을 결정한 문인들의 여러 작품을 보았고, 작품을 통해 20세기 전반기 제국 일본의 도시 문화를 간접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본 탐사 팀은 이를 바탕으로 실제 도쿄의 모습이 그러한 작품에 표현된 바와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 직접 체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동기에서 출발하여 본 탐사 팀은, 그 당시 경성 도시 경관의 변화가 어떻게 문학 작품에 반영되었는지 사전조사를 통해 알아보고 조선 문인들이 일본에 방문했을 때 어떻게 느꼈을지 체험해보는 기회를 이번 탐사를 통해 가지려고 합니다.

 

본 탐사 팀은 1차 사전조사를 하며 일제강점기 도쿄를 방문한 여러 문인 중 특히 작가 이상(李箱)이 묘사한 도쿄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예컨대 이상의 작품에서는 백화점이 모더니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다양한 의미를 가집니다. 소설 <날개>(1936)에서는 미츠코시 백화점이 모던함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대표됩니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은 백화점의 시대였다. 1906년 미쓰코시가 경성에 지점을 설립하면서 시작된 한국 백화점의 역사는, 1926년 히라다 백화점이, 1929년에 조오지아 백화점이 등장하면서 점차 가속도를 냈다. (중략) 당시 백화점은 디스플레이의 판타스마고리아 (Phantasmagoria)를 체험할 수 있는 최상의 공간이자, 온갖 스펙터클이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의 공간이었다.” 이러한 백화점으로 장식된 도시 경성에서 이상은 단짝인 김기림에게 도쿄에 볼 것이 없다고 편지를 보냅니다. 동경하던 제국 수도에 실망하면서 모던하지 않지만 그리운 경성을 묘사하는 이러한 편지의 내용은 식민지의 문인으로서의 열등감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이상에게 도쿄는, 모던하고 화려한 공간이자 동시에 열등감의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도쿄에 모순된 감정이 동시에 공존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탐사해보려고 합니다.

 

또한 본 탐사 팀의 탐구는 단순히 일제강점기의 도쿄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의 비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추가적인 사전 조사를 통해서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수도 경성(현재의 서울)에 세워진 건물인 구 서울역, 서울시청, 서울시립미술관 등의 건축 양식을 조사하고, 비슷한 시기 건축된 도쿄의 도쿄 역, 국회의사당 등과 어떤 점이 비슷한지를 비교해보는 과정까지 거칠 예정입니다. 더 나아가 그 당시의 도쿄 건축물과 현재 한국에 존재하는 건축물의 비교를 통해 해당 비교가 가지는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의미를 재정립해보는 것을 최종목표로 정하였습니다.

  탐사테마에서 언급하였듯이 본 탐사 팀의 이번 일본 도쿄 탐사 목표는 크게 세 가지로 제시됩니다.

 

첫째, 일제강점기 동경의 모습과 현재 일본 도쿄의 모습을 비교하여 제국의 수도 동경을 식민지 조선의 문인들이 바라본 시선과 본 탐사 팀이 현재 도쿄를 바라보는 시선을 비교할 것입니다. 사전 조사를 통해 이상이 도쿄에서 김기림을 만나러 갔던 길이나 자주 갔던 백화점 및 과일가게 등이 현재 도쿄에도 고스란히 남아있음을 파악하였습니다. 1930년대 후반에 이상이 이 길이나 건물을 갔을 때 느꼈던 점을 문헌에서 발췌하여 자세히 알아본 뒤에 직접 탐사를 하면서 어떠한 부분이 그대로 남아있는지 아니면 어떠한 부분이 현대적으로 바뀌었는지 알아보는 활동을 할 것입니다. 또한 사전 조사를 통해 일제강점기 동경의 어떤 건물이 근대화의 상징인지, 현재 도쿄에서는 어떤 건물이나 장소가 트레이드마크로 남아있는지 등에 대한 비교를 해봄으로써 근대에서 바라본 모더니즘과 현대에서 바라본 모더니즘의 시각 차이에 대해서도 연구할 예정입니다.

 

