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ity Challenge

해외탐사 프로그램 ‘Locality Challenge’

백문불여일견이라는 말, 알고 계십니까? ‘Locality Challenge’는 자신이 공부하는 지역을 직접 탐사하는 해외탐사 프로그램입니다.

참여하는 학생들은 탐사지역에 관해 인문·지역학적 탐구과정을 실시해 계획을 수립·발전시키고, 각 지역의 지역학적 효용가치를 재발견하며 도전정신을 배양하게 됩니다.

‘Locality Challenge’를 통해 학생들은 인터넷과 책에서만 보던 지역을 눈으로 직접 보고 피부로 느낄 수 있으며, 광역특화전공 내 4가지 트랙의 오지성 지역을 팀원들과 함께 구석구석 탐사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됩니다.

Title [3기] [인도남아시아] - 두드림 (2)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7-03-16 17:22 Read 1,435

본문

 

낙농업은 이제 명실상부 인도의 중추 산업이다. 아난드 Amul 본사 옆에 Amul Food Land 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부분도 이를 반증하는 사례인 듯하다. Amul의 입구 오른쪽으로 하여 쭉 늘어진 상가에 전체가 낙농제품과 관련된 식품을 팔고 있다. 우리는 아난드 대학교에서 헛걸음을 했던 터라 무언가 재충전이 필요했다. 마침 그 상가에는 Amul의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우리들은 Amul을 방문하기 전에 맛으로 먼저 느껴보기로 했다. 솔직하게 한국의 아이스크림이 더 맛있지만, 우유 함량이 많아서 그런 것인지 확실히 아이스크림이 부드러운 느낌이었더 가까웠던 그런 느낌과는 달랐다. 이 아이스크림은 부드러움만 따지자면 인공적이지 않고, 정말 사르르 넘어가는 그런 부드러움 이었다. 시원하게 갈증을 해소하고 우리들은 내부를 탐사하기 위해서 입구로 향했다. 중요 산업 기술을 다루고 있는 시설이 있어서인지, Amul은 방문자들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검사했다. 공항에서 수속을 할 때처럼 여권도 확인하고, 얼굴 사진도 찍었다. 약간의 무게감 있는 절차에 살짝 긴장도 되었다. 확인 절차를 모두 마치고 우리는 드디어 내부로 입성했다. 내부는 마치 공원 같았다. 조경식물과 정돈된 길, 분수대, 그리고 꽃들도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었다. 내부는 크게 박물관과 Amul 공장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보통은 공장으로 가는 길에 짐 검사를 자세하게 한 번 더 하다 보니 박물관을 먼저 보고 공장으로 가는 듯 보였다. 우리도 박물관을 먼저 보고 공장으로 가는 것으로 결정하고 박물관으로 진입했다.  

 

박물관 내부는 그렇게 넓지 않았다. 천장은 매우 높았고 중앙에는 사각 기둥이 있었다. 이 기둥에 있는 4개의 벽면에 'History of Amul' 이라는 주제로 Amul의 연혁을 정리해놓았다. 정말 운이 좋게도,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박물관 해설자분이 전시 해설을 시작하셨다. 해설은 Amul의 역사를 시작점인 1946년을 기점으로 하여 오늘날의 모습까지 설명을 하는 순서로 이어졌다. 인도의 낙농업이 곧 Amul과도 일맥상통하기에 Amul의 역사를 아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했다. 내용 습득의 완성도를 위해서, 우리는 사전에 우리가 조사했던 내용과 해설가가 들려주는 내용을 비교하면서 듣도록 노력했다. 해설가의 영어가 조금 빠르다보니 모든 내용을 정확히 캐치하지는 못했지만, 명확했던 사실은, 첫 번째로 초창기 인도의 낙농 산업 구조는 굉장히 독특한 구조이었다는 점이다. 보통 거대 자본의 투입으로 형성되는 여느 기업들과는 달리, Amul은 개개인으로부터 시작된 구조적 혁명이었다는 것이다. 각 개인들에게 분산되어 있을 때는 빛을 발하지 못하던 소규모 자본들이, 하나의 협동조합으로 통합되자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우리들이 보았을 때에도 이러한 형태는 무척이나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대규모 서구 자본에 저항하여, 협동조합이라는 ‘그들의 결실’을 이뤄낸 Amul의 형성 과정은, 마치 영국에 저항했던 세포이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사실은 Amul의 형성으로 비롯된 낙농업의 발달이 인도인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힌두교의 마누법전에는 인간은 절대로 동물을 먹거나 죽이지 않도록 규정되어있다. 힌두교도의 비중이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도에서는 이러한 정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채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더불어 우유, 치즈와 같은 낙농제품들도 덩달아 수요가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억 5천만 톤의 수요가 이를 반증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즉, 1946년은 ‘인도 낙농업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지, 인도에서 ‘낙농활동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인도에 힌두교가 자리 잡은 그 시점부터 이미 낙농활동은 인도인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해설을 듣다 보니 우리들의 탐구 주제에 답을 제시받는 느낌이었다. 박물관 내에는 아물의 역사를 영상으로 상영하는 작은 상영관이 있었다. 영상물이 다소 Amul의 제품을 과도하게 홍보하는 느낌을 주었지만,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Amul 그리고 인도인의 일상에서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Amul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었다. 