  둘째, 1910년대부터 1930년대 말, 식민지 조선의 소설에는 일본 동경과 조선 경성의 여러 건축물 및 장소가 문학 작품의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현재 도쿄와 서울에는 식민지기에 만들어 진 건축물들이 상당수 남아있습니다. 현재 서울역 옆 구 서울역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역으로 문화역서울284’ 전시회장으로 활용되고 있고 서울특별시청은 일제강점기에 경성부청으로 설립되어 지금까지 6차례 증축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서울 명동의 신세계백화점 본점도 1930년 미쓰코시 경성점으로 개장하여 신세계백화점으로 바뀐 연혁이 있습니다. 조선은 앞서 탐사 테마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근대화 과정이 식민지기에 이뤄졌고 여러 문헌 및 사진 자료를 통해 일제강점기 동경과 경성의 건축물 구조가 비슷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 조선의 문학 작품에 나오는 도쿄의 건축물과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건축물 양식을 비교해보면서 문학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단순한 건축물 내·외부 비교에서부터 확장하여 현재 해당 건축물은 어떻게 보존되고 있는지, 바뀐 부분과 남아 있는 부분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는 지 깊이 살펴보는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셋째, 본 탐사 팀의 소속인 한국학과에서 지향하고 있는 문화적 기반을 바탕으로 한 한국학 연구를 이번 탐사 목표에도 접목시키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문학을 비롯한 여러 문화물에 대해 자료조사를 한 뒤에 문화물에서 비춰지는 조선 경성의 생활양식과 그 당시의 일본 도쿄의 생활양식에서 유사한 모습을 비교해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동경의 생활양식이 현재 도쿄에 얼마나 남아있는지, 남아있다면 어느 부분에서 남아있는지 직접 체험해 볼 예정입니다. 드라마나 영화, 만화와 같은 영상물들은 그 당시 경성이 모습을 텍스트와 또 다르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영화 <암살>이나 <모던 보이>에서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일본의 어떤 문화 양식을 가져왔는지 등장합니다. 드라마 <바스켓볼>, <경성스캔들>, <각시탈> 등에서도 일제강점기의 조선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 어떤 부분에서 일본의 생활양식을 가져왔는지 등이 등장합니다. 문학 작품에서 확장하여 현대 문화물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의 생활양식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실제로 일본 도쿄에서 영상에서 등장하였던 생활양식과 유사한지 알아 볼 예정입니다.

 

  위 탐사는 해당 목표를 가지며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탐사 예상 성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학의 관점으로 문학 자료를 시공간적 요소를 결합하여 다각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전공으로 어떤 학문을 연구한다는 것은 다양한 방법이 존재합니다. 보통 수업을 수강하면서 문헌 자료를 통해 학문을 연구하는 것을 기초로 하며 유학이나 교환학생처럼 해당 전공과 관련된 국가를 직접 가서 공부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 탐사 팀은 타 학과와 달리 어떻게 하면 전공을 심도 있게 배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점이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는 한국 근대사, 나아가 현대사까지 많은 영향을 끼친 시기입니다. 한국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일제강점기의 한국학, 깊게 식민지 조선의 문학과 건축 및 문화 생활양식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일본 도쿄 탐사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일본의 수도와의 비교가 아닌, 문학 및 여러 자료를 통해 일제강점기의 조선을 심도 있게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둘째, 이번 탐사는 대학생 때 전공 학문, 즉 문화적 배경을 기반으로 한 한국학에 대한 인문학적인 사유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합니다. 본 탐사 팀이 직접 일제강점기 조선의 문인이 되어 일본 도쿄를 보고 체험하는 것이 이번 탐사의 주요 테마입니다. 그에 걸맞게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이상이나 박태원, 염상섭, 이광수, 이창준의 문학 작품에 등장한 장소를 방문하여 저희 팀이 느낄 수 있는 감정과 나름대로 정립한 철학적인 사유를 잡지 형식으로 담아낼 예정입니다. 다른 탐사 팀에 비하여 저희 팀은 정치나 사회, 경제적으로 연구 성과를 얻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다른 팀보다 오롯이, 순수 학문만을 심도 있게 탐구할 수 있고 추후에 다른 곳에서 탐사 프로젝트를 맡는다고 해도 선정하기 힘든 테마를 정했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오히려 본 탐사 팀의 장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본 탐사 팀은 탐사 성과물로 잡지와 영상을 제작할 예정입니다. 탐사 성과물로 제출할 잡지는 다음과 같은 구성을 취합니다. 겉표지와 내용 구성은 사료조사를 통해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조선이나 일본의 잡지 형식을 모방하여 최대한 유사하게 만들 예정입니다. 그리고 탐사 중에 옛날 도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현재 도쿄의 여러 장소를 사진으로 남겨 간단한 소개 글과 함께 기재할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문학작품에 등장한 일본 동경의 장소가 나오는 부분을 그대로 발췌한 다음, 바로 옆 페이지에 저희가 그 장소를 방문하고 수필이나 간단한 느낌을 담은 문학 작품을 기재할 예정입니다. 그 외에 각종 현대 문화물에서 담고 있는 일제강점기 조선 경성의 모습에서 어떤 부분이 일본 동경의 문화 및 생활양식을 담고 있는 지 간략하게 소개하고, 현재는 어느 정도 문화 및 생활양식이 남아있는 지 기록 하는 부분도 만들 예정입니다. 단순히 구성만 일제강점기의 잡지 형식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내용 또한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일제강점기의 동경과 경성의 모습을 비교하는 성과물을 만들 것입니다. 또한 중간중간 사진과 영상으로 남긴 자료들도 하나의 영상으로 만들어 탐사 일정 중 발생했던 내용들에 대해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2017. 01. 18. 1일차

  1809시경 학교 앞 정류장에서 본 탐사원이 모두 모여 인천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먼저 서울역을 거치는 경로로,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공항철도를 타기 전 마트에 들려 부족한 준비물인 셀카봉, 노트 3매를 구매하였습니다. 이후,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공항철도에 탑승하여 1230분경 인천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이후, 미리 신청했던 포켓 와이파이를 수령하였고, 출국수속을 마친 후 공항에서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1555분에 출발하기로 예정되어있던 인천발 나리타공항행 비행기가 약간 늦어 1610분이 넘은 시간에 출발하였으나, 나리타공항에 약 1830분경 도착하였습니다. 도착과 동시에 사전에 신청했던 해외로밍 서비스가 되는 것을 확인하고 통신망을 확보했습니다. 나리타공항 제2터미널에서 나리타 익스프레스 티켓과 suica교통카드를 구매하고 교통카드에 5000엔을 충전하였습니다. (숙소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기 위해 편의점에서 간단한 다과를 구매하였습니다) 이후 1950분경 도쿄로 출발하는 나리타 익스프레스 열차에 탑승하여 도쿄로 향하였고, 기차가 연착이 되어 예상시간보다 더 늦은 시간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도쿄역에서 한번의 환승을 거쳐 숙소가 있는 아오토역에 22시가 넘은 시간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늦은 시간에 도착을 하였고, 숙소가 있는 역이 주택이 주로 있는 지역이어서 영업중인 식당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역 근처에 있는 마트로 향해 숙소에서 먹을 수 있는 컵라면, 영업 마감시간이 다가와 거의 반값에 판매하고 있는 초밥, 물 등을 사서 숙소로 향했습니다. 숙소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지낼 때 유의할 점 등을 모두 들은 뒤 간단한 식사를 하고 다음의 여정을 준비한 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2017. 01. 19. 2일차 

 예정보다 이른 시간에 숙소에서 지하철을 타고 히가시 긴자역 A2출구로 나와 미츠코시 백화점으로 향했습니다. 미츠코시 백화점 외부는 명동에 위치한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유사하였으나, 내부는 기대하던 바와 달랐습니다. 예상하고 있던 로비의 큰 계단이 존재하지 않았고 비상계단을 제외하면 계단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외부를 제외하고는 옛 건축 양식이란 찾아볼 수도 없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기던 도중, 추가적으로 검색을 더 하여 본 탐사팀이 미츠코시 본점이 아닌, 미츠코시 긴자점에 도착하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맞은편에 있는 와코 백화점을 방문한 뒤 미츠코시 본점으로 향하기로 일정을 추가한 후, 와코 백화점을 방문하였습니다. 와코 백화점의 외관 역시 명동 신세계 백화점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백화점의 내부 분위기가 조금 더 조용하고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미츠코시 본점으로 향하기 전, 긴자거리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긴자거리는 우리가 비교할 대상인 명동과는 다르게 명품 브랜드를 판매하는 곳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긴자거리를 둘러보며 본 탐사원들은 현재 우리가 긴자거리를 방문해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데 식민지시대 동경에 온 문인들의 기분이 어땠는지 가히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긴자거리를 거닐며 계획한 예산으로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찾기가 힘들었고, 식사 한 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현실에 상대적 박탈감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옷가게, 화장품가게, 명품샵, 음식점까지 여러 가게들이 모여있는 거리를 거닐며 번화가에 도착하였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울의 명동거리와 비교해 보았을 때 긴자거리는 비슷하면서도 다른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두 거리 다 번화가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서울의 명동거리의 경우 큰 백화점을 제외하고는 중저가 브랜드의 가게들이 많았고, 길거리 음식점이 많았습니다. 반면 도쿄의 긴자거리는 명품 브랜드의 가게들이 많았습니다. 명동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특히 관광객들이 많아 매우 활동적인 분위기를 띄는 반면 긴자는 조금 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긴자거리를 걷다보니 어느새 신바시 역까지 도착을 하였고, 역 근처에서야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 근처도 가격이 살짝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고, 카드를 받지 않아 환전해놓은 화폐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비록 만족스럽지는 않고 우울해지기 시작했지만 식사를 마친 후 미츠코시마에 역에서 하차하여 미츠코시 백화점 본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미츠코시 백화점 본점의 외관은 본 탐사원들이 기대하던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외관과는 살짝 달랐지만, 백화점 내부는 예상했던 결과와 비슷했습니다. 영화 암살에 등장하던 미츠코시 백화점의 계단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고, 건물 내부 곳곳에 옛 건축양식이 남아 현대적인 건축양식과 고풍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낮은 천장, 엘리베이터를 안내해주던 안내원, 중앙 계단, 샹들리에 등이 본 탐사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미츠코시 백화점 경성점(현 신세계백화점)은 당시 미쓰코시 건축사무소의 히야시 고헤이가 설계하여 동일한 양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세계백화점과 미츠코시 백화점의 차이는 그 크기에서부터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옛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 구관과 새로 지은 건물인 신관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두 구관을 비교하였을 때 건물 하나도 차별화를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신세계백화점과 미츠코시백화점은 내부 면적부터가 눈에띄게 차이났으며, 백화점 입구의 조형물들에서도 그 정성을 비교해볼 수 있었습니다. 미츠코시 백화점 입구에는 사자 2마리의 조형물이 있었는데, 그 크기가 매우 웅장하여 앞발을 만지면 복이 온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사전조사당시 신세계 백화점을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미츠코시 백화점에 도착하였을 때 그 옛날 1920년대를 방문한 것 같았습니다. 옛날에 지어진 것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미츠코시 백화점 옥상에 올라 비로소 이상의 <날개>에 나오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커피- 좋다. 그러나 경성역 홀에 한 걸음을 들여놓았을 때 나는 내 주머니에는 돈이 한 푼도 없는 것을, 그것을 깜빡 잊었던 것을 깨달았다. 또 아뜩하였다. 나는 어디선가 맥없이 머뭇머뭇하면서 어쩔 줄을 모를 뿐이었다. 얼빠진 사람처럼 그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서...