 

 박물관 관람을 모두 마치고, 우리는 우유 생산 시설을 견학하기 위해서 바로 옆에 위치한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 견학은 각 팀당 한 명의 공장 가이드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사실 공장 견학이라고 해서 우리는 생산시설 바로 옆에서 설명을 듣고 간단하게 체험을 한 뒤, 만들어진 낙농제품을 시식하는, 그러한 방식의 견학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공장의 안과 밖이 유리로 분리되어 있어서 우리들에게는 밖에서 내부를 관찰하는 식의 견학만이 허용되었다. 공장은 총 2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층에 있는 시설은 우유와 관련된 시설이었다. 우유는 소와 버팔로에서 짜낸 원유를 배합해서 만드는데,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사실은 우유마다 들어있는 지방 함량을 조절해서 고객 맞춤형으로 우유를 생산한다는 것이었다. 제품을 수많은 고객들의 기호에 맞추어 생산하는 모습이, 협동조합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는 것 같았다. 2층에는 버터와 치즈 등 유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제품들은 크기와 용도, 종류별로 나뉘어 벨트위에서 가공, 포장되었다. 이 공장에서만 하루에 십 만개의 버터가 생산된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들은 인도 전역으로 운송되고 판매된다. 현대화된 시설과 인도 전역으로 재품을 운송하는 기술은 정말 놀라웠다. 또한 비록 분리된 공간이지만 가공, 포장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부분은 좋았다. 다만 해설자의 설명이 박물관에서 들었던 해설과 많은 부분이 중복되어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또한 청결적인 측면에서의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소비자들이 믿고 먹을 수 있다는 신뢰성을 주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2015년 기준 인도의 우유 생산량이 1억3천7백만 톤으로 세계 전체 생산량의 18.5%를 차지한다는 자료와, 우유 생산량이 매년 4%정도 성장한다는 것을 토대로 현재는 20%를 상회할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인도가 이러한 성장을 이루어낸 데에는 많은 인구 수와 넓은 면적 덕분이기도 하지만, 전술한 Amul협동조합의 활약도 컸다. Amul은 Anand Milk Union Limited로 아난드에서 처음 설립되어 현재 인도의 낙농업을 이끌고 있다. 여기서 협동조합은 기업과는 다른 형태를 띤다. 협동조합이란 간단히 말해 경제적 약자들인 1차 생산자가 협동하여 중간 상인의 농간이나 대기업의 압박을 배제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이다. 따라서 Amul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기업의 그것과는 달리 우유의 생산과 가공, 판매와 소비 등의 역할을 일부 또는 전부 수행한다. 명목상 비슷한 협동조합으로는 흔히 '서울우유'로 알려진 우리나라의 서울우유협동조합이 있다. 서울우유가 '명목상 비슷하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후술하도록 하고, 다시 Amul의 성공요인을 살펴보겠다. Amul이 발전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Amul MODEL로, Amul의 생산과 유통 등을 체계적으로 설계한 것이다. 다른 하나가 Amul Cartoon인데, Amul GIRL을 내세워 사회 정세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만화이다. Amul Girl은 사실 당시 경쟁사였던 Polson Ltd.이 자사 홍보를 위해 만든 Butter Girl에 대응해 만들어진 캐릭터로, 이 또한 초기엔 자사 홍보에만 쓰였다. 후에 정치 풍자 등을 하면서 인도인들의 공감을 끌어낸 것이다. 이제는 Polson과 경쟁 구도에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Amul이지만, 그 성공의 씨앗은 과거의 경쟁사로부터 얻어냈다는 것은 다소 역설적이다. 이 두 가지 요인이 Amul을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줬고, 인도 자체의 환경 또한 인도 낙농업의 열쇠를 쥐고 있다. 인도에는 소가 많고, 많음에도 익숙해하지 않는다. 늘 처음처럼, 익숙한 처음처럼 소를 대한다. 소를 신성시한다. 힌두교의 영향이 가장 크겠지만, 인도사람들은 소를 귀히 여기며 그 산물인 우유 또한 귀하게 여긴다. 고대에는 우유를 약용이나 보양식으로 썼다는 기록도 있다. 오늘날에야 우유가 영유아에게,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유익하다는 연구 자료가 발표되어 모두가 알고 있지만, 과학이 없던 시절에 수은을 약재로 사용하던 타국에 비하면 인도는 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유 생산량 세계 1위인 인도와 비교할 대상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한국과 비교해보고자 한다. 한국의 낙농업 성공신화를 보면 인도와 닮은 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낙농진흥회의 통계에 따르면, 인도의 연간 원유생산량은 1억3천7백만 톤이고, 한국의 생산량은 2백만 톤 정도다. 인도의 인구가 대한민국의 인구보다 24배 정도 많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두 배 정도 앞서는 생산력을 뽐내는 인도는 세계 1위 원유 생산국의 위용을 보여주는 데 손색이 없다. 미미해 보이지만 한국의 시유 생산/소비량은 1960년대 초 뉴질랜드에서 젖소를 들여와 낙농이 시작되던 때에 비해 엄청난 발전을 이뤘으며, 현재 세계 1인 평균 소비량을 넘겼다. 한국 낙농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낙농 3대 기업의 힘이 컸다. Amul과 비슷한 형태의 서울우유협동조합이 그 첫째고, 2위를 다투는 두 기업은 매일우유와 남양유업이다. 이것들은 모두 1962년 뉴질랜드로부터 젖소를 들여올 때 즈음에 설립되었다. 매일우유는 1969년, 남양유업은 1964년에 창립되었고, 서울우유협동조합은 경성우유동업조합이라는 이름으로 1937년 경 설립되었지만 중랑교에 제 1공장을 준공하는 등 본격적인 낙농산업을 시작한 것은 1962년에 이르러서이다. 흔히 '서울우유'라 불리는 서울우유협동조합은 기업이 아닌 협동조합이다. 앞서 협동조합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갔는데, 협동조합에는 네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사업의 목적이 영리에 있지 않고 경제적 약자 간의 상호부조에 있다. 둘째, 협동조합은 임의로 설립되며 조합원의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워야 한다. 셋째, 조합원은 출자액의 다소에 관계없이 일인일표의 평등한 의결권을 가진다. 넷째, 잉여금(수익)을 조합원에게 분배함에 있어서는 출자액의 다소에 의하지 않고 조합사업의 이용분량에 따라서 실시한다는 것 등이 있다. 