 

나는 어디로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시간 후에 내가 미쯔꼬시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

나는 거기 아무 데나 주저앉아서 내 자라온 스물여섯 해를 회고하여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거져 나오지 않았다.

나는 또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중략)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비록 이상의 <날개>처럼 동경 거리를 헤매다 미츠코시 백화점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의미로 방황하다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이상에 동화된 느낌이었습니다. 대학에만 입학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대학교에 입학을 하였고, 입학한 이후에는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방황을 하였지만 로컬리티 챌린지라는 기회를 얻어 동경에 오게 되었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날개>의 주인공과 같이 지금까지의 일생을 회고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비록 동일한 시대를 살고 비슷한 종류의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공간에서 그 흔적을 찾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백화점 옥상에서 내려와 미츠코시 백화점 내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남아있는 흔적에 신기함을 감출 수 없었고, 그렇게 고층 휴게시설에 도착하여 간단한 영상과 사진 등을 남긴 뒤, 오늘의 간단한 여정을 잊지 않게 노트에 적고 현재 느낀 감정, 떠오른 영감 등을 하나의 작품으로 남기기 위해 각자 노트에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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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거리

이보람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건물 하나를 지날 때 마다 보이는 골목골목, 지친 다리를 이끌고 그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아니, 사실 허기를 해결하러 걷고 있었다. 하지만 천둥소리가 들리고 쓰라린 비가 내리는 곳에 폭풍우를 잠재워줄 수 있는 가게가 없어 하염없이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음식을 파는 곳이 있어도 동전만이 가득한 지갑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져 감히 열어볼 엄두도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무겁게 느껴지는 지갑이 가벼워질 때까지... 긴자 거리가 끝이 안보이도록 양 옆으로 길게 서서 너 따위가 올 곳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걷고 또 걸어 신바시역 사거리에 도착하였다. 길 건너에 적당한 음식점이 보여 다가가는데 위에 걸린 무언가를 발견했다. 모양이 익숙했다. 욱일기가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고 바로 발걸음이 돌아섰다. 다시 길을 건넜다. 펄럭이는 깃발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나마 낮은 가격의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새로운 사거리에 도착하였다. 미츠코시 백화점 니혼바시점. 꽤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들과 새로 지은 것 같은 건물들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누가누가 더 높은지 자랑하는 것 같았다. 날씨는 분명 따뜻하다고 하였는데 나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더 잘났다고 자랑하는 건물들 사이에서 초라하게 느낀 것인지, 단지 건물 때문에 그늘이 생겨 추운 것인지 확신이 가지 않는다. 그저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사거리를 다시 건너려고 한다.

 사거리의 반대편에 도착하였다. 좀 전과는 달리 햇빛이 들어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어딘가 구멍이 난 것처럼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만족스럽지가 않아 건물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아직도 갈증이 난 것처럼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다. 다른 장소로 이동하면 그 부족함이 채워질까 횡단보도를 건너본다. 아무리 걷고 걸어도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눈앞의 횡단보도 초록불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점점 빨라지는 깜빡거림과 동시에 사람들의 발걸음도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저 곳에 빨리 도착하더라도 부족한 부분이 채워질 것 같지 않았다. 서로 다른 극의 자석이 만나 밀어내는 것처럼 이 장소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싶어졌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뒤에서는 햇빛이 비추고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고향에 가는 듯 조금이라도 더 익숙한 장소에 반가움이 절로 드러나고 서둘러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반기는 이 아무도 없는 이곳에 나는 물 만난 고기마냥 익숙한 사거리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건너며 오늘 하루 동안의 감정을 그저 악몽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또 다독였다.

 

 

김보경

20171191430분 그 언저리에서.

 

 

 어젯밤 키스하우스에 도착해서 만난 중국인 소년이 나의 옆방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그들이 폭죽 터지듯 시끄럽고 아침에 알람 소리가 정말 크게 들려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안 그래도 시끄러워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소년의 손에 들린 구글 번역기 속 中文韩文글자가, 그리고 맥락이 맞지 않는 문장들이 나를 기분 좋게 했다. 낯선 이의 친절은 어쩌면 불편한데 고마웠다. 호빵맨을 그리고 색칠하고 있었는데. 일본에서는 호빵맨을 뭐라고 할까? 니혼바시 DOUTOR에 앉아 아이스 코코아를 마시며 네이버 사전을 켠다. アンパンマン. 앙팡망이라니. 기싱꿍꼬또 마냥, 모든 말의 받침에 이응을 붙여 말하는 게 유행했던 것 마냥 어감이 귀엽다.

이곳에 앉아 여유를 즐기면서도 10분 전만 해도 정신없었다. 다리가 아파 앉을 곳을 찾다 ! 커피(COFFEE)!’라고 외치며 달려간 곳은 ‘COIFEE’라는 미용실. 그 허탈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아이스 코코아는 290엔인데 우유크림이 올라가 있으니까. 작은 것에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삶을 밝게 만든다. 이런 판단조차 너무나도 주관적인 것이지만 말이다.

긴자 거리에서 산 펜을 뜯어 조그마한 노트에 기록하고 있는 지금의 나를 그리워할 날이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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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주름

 

안녕.

100센티도 안 되는 천사.

내가 널 예뻐하는 걸

너도 아는구나

웃을 때 생기는 코주름으로

하루 종일 심장을 때리다니

 

나의 히가시긴자역 A2 출구 아래에

너의 찡긋거림이

언제나.

 

이방인

 

최진

 그녀는 긴자 거리 구석에 위치한 니혼바시 DOUTOR에 들어왔다. 샤넬, 버버리, 이브생로랑 등 휘향찬란한 이름에 지쳐버린 그녀는 니혼바시의 작은 커피전문점, DOUTOR에 들어왔다.

 

DOUTOR의 친절한 점원들은 내가 외국인인 것을 알고 영어 메뉴판을 건냈다.

스트로베리 요구르-, 오네가이시마스-”

굳이 잘 하지도 못하는 일본어로 주문하는 그녀. 억척스러운 그녀에게 점원들은 미소를 아끼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영어 메뉴판을 보면 이방인이라 느끼는 그녀였다. 니혼바시의 미스코시백화점도 그녀는 이방인이라 깔보는 것만 같았다. 한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던 명품관들이었지만 미스코시에서는 압도당하는 그녀.

그녀는 스트로베리 요구르-또를 먹으며 남은 엔화 동전을 세어본다. 참으로 비싼 이 긴자 거리. 그녀의 엔화 동전으로는 뭐 하나 먹지도 못할 것이다. 분명히 장지갑에서 지폐 엔화를 건내야 무언가를 사먹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그녀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배는 시간마다 울어댄다.

긴자거리 구석으로, 또 구석으로 들어간다. 미스코시와 와코백화점을 한참 지나서 들어가야 식당가들이 나온다. 뭐하러 이 고생을 할까 하며 비싼 긴자의 물가에 눈물마저 핑 도는 그녀.

 

그녀는 발걸음을 멈췄다. 배는 하염없이 울어댔지만 그녀의 눈길은 어느 소바집의 샐러리맨에 멈췄다.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소바를 집어넣는 샐러리맨. 그러면서도 잘 먹었다며 고개 숙이며 동전을 건내는 그. 그의 모습에서 일본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미스코시의 그 점원도 나를 깔본 것이 아니라 상냥하게 대한 것은 아닐까. 이방인이 아니라며 박박 우기던 그녀였지만 소바집의 샐러리맨 앞에선 그녀는 자신이 이방인임을 인정하였다. 자연스레 그녀의 고개도 숙여졌다.

 미츠코시 백화점 근처에는 Bank of Japan 건물이 있었고, 명동 신세계백화점이 있던 곳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외관은 물론이고, 옛 건물을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바로 옆에 실제 업무를 볼 수 있는 은행이 존재하고 있다는 부분이 특히 그러했습니다. 마치 이것도 일제강점기 당시 구조를 비슷하게 하여 지배하기에 조금 더 편리하도록 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2017.01.20. 3일차