 

 본래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고 잘 운영되는 단체가 얼마나 있겠느냐마는, 서울우유협동조합은 비교적 많이 기업화됐다. 두 번째 원칙에서 조합원의 가입과 탈퇴는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우유협동조합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이처럼 가입의 자유로움을 보장해준다고는 하지만 일정규모 이상의 낙농업을 해야 한다는 등 조건이 붙는다. 사실상 유명무실한 자유로움인 것이다. 또한 상호부조의 역할보다 수익 추구에 더 무게를 두는 서울우유는 협동조합이라고 부르기에 하자가 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다른 낙농 기관들이 깨끗하다는 것은 아니다. 매일우유와 남양유업은 하루가 멀다 하고 표절과 온갖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자사의 제품을 팔고자 한다. 경쟁은 자본주의 사회에 원동력을 가져다주는 요소일 수 있지만, 두 기업은 경쟁을 넘어 서로 소송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남양유업은 알다시피 대리점 상품을 강매한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수익이 폭락했고, 매일우유에 2위를 빼앗겼다. 매일우유 또한 이와 비슷한 사건이 터져 세간의 인식이 좋지 않다. 비단 한국 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몇 달 전 인도 북부 지방정부가 우유 생산량 증대를 위해 낙농가들이 광범위하게 사용하던 호르몬제 사용 중단을 경고하기도 했다. 