 전날 여정과 비슷하게 아침 0930분경 숙소에서 출발하여 약 1040분경 도초마에 역에 도착하였습니다. 도초마에 역은 도쿄도청과 연결되어 바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1층에 제1건물 1층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간단한 신청절차를 걸친 뒤 도청 견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도청 견학은 한국어로도 진행되어, 가이드분과 함께 곳곳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도청 2층에는 2020 도쿄 올림픽에 대한 간단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도쿄 올림픽의 로고, 성화봉송을 위한 성화, 리오올림픽 이후 가져온 올림픽 깃발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도쿄도청은 근대적인 건물은 아니었으며, 내부적인 개방이 서울시청과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도쿄도청은 외국인을 위한 통역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었고, 45층에서는 도쿄 시내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또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도쿄도청 제2건물 앞에는 약간의 경사가 되어있어 비가 올 때에 빗물을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빗물은 평소에는 화장실에서 물처리에 사용하거나, 화단에 물을 주는 용도로 사용하지만 지진 등의 재난이 일어나 식수를 구하기 어려워 질 때에는 정수의 과정을 거쳐 약 1달동안 사람들이 버틸 수 있는 양의 물이 비축되어있다고 합니다. 도쿄도청에서는 의회가 열리는 6개월을 제외하고 나머지 6개월은 국회의원들이 의결을 거치는 의회 또한 외부인들에게 개방하고 있었습니다. 도청 내부에 대한 팜플렛들도 여러 언어로 되어있어서 외국인들이 관광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도청의 7층에는 도지사가 근무하는 사무실이 위치하고 있으며, 비상시 빠르게 대피할 수 있도록 비교적 낮은 층에 사무실이 위치한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도회 의사당 견학을 마친 후 도쿄도청의 남쪽 전망대로 올라가 도쿄 전역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아침에 눈이 내리고 날씨가 흐려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여러 큰 관광지 및 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장소가 어디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도쿄전경을 바라보면서 느낀 것은 도쿄 중심지에는 고층건물이 매우 많이 건설되어 있다는 것과, 도심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공원이 존재하고 있으며 작은 규모이지만 신사가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쿄도청을 방문하였을 때에 단순이 도청을 방문한 것이 아닌, 작은 일본 전체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먼저 도청에 근무 및 통역 봉사를 하시는 분들의 연령대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에서 고용환경이 매우 좋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건물 앞 공터의 설계조차 재난에 대비하고 있으며, 실생활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공무원들이 업무하는 공간을 넘어서 전망대를 사람들에게 개방하며 관공서와의 거리감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또한 전망대가 위치하는 곳에는 일본 각 현들의 특산물 및 상징들을 소개하고 기념품을 판매하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 공간을 보며 특정 지역들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지역들에 대한 홍보를 효과적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각 현의 특징을 살린 캐릭터와 그 캐릭터가 함께 홍보하고 있는 특산물들이 일본 시장에서의 마케팅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반면 기념품을 판매하는 공간에서 여전히 전범기의 디자인으로 판매되고 있는 상품들을 보며 우리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각자 전망대에서 견학 및 감상이 끝난 후 1315분이 넘은 시간이 되어서야 주변에 있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식사는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하였으며, kumano 신사 대신 도쿄도청 전망대에서 발견한 메이지 신궁을 방문하기로 하였습니다. 조금 걸어가다보니 어느새 고층빌딩 숲을 지나 주택들이 있는 골목길로 들어왔고, 그 거리 특유의 느낌에 탐사원들은 기분좋게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메이지 신궁에 도착하여 신궁 주변을 둘러보며 천황이 가지고있는 부지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시간을 잘 맞춘 덕분인지, 운이 좋은 덕분인지 관광객이 많지 않은 시간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메이지 신궁에서는 어떤 신분의 사람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신궁 안에서 참배를 드리는 과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참배가 끝난 후, 일본 전통 의복 차림을 한 무녀가 신궁 안으로 들어가 참배를 드렸습니다. 메이지 신궁은 생각보다는 작은 규모였지만 사람들이 실제 참배를 드리는 모습과, 전통 의복을 차려입고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근처를 조금 더 둘러보고 넓은 숲을 걸어보다가 비가 내리기 시작해 일정을 서둘러 마무리하기로 하였습니다. 메이지 신궁에서 지하철역으로 나가는 데에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숲이 울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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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람

저 창 너머를 바라본다.

 

나무들로 우거진,

건물들로 우거진,

도시의 숲은 틈새를 찾기 힘들다.

 

추위를 피해 나무껍질로 도망간 벌레들처럼,

도시의 건물에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양분부족으로 죽어가는 벌레들처럼,

경쟁으로 점점 죽어가는 것 같다.

 

그들을 동정하며 안쓰럽게 생각하며

내가 있는 곳을 상기해본다.

 

사실은 부러운 것이었다.

 

추위를 피할 수 있음이,

질서를 가지고 모여살 수 있음이,

기회가 주어짐이.

 

나는 그저 경쟁의 대상이 되지 않는,

나무 밖의 한 마리 벌레일 뿐이었다.

 

김보경

2017120일 금요일 2340분쯤 키스하우스 테이블에서.

 

오늘 하루는 꽤 피곤했다. 그래서 숙소에 도착해서 2시간 정도를 자고 일어나서 키스하우스 테이블에 앉았다. 그 중국 소년이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꽤 잘 그린다. 먼저 말을 걸었다. 중국어는 못하니까 영어로. 내가 잘 그린다고 하니 아니라고 고개를 흔든다. 그러곤 이름을 물어봤는데 타이동이라고 했다. 나는 보경이고, 중국 발음으로 찐뿌찡이라고 하고 한자를 써서 보여줬다. 그래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는데 영어로 꽤 대화가 잘 통해서 신기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알아가는 것은 항상 설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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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청 한국어 가이드 할머님은 대구 사람에게 한국말을 배워서 사투리를 쓴다고 말씀하셨다. 한국에서 그런 구수한 사투리를 들으니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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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흐렸다. 도쿄도청 꼭대기 층 전망대에서 본 뷰는 선명하진 않았다. 아래를 더 내려 봤는데 여러 호텔들과 큰 건물들, 그리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 심시티 같은 게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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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초마에역 근처 미쯔이빌딩에서 먹은 덴뿌라와 우동이 너무 맛있었다. 500엔도 안 되는 가격에 정말 행복했다. 다들 바빠 보였다. 딱히 나도 바쁘지 않은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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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배를 가진 나는 24분을 걸어서 메이지신사와 그 일대의 요요기공원에 간다. 눈발과 비가 섞여 내리지만 좋았다. 골목길을 걸어 다녔다. 일본 느낌이 물씬 났다. 유명 관광지와 대표적인 상징 아닌. 일본 공기를 코에 마구 마구 넣으며 초록불이 되기를 기다리는 이 순간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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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추 도착한 것 같다. 왼쪽에 승마장 비슷한 곳이 있는데 아주 키가 작은 당나귀같은 아이가 있다. 색도 예뻐. 밀크 카라멜 같다. 인적이 드물어서 여기가 맞나 싶었지만 맞았다. 쪽문으로 왔나보다. 아무도 없고 나무들과 길, 그리고 햇빛 없이 흐린 공기만 있었다. 초록과 빛이 있어도 아름답겠지만 지금의 이런 센치한 분위기는 나를 오묘하게 만들었다.

 

아마 메이지신궁에 도착했다. 천황에게 참배를 한다. 난 하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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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네가이고또 라고 적인 봉투에 내 소원을 적었다. 세로로 쓰는 게 나의 글씨를 망쳤지만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11엔을 넣고 함에 넣었다. 11엔인지는 모르겠지만 11엔이 끌렸다. 이렇게 직감이 오다니.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려나보다. 21살이 된 지 0시가 지났으니 21. 괜히 이렇게 숫자가 맞으면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21살의 나에게 응원을.


 2017.01.21. 4일차

 소설 별은 창마다에 나오는 장소였던 제국극장을 탐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제국극장에 도착하였지만 옛날의 제국극장의 모습은 확인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제국극장은 현재에도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며, 현재는 뮤지컬, 콘서트 등을 상영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본 탐사원이 제국극장에 방문하였을 때에는 이미 티켓이 매진되었고 한쪽에는 아이돌 콘서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건물을 둘러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유리문 너머로 희미하게 제국극장의 내부를 볼 수는 있었지만 아쉽게도 자료는 남기지 못한 채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제국극장의 내부의 홀은 옛날 고풍스러운 무도회장 같은 분위기였으며, 내부 좌석 및 극장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하여 근처에 있는 유라쿠초 시네마에도 방문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멀티플렉스 개념이 아닌 그저 상영관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를 둘러보았습니다. 근처에 무인양품과 로프트가 있어 잠시 들러 구경을 마치고 이동하다보니 어느새 긴자에 도착하였고, 작은 소바 가게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하였습니다. 더 걸어가보니 2일차에 방문하였던 미츠코시 백화점 긴자점과 와코백화점이 있었습니다. 주말이어서 그런 것인지, 사거리에서 두 거리는 차가 다니지 못하게 통제하고 있었고, 본 탐사원들은 신나게 거리 가운데를 활보하며 새로운 느낌으로 긴자 거리를 거닐었습니다. 이후 바로 옆에 있는 히가시 긴자 역으로 향하여 진보초로 향했습니다. 진보초 근처에는 야스쿠니 거리와 야스쿠니 신사가 있어 혹시나 혐한 시위대를 만나거나 위험한 상황이 생기지 않을까 조심하며 진보초의 고서점거리를 탐방하였습니다. 진보초의 고서점거리는 대학교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에 있는 상가들도 비교적 물가가 저렴하였으며 사람들 또한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고서점거리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다양한 책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 되어 겉표지가 너덜너덜해진 고서적부터 최근에 나온 아이들의 동화책까지, 일본어로 되어 있는 서적들부터 영어, 중국어로 된 서적들까지 매우 다양하게 구성되어있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책을 찾으며 내용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모습은 본 탐사원들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 모든 거리가 단순히 관광지, 혹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찾는 곳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본인들에게 필요한 서적을 찾아서 읽고 구매하는 모습이 매우 뇌리에 박혔습니다.

 

‘(여기는 동경이다. 나는 어쩔 작정으로 여기 왔나? 적빈이 여세-꼭또가 그랬느니라-재주 없는 예술가야 부질없이 네 빈곤을 내세우지 말라고--내게 빈곤을 팔아먹는 재주 외에 무슨 기능이 남아 있누. 여기는 칸다꾸 짐보오쬬오, 내가 어려서 제전 이과에 하가끼 주문하던 바로 게가 예다. 나는 여기서 지금 앓는다.)

(중략)

NAUKA사가 있는 짐보오쬬오 스즈란도오에는 고본 야시가 선다. 섣달 대목-이 스즈란도오도 곱게 장식되었다. 이슬비에 젖은 아슬팔트를 이리 디디고 저리 디디고 저녁 안 먹은 내 발길은 자못 창량하였다. 그러나 나는 최후의 20전을 던져 타임즈판 상용영어 4천 자라는 서적을 샀다. 4천자-

4천자면 참 많은 수효다. 이 해양만한 외국어를 겨드랑에 낀 나는 섣불리 배고파할 수도 없다. - 나는 배부르다.'

 

이상의 <실화>처럼, 일본 진보초 고서점거리에서는 아직도 메마른 지식을 채우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는 배고픈 사람들이 가득하였습니다. 진보초 거리에서 약 2시간동안 서점거리를 둘러보았고, 거리가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다시 역으로 향하였습니다. 숙소로 돌아가려고 계획하던 중 그래도 근처에 번화가를 방문해보고 싶어 시부야로 향하였고 이후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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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이보람

제국극장, 긴자거리, 진보초 그리고 시부야. 그 옛날 동경의 제국극장은 현재 콘서트 및 뮤지컬을 하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제국극장 근처를 둘러본 이후 이 근처를 조금 더 둘로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것들을 느끼고자 길거리를 걸어봤습니다. 걷다보니 어느새 긴자거리에 도착하였습니다. 다시 걸어보고 살펴보아도 물가가 매우 살인적인 긴자거리. 그 곳에서 우리는 그나마 가장 합리적으로 먹을 수 있는 좁디좁은 소바집으로 향했습니다. 그 좁고 사람들이 가득한, 여러 소리가 서로 뒤엉키는 곳에서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이 거리를 서둘러 벗어나고자 하였습니다.