 

                     

남양유업 제품 불매 사례

 1962년 뉴질랜드에서 젖소를 매년 들여오기 시작하면서 대한민국의 낙농업이 발전했다고 기술했는데, 그렇다면 현재 뉴질랜드의 낙농업은 어떨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국가의 낙농업 시초가 되었던 뉴질랜드의 낙농업에 대해 알아보았다. 뉴질랜드는 국토의 50% 이상이 목초지로 낙농 선진국이다. 전체 수출에서 낙농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25%를 차지할 정도다. 뉴질랜드의 낙농 산업을 이끈 주역은 Fonterra협동조합이다. Fonterra는 뉴질랜드에서 생산되는 유제품의 90% 이상을 수출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낙농업의 발전을 위해 뉴질랜드의 가장 큰 유가공업체 2개와 뉴질랜드 낙농청의 합병으로 설립되었다. 세계적인 농산물 특화 금융기관인 네덜란드의 Rabobank는 2012년 GLOBAL DAIRY TOP 20에 Fonterra를 4위로 꼽았다. 인도의 Amul은 순위권 밖이다. 또한 각 나라의 1위 낙농회사답게 굵직한 사건 하나쯤은 갖고 있다. 2013년, 뉴질랜드의 Fonterra사의 조제분유에서 마비성 질환을 일으키는 박테리아가 검출돼 화제였다. 결국 Fonterra는 그 일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했지만,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

                       

 아난드에서 유익한 탐구활동을 마치고, 우리는 뭄바이 대학교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위해서 뭄바이로 돌아왔다. 원래 무턱대고 찾아갔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지만 준헌이의 아버지께서 도움을 주셔서, 뭄바이 대학교에서 철학 교수님을 하고 계시는 Priya 교수님을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힌디를 배우는 학생이며, 인도의 낙농업에 대해서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고 교수님께 인터뷰의 목적을 말씀을 드렸다. 이후 우리가 준비해 간 질문지를 바탕으로 몇 가지 질문을 드렸다. 먼 타지에서 힌디를 공부하는 우리들이 기특하셨는지, 교수님은 정말 성심 성의껏 답변을 해주셨다. 우리가 진정으로 궁금했던 것은 ‘인도의 낙농업과 채식문화가 상호연관성이 있는가’의 여부이었다. Dr. Priya도 채식을 하시는 분이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자신의 사례를 통해서 말씀을 해주셨다. Priya 교수님은 자신은 채식을 하면서 낙농 제품도 매일 드신다고 하셨다. 고기를 못 드시기 때문에 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낙농제품을 원래 즐긴다고 하셨다. 하지만, Vegeterian이라고 해서 모두가 낙농제품을 먹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즉, 낙농제품은 인도의 채식문화와 불가분적인 관계에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채식을 한다고 해서 낙농제품 섭취를 한다고 일반화할 수 없고, 채식을 안한다고 해서 낙농제품 섭취를 안한다고 일반화 할 수도 없다. 

 

 비(非)채식주의자들도 낙농제품을 좋아하고 섭취하며, 인도인들의 수많은 축제에는 낙농제품들이 흔하게 사용된다. 실제로 인도에서, 우유와 정제버터인 기(Ghee)는 순수한 물질로 여겨져 힌두교의 종교의식에서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또한, 인도 전통의학 ‘아유르베다’에서도 우유를 힘을 키워주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노약자들과 환자들에게 좋은 식품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종교와 의학 그리고 인도인들의 식생활의 측면까지도 낙농제품은 두루 쓰이고 있었다. 

 

 우리들은 사전에 낙농업과 인도의 채식주의자들과의 상호 연관성에만 포커스를 맞추었다.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인도에서 실질적인 탐구를 통해 보고, 듣고, 느끼다보니 우리가 너무 근시안적으로 접근한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들이 원하는 대상을 한정하고 원하는 결과물을 한정하려는 실수를 벌인 것 같았다. 

 