진보초에 도착하여 일본의 어린이, 학생들부터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까지 진보초 고서점거리에 들러 책을 읽고 감상하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거리 곳곳마다 규모는 작지만 여러 책들을 보유하고 또 잘 보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고서점 거리라고 하여 옛 서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최근의 책까지 함께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진보초에 이 모습이 뇌리에 깊게 박혔습니다.

시부야에 도착하니 역에서부터 번화가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쁘게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이 인파에 휩쓸려 어떻게 어디로 지나왔는지도 모르게 번화가의 중심에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각 장소를 이동할 때 마다 전 장소에서 느꼈던 감정들, 보았던 것들과 경험했던 것들이 순간순간 사라지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망각이 계속되고 기분 좋았던 기억들, 행복했던 순간순간들이 사라지는 것에 슬퍼하였지만 그 슬픔도 어느 순간 왜 슬픈 감정을 느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기록을 남기며 정말 사소한 부분이라도 다시 기억이 날 수 있게, 조금이라도 덜 망각하기를 기대해봅니다. 비록 제국극장과 진보초 고서점거리처럼 물질적으로 남아 다양한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우리의 존재를 기억해주지는 않겠지만, 이 작은 글 하나가 기록으로 남아 우리와 주변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김보경

2017121일 토요일 진보초역 근처.

 

오늘 날씨 구름 한 점 없고 조금 추운 가을이다. 바람 불 때만 빼고.

여기는 진보초역 근처 맥도날드다. 일본 발음으로 매그도나르도인데 들을 때 마다 왜 받침 발음이 안 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나도 부르르르르를 못하고 아직도 th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긴 하지만 말이다. 긴자에서 소바 안의 날계란이 너무 비려서 초코 선데이 아이스크림으로 입 정화를 하였다.

. 이곳에 오기 전에 유라쿠초역으로 가서 제국극장을 찾고 있었는데 어떤 현지인에게 길을 물었다. 그녀는 이끼마스!’라 외치며 친절하게 함께 길을 가며 알려주었다. 감사해라. 그런데 표를 사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한다고 한다. 나는 내부가 보고 싶은 건데. 그래서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을 선 사람들만 구경하다 왔다. 아이돌 팬덤인가. 존중하지만 이해는 잘 안 간다. 말이 모순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다.

진보초 고서점거리에 있는 책들은 죄다 일본어라 읽을 줄 아는 한자 몇 자 빼고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옛날 책 냄새와 색이 바랜 종이, 요즘 세상 책과는 다른 투박한 매력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만하다. 평생 종이책은 없어지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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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 돈키호테엔 한국인이 3분의 1은 되는 것 같다. 반갑기보다는 괜히 유니크함이 없어진 느낌이다. 시부야 밤거리는 북적거리고 시끄럽다. 활기차다고 표현하기엔 뭔지 모를 어두운 면이 겹쳐 보이기에 그럴 수 없다. 서울의 어떤 곳과 빗대려고 했는데 너무 커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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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보조개

 

매그도나르도에서

제일 뚱한 너

내가 떠날 쯤에야

빙긋

 

예상치 못한

인디언 보조개에

 

여전히, 책방은, 그대로

 

최진

마그도나르도에서 삼각 초코파이를 먹고 나니 정말 배가 터질 거 같았다. 불쾌한 배부름이었다. 초코파이를 먹지 말걸 속으로 500번은 후회한 것 같다. 차라리 옆 친구처럼 아이스크림을 먹었으면.

당연히 진보초 고서점 거리는 내 이런 사정을 몰랐다. 나도, 그 거리도, 서로한테 기대하는 바가 전혀 없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문학이 좋다며 시며 수필이며 몇 가지 끄적거리던 나였지만 책과 거리가 멀어진 지는 수년이 지난 것 같다.

진보초 고서점 거리는 내 고향인 부산의 보수동 책방 골목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수년전 단발머리의 그 소녀는 보수동 골목 어딘가에서 이해인 수녀의 시집을 찾아 읽고 또 읽었다. 그 낡은 시집 누가 가져가지도 않는데, 얼른 책방 아저씨에게 얼마냐고 묻던 그 소녀.

지금 그 소녀는 진보초 고서점 거리의 책 앞에서 아까 먹은 초코파이를 후회하고 있었다. 단지 일어 투성이인 책들이라서 그런 걸까. 보수동 책방골목에 가면 그 소녀는 아까 먹은 초코파이를 탓하는 일이 없을까. 진보초도, 보수동도, 그 책방들은 여전히 그대로 늙어가고 있는데. 진보초의 책들이 나를 너무 째려보고 있다. 부끄러워진 나는 이내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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