 ‘여기에만(only)’ 이라는 단어는 인도에서 탐구를 진행하면서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런 부류의 한정적인 의미의 말을 인도에서 들어본 경험이 없다. 인도에 도착하고 처음 일주일 동안 돌아다니면서, Vegeterian 식단을 주문하면 항상 낙농제품이 같이 나왔기 때문에 Vegeterian 식단에만 낙농제품을 주는 것으로 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도를 더 깊게, 더 오랫동안 경험하다보니 태도를 바꾸고 시야를 넓히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더 넓은 인도를 바라볼 수 있었다. 낙농업과 채식문화에 맞추어 온 포커스를 넓혀서, 종교를 바라보고 축제를 바라보고 음식 문화를 바라보니 하나의 순환구조 같았다. 낙농업을 중심으로 종교, 축제, 역사, 생활 등 여러 가지 요소요소들이 엮여 있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1차산업과 2차산업 그리고 3차산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농업, 축산업 등을 비롯한 1차산업은 그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다른 산업에 비해 생산성 향상의 정도가 낮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았던 옛날과 달리 오늘날 사람들은 1차적 욕구보다는 서비스 등을 비롯한 고차원적 욕구를 추구하기 때문에, 이러한 1차산업은 점점 꺼려하는 추세다. 그러나 이러한 1차산업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문화와 교양을 향유하는 것도 모두 기초적 욕구, 의식주가 해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4차나 5차 산업도 발달하고 새로운 직업, 새로운 분야가 개발될 것이 분명한 인류이지만, 1차 산업은 끝끝내 이 지구상에 잔존할 것이다. 1차 산업이 영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통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우리가 탐사한 인도의 경우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이유도 엿볼 수 있다. 

 

 우유의 근원이 되는 ‘소’는 인도의 신, 인도의 종교, 인도의 문화 모두에서 쉬이 볼 수 있다. 많은 인도인-특히 힌두교도-들은 소를 숭배하며 이를 신성시한다. 그 덕택으로 우유 또한 그들이 경배한다. 우유를 약제로 쓰던 시절도 있었고, 왕족들만 마실 수 있는 음료로 치부되기도 했다. 우유를 얼마나 귀히 여겼느냐 하면, 영국의 식민지배 시절 우유 생산지를 갈아엎고 공업 공장을 차리려 했던 영국 지도층에 불복할 정도였다. 마치 지역 재개발을 추진할 때 포크레인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것과 같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포크레인 앞의 시위는 보통 강자의 힘에 꺾이게 마련이지만 인도의 경우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Amul 협동조합의 탄생 배경이다. 이는 우유가 인도인에게 있어 일반적인 하얀 젖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유 생산을 막겠다는 것은 넓게 볼 때 인도인들의 신앙과 종교, 삶 그 자체를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영국의 강제는 예로부터 받들어지던 인도인의 신과 그들 삶에 대한 모독이었기 때문이지만 그럼에도 지배자의 강압을 파훼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탐사 팀은 인도에 가기 전, 인도의 유제품을 조사하며 White Revolution이란 제목을 붙였지만, 이는 너무 근시안적인 접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혁명’은 그 많은 것 중에 스쳐가는 하나일 뿐이었다. 우유를 비롯한 유제품은 인도인의 삶 전반에 걸쳐 치즈같이 끈끈한 유대가 있었다. 유제품은 인도 채식주의자들에게 건강과 신앙을 동시에 챙기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음식이다. 힌두의 신앙과 종교는 힌두의 삶과도 같다. 세계 최대의 우유 생산국 인도, 그곳의 최대 유제품 생산 협동조합인 Amul. 아난드 얘기만 해도 Amul을 떠올리는 현지인들이 많은 것은 당연해 보일 정도다.

 

  이번 로컬리티 챌린지를 진행하며 우리는 유제품의 유래와 역사부터 시작해 인도, 한국, 뉴질랜드 등의 유제품 관련 자료를 조사해 비교했다. 세 나라의 최대 낙농업 생산 단체는 모두 ‘협동조합’의 형태였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정석이러한 초석을 딛고 더 나아가 인도의 최대 낙농 생산조합을 직접 방문해 그 역사와 의의를 심화적으로 탐구했다. 인도와 한국, 뉴질랜드 최대의 낙농업 생산 단체는 모두 ‘협동조합’이라는 형때를 띠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협동조합이 대단히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단체이며, 조합원과 사회 모두에 좋음을 뜻한다. 마치 토머스 무어의 유토피아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어느 곳에도 없는 사회’인 유토피아는, 그 이름과 같이 존재할 수 없었다. 민주주의의 정수인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의 폐해에 짓눌려 제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우리는 미래 사회를 건설할 때 이를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또한 이번 탐사를 통해 탐사하는 데 있어 기본적인 자세로 결코 틀에 박히지 말 것을 배웠다. 언제나 새로운 사실들, 새로운 사람들이 우리를 놀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가 아는 것이 다인줄 알면 안 된다. ‘White Revolution’이란 제목을 붙이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던 우리는 이제 ‘혁명’에 취소선을 긋고, Revolution -> Convolution로 고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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